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바보야 문제는 계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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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바보야 문제는 계급이야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0.06.09 18:16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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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과가 한 학년에 60명인데, 1등부터 60등까지 모두 공무원 공부합니다. 전공을 공부해야 할 사람들이 모두들 국어, 한국사 같은 공무원 공부만 하니 아주 힘이 빠집니다. 취업선호도는 공무원, 공사, 건설사, 엔지니어링사 순입니다.” 한 지방 국립대 교수의 말이다.

수년째 수주량이 증가하고 중복도에 청년가점까지 추가되면서 엔지니어링사의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 문제는 강남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형사를 제외하고 중견급엔지니어링사는 아예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간간히 보이는 지원자 면면을 살펴보면 예전에 비해 학력수준도 한참 내려갔다. 상당한 실력을 겸비해야 하는 구조, 지반분야 전문엔지니어링사는 경력 이외에는 사람을 뽑을 수 없는 지경이다. 취업준비생들 입장에서는 아예 그런 회사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링사 입장에서 신입엔지니어를 유입시키기 위해 임금을 인상하고 있다. 최근 들어 상당수 회사가 10% 이상 연봉을 올려 채용공고를 내고 있는 것. 중견사급만 봐도 4,000만원대가 즐비하고 5,000만원에 육박하는 곳도 발견될 정도다. 물론 대형건설사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중견건설사와 별반 차이가 없고 오히려 더 높은 경우도 많다. 3,0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무원이나, 3,000만원 중반대인 공기업과 비교하면 크게 높다.

직업안정성도 마찬가지다. 엔지니어링의 특성상 경력관리만 잘된다면 60을 넘어 70세 이상까지도 현업에서 일을 할 수 있다. 근무환경은 어떠한가. 감리직 말고는 대부분 쾌적한 실내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 또 원한다면 수도권에서 지방근무 없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한 때 가혹했던 근무시간도 52시간제 정착으로 상당부분 해소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엔지니어링업계에 인재들이 몰리지 않고 공무원이나 공사로 가는 걸까? 연봉도 많고 근무환경도 나쁘지 않은데 말이다.

갑이 아닌 을이기 때문이다. 일을 해도 우월적 위치에서 일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외국처럼 공무원보다 엔지니어가 더 대접 받는 것까진 바라지 않는다. 적어도 동급의 관계만 유지시켜준다면 엔지니어링사에 입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공무원에 건설사에 치이는 상황에서 월급 좀 더 준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엔지니어링사를 기피하는 문제의 핵심은 사회적 인식, 우월 의식의 부재라는 게 공통된 반응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봉도 연봉이지만 엔지니어링에 대한 인식개선이 우선이다. 어디가서 엔지니어링사에 근무한다고 하면 “아 그래? 너 성공했구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어”라는 반응 없이는 인재들이 엔지니어링사에 몰리지 않을 것이다.

엔지니어링에 대한 대국민홍보는 엔지니어링산업 환경의 핵심이 될 수 있다. 당장 대가를 올리려면 정부와 국회를 설득해야 하는데, 당장 되돌아오는 답변은 “기술용역, 건설업자, 노가다에게 왜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야 하냐”는 말 뿐이다. 엔지니어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소금 같은 존재라는 것을 전 국민이 공감한다면 대가도 높이고, 연봉도 높이고, 근무환경도 모두 높일 수 있다.

어떻게 홍보를 할까. 엔지니어링업계를 비롯해 협단체에서 엔지니어링 인식개선을 위한 T/F를 만들고 홍보전문가를 대거 영입해 조직적인 홍보에 나서야 한다. 단기간에 무엇을 이루려 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 홍보를 통한 인식개선의 키를 돌리지 않고는 엔지니어링산업의 도약은 요원하다.

2005년 제이슨라이트먼 감독의 영화 ‘Thank you for Smoking’은 미국담배협회, 주류협회, 총기협회의 홍보전문가가 어떻게 이들 산업을 홍보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유해한 술, 담배, 총도 정말 멋지게 인식을 개선시키고 공격에 방어하는데, 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Civil Engineering을 홍보하는 것은 조금의 노력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노력과 투자를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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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2020-07-03 17:10:15
좋은 기사네요~ 정부에서 엔지니어그룹에게 권한과 책임을 지는 기회를 제공하는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건설시장에서 엔지니어그룹은 마치 어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자기결정권이 부족한 어린아이처럼 대우 받는것 같습니다. 어른이 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용역형 기술서비스보다는 책임형 엔지니어링 서비스 시장을 정부에서 열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경험과 역량있는 기술직 관료들을 엔지니어링그룹으로 이동도 필요할것 같고요

조민현 2020-06-19 17:17:16
백번 동감하며, 관료사회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문기사에서도 관료들의 홍보가 필요한 대규모 사업등 어디에서도 엔지니어링, 설계자, 토목기술자의 이름이나 자리는 없으니까요.

집에가고싶어요 2020-06-15 23:27:44
이업계는 자격증 따고 자기 연봉챙기며 철새처럼 이직하기에 바쁨. 그게 문제임. 일도 모름.

더위사냥 2020-06-15 12:32:31
중견사급 사원이 4젼만원대가 즐비하다고요? 퇴직금, 야근비 포함인지 아닌지부터 답하세요. 엔지니어링 기사도 기레기 많네 ㅉㅉ

도로직선 2020-06-14 23:32:46
페이퍼 실적만 있는 노땅들은 고액연봉 챙겨주고, 직원들은 죽어라 일만하니 다 탈토하는 겁니다. 솔직히 지금 50대이상들은 나라 성장할때 대충대충 기존꺼 카피하면서 쉽게 일했습니다. 그게 지금의 약골체질의 업계를 만든거구요. 자업자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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