[내가 설계했다-①밤콩대교]이용진 컨설턴트 “부드러운 땅 메콩델타에는 강직한 H형주탑 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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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설계했다-①밤콩대교]이용진 컨설턴트 “부드러운 땅 메콩델타에는 강직한 H형주탑 제격”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9.06.04 10: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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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님 말씀하십니다. 의원님 말씀하십니다. 시장님 말씀하십니다. 청장님 말씀하십니다.

일반적인 SOC시설 준공식장. 안전모 쓰고 도열해 있는 건설사, 감리원, 주민들을 세워놓고 기관장들 십수명이 돌아가며 끊임없는 연설을 늘어놓는다.

선진국 SOC준공현장의 주인공은 설계를 주관한 컨설턴트다. 컨설턴트가 가장 먼저 연단에 서서 해당 프로젝트의 콘셉트와 중요도를 설명한다. 당연히 준공석의 상석은 이들이 차지한다.

반면 한국은 감리원 정도만 말석에 이름을 남기고 컨설턴트는 행사장에 초청조차 받지 못한다. [내가 설계했다] 코너는 프로젝트의 중심, 컨설턴트를 통해 SOC시설의 중요도와 콘셉트를 해설 받기 위해 기획됐다.

이용진 컨설턴트가 설계한 베트남 밤콩대교의 조감도.
베트남 밤콩대교.

●사장교는 무엇?=밤콩대교는 메콩강 하류 꾸롱 삼각주에 건설된 다리다. 대한민국 공적원조 EDCF론 2,400억원이 투입돼 지난달 19일 완공됐다. 설계감리는 내가 속한 다산컨설턴트, 시공은 GS건설이 했다. 나의 역할을 설계총괄PM이다. 쉽게 말해 내가 스케치-설계를 하면, 시공사가 색칠-시공을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밤콩대교는 사장교다. 사장교는 중앙에 주탑을 세운 뒤, 케이블로 상판을 잡아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보통 다리와 다르게 교각과 교각 사이 즉 경간장이 400~500m 많게는 1km까지 나온다. 굳이 그렇게 만드는 이유는 교량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대형선박이 자유롭게 왕복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 수없이 많은 사장교가 있는데 올림픽대교, 서해대교, 인천대교가 대표적인 사장교다.

●밤콩대교는 어떤 교량?=베트남 국영엔지니어링사인 TEDI에서 밤콩대교의 형식을 사장교로 정해 놨다. 그러나 디테일 설계PM의 몫이다. 콘셉트를 구상하기 전에 프로젝트 현장인 메콩델타 하류 하우강을 일대를 둘러봤다. 메콩델타는 농어업이 주 산업으로 베트남 GDP의 20%가 발생한다. 끝없이 펼쳐진 삼각주에 수많은 강이 흐른다. 당연히 도로사정은 좋지 않고 페리로 도강을 해야 이동이 가능하다.

밤콩대교가 조성된 메콩델다 하류 하우강은 100m가 넘는 충적층으로 인해 H형 주탑을 적용했다. 다만 지나치게 딱딱해 보이지 않게 A형에 가까운 Improved H형으로 적용해 곡선미를 최대한 구현했다.
밤콩대교가 조성된 메콩델다 하류 하우강은 100m가 넘는 충적층으로 인해 H형 주탑을 적용했다. 다만 지나치게 딱딱해 보이지 않게 A형에 가까운 Improved H형으로 적용해 곡선미를 최대한 구현했다.

물기를 머금은 곡선의 강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풍족한 대지를 만들어 낸다. 부드러운 여성의 땅에 굳건한 150m 크기의 H형 주탑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음양의 조화로 더 큰 시너지가 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장교의 주탑은 A형, H형, I형, 다이아몬드형, 돛형 등 다양하다. 이번 밤콩대교에서 적용한 H형 주탑은 ‘우뚝미’도 있지만 100미터를 넘는 충적층, 즉 부드러운 흙으로 인해 하부가 넓어야 했다.

한국은 땅을 조금만 파도 단단한 암석이 나와 하부가 작은 다이아몬드형을 사용해도 대부분 문제가 없다. 다만 지나치게 딱딱해 보이지 않게 A형에 가까운 Improved H형으로 적용해 곡선미를 최대한 살렸다.

주경간장은 450m로 베트남에서는 두 번째로 길다. 1000TEU급 선박도 자유롭게 왕래할 정도로 넓다. 사장교든 현수교든 기본적으로 경간장이 넓어야 쾌적한 경관을 제공한다.

경간장이 800m인 인천대교를 보고 있으면 아슬아슬하면서도 멋지다. 밤콩대교도 사장교로써는 충분히 넓은데, 주경간장과 접속교 사이의 중간교각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것을 구조적으로 구현한다면 구조미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계획은 65+122+450+122+68이었는데, 210+450+210으로 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말뚝 두 개가 없어지니 개방감은 커지고, 공사비는 절감됐다.

밤콩대교는 당초 중간교각을 갖는 사장교로 계획됐지만 실시설계 단계에서 이를 배제하고 2주탑 3경간 사장교로 변경됐다.
밤콩대교는 당초 중간교각을 갖는 사장교로 계획됐지만 실시설계 단계에서 이를 배제하고 2주탑 3경간 사장교로 변경됐다.

●멋진 구조엔지니어링은 무엇?=구조엔지니어링이라는 것이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데, 구조적인 최적화를 이루면서 미적요소를 극대화하고 비용은 적게 들어야 한다. 밤콩대교가 적절한 예다.

만약 사업비가 5,000억원이라도 더 멋진 교량이 나올 수는 없다고 본다. 필요한 만큼의 사업비로 최적의 작품을 만들어야 그것이 진짜가 아닐까 한다. 전세계 교량은 현재 재료로 할 수 있는 최장, 최초, 최고는 모두 이룩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상은 신소재가 탄생해야 가능하다.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교량은 노르망디대교다. 좀 오래된 버전인 A형 주탑이지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물론 구조엔지니어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금문교의 아름다움, 그리고 88년전에 거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는데 경외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금문교를 설계한 컨설턴트 조셉 스트라우스를 기리는 동상과 기념비를 만든 미국인들의 마인드를 좋아한다. 어디 우리나라에 컨설턴트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던가.

구조엔지니어링은 고난을 극복하는 인간들의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기회와 역량이 된다면 메시나대교나 차나칼레대교 또는 필리핀을 묶는 교량과 같이 인류가 도전해야 할 대형 프로젝트에 도전해보고 싶다.

베트남 밤콩 사장교를 설계한 이용진 컨설턴트.
밤콩대교를 설계한 이용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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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식 2019-06-05 11:04:08
좋은 내용의 기사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용진컨설턴트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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