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공학기술'이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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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공학기술'이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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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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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은 무엇이냐? 엔지니어링입니다. 엔지니어링은 무엇이냐? 시설물의 기획, 조사, 설계를 비롯해 유지관리를 하는 뭐 일종의 고부가가치 지식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그게 뭐하는 건데? 그러니까 그게 도로나 철도 같은 기반시설을 설계하는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법적용어를 대봐. 산업부에서는 엔지니어링이라고 하고요. 국토부에서는 용역이라고 합니다. 외국에서는 컨설팅이라고 하는데 법적인 것 까지는 잘모르겠구요. 입찰서류에는 용역이라고 기재됩니다. 아 그럼 너의 이름은 용역이구나.

용역이란 이름은 1974년 기술용역법의 태동으로 시작된다. 이후 1993년 엔지니어링진흥법으로 전환됐지만, 2019년 현재까지 용역은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합법적인 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해방이후 줄곧 써 왔던 것도 이유지만, 발주처 입장에서는 엔지니어링보다 하대하기 쉬워 용역이란 용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지난 3월에 국토위 법안심사소위만 봐도 용역을 엔지니어링으로 바꾸자는 건설기술진흥법 개정안에서조차 국토부의 반대로 부결될 정도였다. 건설업자는 건설사업자로 바뀌었는데도 말이다.

그럼 엔지니어링이란 말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되묻고 싶다. 같은 업계에서 엔지니어링이 뭐냐고 말하면 대략 어떻게 설명할 수 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결국 제대로 된 군색한 말에 그치고 말 것이다. 다들 경험해보지 않았나. 결국 대충 건설업의 한 귀퉁이로 치부되고 말면서 싸잡아 비난받게 되는 것이다.

엔지니어링 대가, 예산권, 발주량를 포함한 사회적 지위는 누가 결정하는가. 아쉽게도 엔지니어링업계가 아니라 테두리에서 벗어난, 상관없는 사람 즉 국외자-局外者가 결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실무적 관점에서 보자면 엔지니어링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의 첫 관문이 해당부서 사무관이다. 사무관이라는 회전문 인사로 1~2년마다 바뀌는 이들을 협단체에서 엔지니니어링이 무엇인지 기가 막히게 설득시켜놨다고 해도 과장-국장-차관-장관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설득대상이 있다.

이뿐인가? 예산권을 틀어쥔 기획재정부부터 국무조정실, 청와대로 이어지는 행정부의 최종보스가 있다. 최종 도장은 입법부에서 받는데 해당상임위, 법사위로이어지는 그야말로 갑질 국외자가 켜켜이 쌓여 있다. 과연 이들을 모두 원스톱으로 설득시킬 수 있을까. 우리도 애매하게 설명하는 엔지니어링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알아듣기 쉬워야 한다. 거기에 권위까지 있어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런 이유에서 ‘공학기술-工學技術’이란 말을 제안해 본다. 공학의 영어식 표현은 지금 우리가 쓰는 Engineering이다. 어원은 라틴어인 engine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다’이다.

Engineering은 군사공학에서 꽃을 피우다 산업혁명시기인 1771년 존스미턴이 도로, 철도, 운하 등 인프라와 관련된 시민공학-Civil Engineerig을 제창했다. 이후 인간공학, 경영공학, 도시공학, 환경공학, 우주공학 등으로 확대분화하기에 이른다.
또 영어는 도입된지 100여년, 한자는 1,500~2000년이나 됐다. 뇌과학적으로 익숙한 것은 바로 옳다로 낯선 것은 나쁜 것으로 연결됐다. 대외적으로는 엔지니어링이란 말을 쓸 수 있지만 대내적일대는 익숙한 한자가 답이다.

공학기술이란 말은 초등학교정도만 졸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뿐더러, 모호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권위까지 느껴진다. 특히 현재 쓰고 있는 엔지니어링을 전폭으로 계승하고 있다. 공학기술-용역, 공학기술-엔지니어링, 공학기술인-용업업자만 놓고 보자. 일반 대중에게 무엇이 설명하기 쉽고 권위가 있어 보이겠는가.

사실 공학기술은 딱히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누구나 알 수 있고, 정부관계자 입장에서 용어때문이라도 밀어주고 싶은 말이다. 대선공약으로 "공학기술산업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예산과 제도개선을 하겠다"와 "용역업자의 이익을 위해 예산과 제도를 지원하겠다" 또 "엔지니어링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지원하겠다" 이 세가지 문구를 보라. 확연히 다르지 않나. 무엇이 가장 익숙하고 이해가 쉬운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라.

도덕경에 '지지불언 언자불지 知者不言, 言者不知'란 말이 나온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아는 것과 말하는 것은 늘 다르다. 실체인 엔지니어링과 이름인 엔지니어링은 다른데 사람들은 늘 같다라고 생각한다.

사실 둘은 도저히 같을 수 없어, 어떤 이가 실체를 뭐라고 설명하면 그 순간 실체는 유리된다. 따라서 제대로 모르는 것이 되는 것이다. 결국 실체와 이름은 영원히 유리된 것이라면 대중, 결정권자들이 이해와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이름을 짓자는 것이다. 그 이름은 공학기술-工學技術이다.

정장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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