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왜 말을 못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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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왜 말을 못하는거야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0.08.20 14:18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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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이 홍수예방에 도움 되는 것이냐?”라고 장마기간 동안 만나는 엔지니어마다 물어봤다. 대답은 모두들 일관됐다. “공식적으로 말하냐? 비공식적으로 말하냐?” 다시 돼 물었다. “공학에 공식과 비공식이 따로 있나?”

이번 4대강사업 논란을 제쳐 두더라도, 엔지니어에게 공학적인 사안을 물어보면 대다수가 “내 분야가 아니다. 윗사람도 있는데 내 직급에서 얘기하기가 부담스럽다”라고 대답한다. 당연히 정책적 사안, 특히 발주처와 관련된 문제점에 대해서는 모두들 일관되게 함구한다.

한번 고찰해보자. 가장 큰 포인트는 발주처의 슈퍼갑질이 반세기 이상 계속됐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링은 재정, 민간으로 나뉘어져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큰틀에서 모두 정부돈 받는 시스템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개인이 도로 깔고 철도 놓고 하지 않는다.

당장 발주처의 불합리한 요구가 있더라도 미래관계를 봐서 일단 고개를 숙이고 보는게 대부분인데 하물며 특정사안에 대해서 의견을 내놔서 정 맞을 일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번 찍히면 정말 오랫동안 그 발주처에서 배제가 되기 때문에 1+1이 2라는 명확한 사실조차 난 모르겠다고 함구해 버린다.

한번은 한 엔지니어링사가 발주처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곧 그 발주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썼는데, 연락이 발주처가 아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엔지니어링사로부터 왔다. 발주처측에서 엔지니어링사에 연락해 “너희가 제보한거 아니냐”고 괴롭힌 것이다. 취재과정 중 발주처의 횡포에 아무 말 못하는 엔지니어링사를 너무 많이 봐와서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 예를 드는 것만으로도 乙입장의 엔지니어링사에게는 큰 부담이라 나 또한 하다만 경우가 비일비재다.

또 다른 측면은 서열문화와 이공계 특유의 표현력 부족이다. 수직계열화된 엔지니어링사 특성상 굳이 먼저 나서서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나에게 돌아올 이득은 없다는 것을 잘알고 있는 것이다. 윗사람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움직이면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거다. 좀 다르게 생각하면 모두들 엔지니어링분야가 힘들고 어려운 3D라고 생각하지만, 경력관리만 잘하면 나름 70세 넘어서까지 상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어 소극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소극적乙의 행태가 수십년간 사원부터 회장까지 엔지니어링 전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국토부에 부당함을 지적하려고 해도 뒤에서 말 뿐이지 누구하나 자기이름을 내거는 경우는 없다. 다들 임금님 뒤에서 자신을 보호하려하지만 엔지니어링업계는 그 임금님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우리나라 엔지니어의 공신력은 점점 추락하고 있다. 수년전 동남권신공항 입지를 놓고도 외국엔지니어에게 물어보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연출한 것 아닌가. 그 외국엔지어보다 경력과 실력이 출중한 우리 공항엔지니어도 많지만 아무도 나서지도, 물어보지도, 믿어주지도 않는다.

얼마전 토론회에서 정치인과 교수가 4대강사업이 홍수예방에 도움이 되는가를 놓고 갑론을박을 했다. 지극히 공학적인 수자원분야를 왜 정치색에 따라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코끼리가 큰지 강아지가 큰지 논쟁하지 않는 것처럼, 4대강을 포함한 공학적 판단은 엔지니어에게 답변을 구하면 그만이다. 수학과 물리학에 의견 따위가 웬 말인가.

엔지니어들 상당수가 자신들을 잘 대우해주지 않는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다. 하지만 장구한 인류역사를 봤을 때 희생없이는 발전도, 자유도 없다. 외국엔지니어가 존경과 대우를 받는다고 푸념만 하지 말고 엔지니어 스스로 목소리를 내 이 사회의 전면으로 나서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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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현 2020-08-25 16:34:02
동감합니다. 사회의 전면에 나서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엔지니어들의 조직된 힘이 필요하지요!

냐야나 2020-08-21 16:40:58
우리나라에 엔지니어가 있나요?

정부가문제 2020-08-21 09:36:05
우리 업계에 드러나는 많은 고질적인 병폐와 문제점들은, 사실 근본이유, root cause,가 하나입니다.
바로 조선시대 양반이 머슴들에게 하던 행태를 떠올리게 하는 "갑질"입니다.
이 갑질은 이제 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른바 "갑질문화"입니다.

왜 말을 못하냐고요?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보통 큰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2차, 3차 피해를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런 피해자들에게 넌 왜 미투를 하지 못하느냐고 다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우리 업계에는 현재 구심점이 없습니다.
우리를 대변하여 헌신과 희생정신으로, 1+1은 2라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장 크게 반성할 곳은 엔협이 아닐까요?
이런 썩어빠진 갑질문화의 병폐에 대해 엔협은 무얼 해왔는지 궁금합니다.

힘드네요 2020-08-21 08:39:27
왜목소리를 못내는 구조인지 취재나 좀 하고 칼럼을 쓰세요. 지들도 까는기사 못쓰면서 누굴탓하는지원...코로나 시대에 실무자들 얼마나 무방비로 일하고 있는지 취재나 해보세요. 개인푸념을 기사화하지말고 ㅉㅉ

박용수 2020-08-20 16:14:49
매우 동감합니다.
엔지니어로서 이런 기사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토목엔지니어가 푸대접 받고 있는 이유중에 두개가
발주처의 슈퍼갑질과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귀 라고 말 못하는 소심한 엔지니어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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