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종심제 레밍즈
상태바
[사당골]종심제 레밍즈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0.11.11 1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리가 짧고 부드러운 털을 가진 나그네 쥐, 레밍(lemming)은 북유럽, 북아메리카, 유라시아 지역에 서식한다. 디즈니 영화 ‘하얀 광야’에서 수 십 마리의 레밍이 고의로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이 나오면서 집단자살로 유명해졌다.  

1991년 영국의 DMA디자인은 절벽으로 직진해 집단자살을 하는 레밍을 모티브로 한 게임, 레밍즈를 발매해 히트를 친 바 있다. 수 많은 레밍을 출구까지 무사히 이동시키기 위해서 플레이어는 다리를 놓고 땅을 메우고 장애물을 폭파해야 한다. 개발자는 “집단주의에 빠진 인간을 레밍으로 치환했고, 잘못된 길을 수정해 올바른 길을 제시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기쁨을 준다”고 설명했다. 1980년 초 주한미군 사령관 위컴은 집단주의적 습성을 들어 한국인을 레밍에 비유하고, 한국은 민주주의가 맞지 않다고 발언한 바 있다.

국토부발로 종합심사낙찰제가 시작된 지 1년 반이 지났다. 2018년 시범사업 당시 저가낙찰, 제안비용, 과도한 영업이 예상되는 부작용이었다. 이 중 낙찰률은 80%대를 확보하며 문제를 일정량 해소했고, 제안비용도 낙찰률 상승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은 유지했다.

하지만 과도한 영업은 아직까지 해결이 요원한 부분이다. 오죽했으면 수 개월전 엔지니어링업계에서 선언적 수준을 넘는 자정 결의를 했겠나 싶다. “영업비로 나가는 비용도 아깝지만, 이러다 사정당국의 조사까지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식이었다. 결의 이후 업계의 개선의지는 나름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서로서로 합법적인 수준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붉어진다. 최근 호남고속철도 2단계 등 900억원 규모의 철도감리 10개 공구가 종심제로 발주됐는데 평가위원의 내부직원 비율을 크게 올렸다. 업계는 기술이나 사업을 잘 모르는 외부위원보다 내부위원이 더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청렴도도 아주 조금 높다고 평가한다. 나름 긍정적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내부직원의 평가위원 확대는 곧 더 많은 전직관료를 더 많은 연봉으로 엔지니어링업계에서 채용하라는 압박으로 보인다. 실제 종심제 이후 전직관료 영입이 늘어나고 연봉도 올라갔다. 왼주머니를 빼서 주던 오른주머니를 빼서 주던 돈 나가는 것은 매한가지인 셈이다.

업계는 기술력 위주의 입찰이라는 미명하에 단 0.1점만 점수를 높여서 채점하면 무조건 사업을 수주하는 종심제가 엔지니어링업계에게 과도한 영업과 불합리를 강요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최근에는 과도한 영업과 전관 영입없이 기술력만으로 승부하면 발주처에 찍혀 컨소시엄 구성시 왕따를 당할 정도니 말이다. 

종심제라는 판에서 엔지니어링사는 한 마리의 레밍이 되어 전진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굴곡도 있고 장애물도 있었지만,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저 멀리 천길낭떠러지가 눈앞에 보이고 있다. 현실의 한계에 부딪혀 무작정 전진하기보다 한 박자 쉬며 계곡을 건널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 때가 아닌가 싶다.

엔지니어링데일리 정장희 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