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토부에 합산벌점을 부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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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국토부에 합산벌점을 부과합니다”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0.08.12 13:4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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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일 기자

222년 촉나라의 유비는 80만 대군을 이끌고 손권의 오나라를 침략하는데 그 시기가 여름이었다. 병사들을 시원한 그늘에서 쉬게해 전력을 최상태로 유지하길 원했던 유비는 숲속에 진을 쳤다. 병법에 무지한 유비가 불안했던 신하 마량이 진형을 그려 촉에 남아있던 군사 제갈량을 찾아간다. 제갈량은 “이 따위 진형을 폐하께 고한자가 누구인가! 당장 이자를 참하라!”고 말했다. 마량이 “폐하가 직접 지시하신 일입니다” 하자 제갈량은 “촉의 운명이 다했구나!”라며 탄식했다. 

동양 최고의 고전(古典)으로 여겨지는 삼국지 3대 전투 중 하나인 이릉대전은 시쳇말로 ‘뇌피셜’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말은 유비가 오나라 장군 육손의 화계에 대패해 결국 숨을 거둔다. 이릉대전 이후 촉은 국력을 크게 상실하고 삼국 가운데 가장 열세에 놓인다. 가장 먼저 망한 것도 당연지사다.

1800년 뒤 대한민국이 그렇다. 전문가의 말은 오래된, 틀에박힌 것, 없애야할 것으로 취급받고 범부의 말은 새롭고, 다양한 것으로 존중받는다. 창의적 사고와 도전이 인간을 풍족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의 사회적 합의를 모두 고리타분한 것으로, 개혁의 대상으로 삼으면 혼란만 가중된다. 

대표적인게 부동산 대책이다. 3년차를 넘긴 문재인 정부와 국토부는 무려 24번째의 정책을 내놨다. 취임 39개월이니 한달 반여 만에 하나씩 대책을 발표한 셈이다. 집값과 투기세력을 잡겠다는 것은 역대 진보좌파 정권의 오랜 숙원이지만 전문가들의 반대에 부딪쳐 왔다. 그 여파가 너무 크기 때문인데, 그동안 신중히 논의만 됐던 얘기들이 이번 문 정권에서 모두 현실화 됐다. 

국토부가 유난히 들쑤시고 있는 분야가 또 있는데 엔지니어링업계다. 부동산 대책만큼 횟수가 많지는 않지만 내놓는 얘기마다 여파가 쓰나미급이다. 그 중 합산벌점은 백미다. 전문성 없는 일반적인 ‘안전 최우선=옳다’ 식의 국토부의 단순 사고에 업계관계자들은 초비상이다.

따지고 보면 합산벌점의 본질은 안전이 아니다. 일 많고 풍족한 대기업에서 좀 뺏어서 소기업에 나눠주자는거다. 또 다른 의도는 갑질의 합법화다. 그런면에서 진짜 벌점을 매겨야 하는건 국토부와 발주처들이다. 말로만 고부가가치영역, 4차산업의 역군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취준생들이 발주처>공사>시공사>엔지니어링사 순으로 입사를 선호하는게 현실이다. 

당연하다. 성과는 100% 이상을 요구하면서 돈은 80%만 준다. 그마저도 최근 일이고 절반에 가까운 60% 낙찰율이 엊그제였다. 코로나가 터져서 미팅을 자제하라고 해도 내 사업 발주처 공무원이 오라고 하면 어떻게든 가야한다. 주 52시간이 정착됐어도 발주처에서 전화오면 밤샘 근무는 필수다. 그마저도 법정제한이 넘으면 제재를 받으니 무보수 야근이 여전한 엔지니어링사다. 

외국에는 벌점제도가 없다. 안전 문제가 생기면 해당업체를 다음 입찰에 향후 몇 년간 아예 제외시킨다. 경고가 아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예 일을 안주니 경각심이 크다. 해외수주시에는 경쟁사에 공격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벌점 카드를 버릴 수 없을 거다. 벌점은 안전을 볼모로 갑질근절을 외치는 시대에서도 모양새 좋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점이라는 목줄을 채우고 끊임없이 갑질 하는게 더 좋을거다. 수도 없이 갑질하는 국토부, 발주처야말로 진짜 합산벌점 부과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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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2020-08-13 09:52:01
정말 왠만해선 욕 안하는데 이번 국토부는 정말 쌍욕이 나온다.
벌점? 지들이 뭔데 벌을 줘? 상을 주는 것도 웃겨 진짜.
상이나 벌을 주는 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거야. 지들이 민간 위에 군림해?
사고방식 자체가 이뭐병.

외국애들에겐 이런 얘기 쪽팔려서 못한다.
경제역군들에게 감사하진 못할 망정, 왜 갑질하고 군림하지 못해 안달이지?
이래가지고 무슨 글로벌 경쟁력이 생기겠냐고.

안전 문제? 이미 관련 법규와 규제가 넘쳐나. 근데 거기다가 벌점을 매긴다고?
이건 진짜 지들은 조선시대 양반이고 우린 머슴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짓거리야.
왜 맨날 이따구 현실을 푸념만 해야해? 좀 뭔가 액션을 취해야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그놈의 벌점과 찍힐까봐 찍소리도 못하니 개무시가 날로 더하지.

사진좀 2020-08-12 14:39:35
잘생긴건 알겠는데 사진좀 어케할수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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