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공토목대는 왜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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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공공토목대는 왜 안되나요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0.10.12 15:4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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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를 맞아 오랫동안 얼굴을 못본 의사인 지인을 만나 술한잔을 기울였다. 물론 국가 방역 원칙을 지키기 위해 집에서다. 술이 들어가자 지인이 ‘의사는 공공재 면허인데 운전면허만도 못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평소같으면 주취자의 헛소리겠지만 씁쓸하게 웃을뿐이었다.  

공공의대 설립 이슈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지역간 의료격차, 의사 인력난 등을 근거로 했다. 포장만 그럴듯할 뿐 본질은 그 어려운 의대진학을 기준 좀 낮춰서 쉽게 하자는 속내라는걸 누구나 안다. 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은 고문(古文)에 나오는 신성한 의무가 아니다. 그냥 그들이 누리는 부귀영화가 부럽고 배아플 뿐이다. 실제 그들이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수년간 잠 줄이고 명줄 깎아가며 하는 레지던트 생활은 안중에도 없다. 

전문직의 부귀영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만반의 마음가짐이 없다면 시작도 전에 엄청난 비용에 집안이 거덜나기 십상이다. 의사 한명 만들어보려고 온 식구가 허리띠 졸라매는건 기본이고 좁은 집으로 이사다니는 경우도 허다하게 보고 들어왔다. 

이런면에서 오히려 의사들, 그 외 수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의 부귀영화는 그에 따른 보상이란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문직이 버는 돈이 많긴 하지만 그들이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 들어간 시간과 노력 등이 남들보다 많아 더 가지는 것 뿐이다. 

진짜 인력이 부족해 공공재 성격의 인재발굴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면 단연 엔지니어다. 이공계가 추앙받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일명 ‘전화기’라 불리는 전기, 화공, 기계 등 취업끝판왕 3대 학과가 아니면 문과나 다를바 없다. 공부하는 양이 많으면 많았을 토목이나 자연계열학과는 바보들이나 가는 곳인 것이다. 당연히 토목학과를 진학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졸업해도 엔지니어가 되는 사람은 손에 꼽는 이유다. 

공공토목대 도입 따위가 언급되지 않을 것이라는 100% 확신이 여기에 있다. 의사, 타전문직과 달리 돈 못벌고 힘없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톱5안에 드는 연봉을 받는 엔지니어지만 국내에서는 평균 초봉 3,000만원대가 현실이다. 이마저도 순위권에 들어있는, 관심있는 취업준비생들 정도나 이름을 들어본 엔지니어링회사들이고 여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회사들이 수두룩하다. 돈을 더 받고 싶으면 연봉 5,000만원 이상 주는 시공사로 가는게 정상이다.

지위라도 해외처럼 갑-甲이면 좀 나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돈은 좀 덜 받아도 갑질을 하고 싶으면 공사, 발주처로 가는게 현실이다. 합사 사무실을 나가면 발주처 사원, 대리급 청년이 고급인력인 엔지니어의 출석을 부른다. 급이 낮으면 만나주지도 않으니 상무, 전무 등 임원급 인사가 넘쳐나는 직급인플레이션도 허다하다. 현재의 모습대로라면 엔지니어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실력없는 엔지니어가 양성될지도 모를 공공토목대 설립은 다행스럽게도(?) 없을 것이다. 

경쟁력 있는 엔지니어 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공공토목대 설립이 어불성설인 것은 맞지만 의사들처럼 사회적으로 예우받지 못하는 위치기 때문에 논의가 안된다라는 이유라면 그 인식은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정신개조가 절실하다. “나때는 말이야”라는 일하기 좋았던 옛 시절 얘기는 멈추자. 엔지니어의 자존심만 요구하는 기성세대의 헝그리 정신은 그나마도 엔지니어를 꿈꾸는 젊은 세대들조차 외면할 것이다. 발주처에 할말은 하고, 고급인력 유치를 위해 현실적인 처우 즉, 돈 많이주면 젊은 인재들은 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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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호 2020-10-12 16:44:47
직설적인 표현인듯 하면서도 와닿는 문장입니다. 저도 토목구조 관련일을 23년 해오는데...남는게.... 그다지.. 그냥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된다라는 격언따라 사는정도 이네요. 하지만 저희들일이 얼마나 공공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죠.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토목같은 기초 공학에 대한 사회 인식이 많이 변해야 할듯 합니다.

조민현 2020-10-15 08:32:18
최악의 건설안전특별법에서 볼수 있듯이 엔지니어 처우는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 일련의 관계되는 기관, 사람들이 각자의 맡은 바 의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적극 행정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나 책임을 약자에게 전가하는 사회병리가 가장 큰 문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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