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연의 건설과 금융]호주 PPP의 Trust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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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연의 건설과 금융]호주 PPP의 Trust 제도
  • 엔지니어링데일리
  • 승인 2020.12.0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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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왕이 있었다. 왕은 직접 영토를 소유하고 있진 않았지만 각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의 충성을 얻어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해나갔다. 각 지역의 영주(‘을’)와 왕(‘갑’)은 계약을 통해 관계가 맺어졌으며 영주는 토지와 군사력을, 다시 왕은 해당 토지의 지배권을 보장하는 형태로 봉건제도가 만들어졌다. 이 관계의 본질은 영토인 바, 영토를 기준으로 계약상 ‘갑’에게 계약상의 군사력이나 공물을 제공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계약위반이 되었다. 물론 그 공물은 농노들의 노동력 및 세금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어쨌든 서양문화권은 동양문화권과 다르게 이러한 계약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영국에서는 최근 19세기 중엽까지 ‘계약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대원칙이 강해서 천재지변(Force Majeure)과 같이 계약상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당사자가 책임이 있다는 ‘절대계약의 원칙(the rule as to absolute contract)’이 적용되어 왔다. 이는 현대 영미법에서 Frustration이 대륙법의 Force Majeure과 같은 개념으로 쓰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륙법과 영미법의 차이 중 또 다른 하나는 계약의 성립조건인데 대륙법에서는 당사자 간의 청약과 승낙의 행위만으로도 계약이 성립된다고 보지만, 영미법에서는 계약을 통해 서로 주고받는 것(약인, 대가 혹은 Consideration)이 있어야만 성립되므로 가끔 계약서에 1파운드, 1달러 같은 사실상 큰 의미 없는 숫자가 포함되기도 한다. 어쨌든 ‘을’은 계약상 약인(Consideration)의 명목 ‘갑’에게 지급해야할 것이 있었는데, 이를 피하고자 자신의 자산을 믿을만한 제3자에게 맡기고 그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만 취하여 납세부담을 줄이는 신탁(Trust)구조가 생겨나게 된다. 이 신탁구조를 통해서 위탁자는 수탁자에게 자산의 소유권을 넘기는 대신, 위탁자 본인이나 위탁자가 지정하는 자에게 그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지급되도록 하였다.

호주에서도 이러한 구조가 잘 발달하여 Unit Trust(단위형 신탁)나 Discretionary Trust(재량형 신탁)이 존재하는데, 전자의 경우는 해당 Trust의 Unit(일종의 주식)의 비율대로 수익이 분배되는 것이고 후자는 수탁자의 재량으로 수익을 배분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들이 영미법 국가 중 하나인 호주 Securitised License PPP 구조에 잘 드러나 있다.

전형적인 호주 PPP 사업 구조(출처 :Privatisation and Infrastructure – Australian Federal Tax Framework -ATO)
전형적인 호주 PPP 사업 구조(출처 :Privatisation and Infrastructure – Australian Federal Tax Framework -ATO)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SPC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PPP사업구조는 법인형태로 설립된 SPC(사업시행법인)가 대주와 대출약정서를 체결하여 타인자본을 조달하고, 주주는 그 SPC에 자기자본을 투입함으로써 전체 사업비를 조달한다. 그리고 SPC는 주무관청과 실시협약을 통해서 사업시행권한을 보유하는데, 자산의 소유권(유형자산)을 실시협약의 만기에 주무관청에게 넘길 수도 있고, 아니면 완공 후 바로 주무관청에게 소유권을 넘기되 운영권(무형자산)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호주의 경우는 위에서 언급한 ‘약인(대가)’이 계약 성립의 조건이므로 주무관청이 사업 시행법인에게 제공하는 운영권(License)에 대한 대가(License Payment)를 수취해야한다. 다만, 그 대가를 주무관청이 받는다면, 그만큼 사업비가 증가되므로 PPP개념과 딱히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Securitised license’라는 명목으로 유동화(Securitisation)하여 사업주 간의 내부거래화 시킨다.

호주 PPP구조에서 사업주는 ProjectCo 신탁(혹은 법인)과 FinCo를 설립하는데 ProjectCo는 주무관청과 계약의 당사자가 되며, FinCo는 대출약정을 통해 타인자본을 조달하는 역할을 한다. FinCo를 통해 조달된 타인자본은 ProjectCo와의 대출약정을 통해 타인자본을 공급하기도 하지만, 주무관청에게 Receivable License Payment Purchase라는 명목으로, 운영이 시작된 이후에 주무관청이 받을 License Payment의 수취 권리, 즉 매출채권을 사오게 된다. 이에 따라 ProjectCo는 주무관청이 아닌 FinCo에게 License Payment를 지급한다. 주무관청이 받은 Receivable License Payment Purchase 거래는 일반적으로 사업초기에 발생하므로 공사 Milestone에 따라서 최종적으론 공사비로 지급되며, 운영기간 중 지급하는 License payment는 대주 원리금상환으로 사용된다.

배당은 어떻게 되느냐, Unit Trust구조를 활용하여 ProjectCo 신탁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지분율대로 분배받는데, 이 ProjectCo 신탁을 관리하는 수탁자(Trustee) 역시 사업주가 소유하고 있는 법인이라서 사실상 같은 조직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신탁(Trust) 구조는 세금면에서도 혜택이 있다. 기본적으로 신탁 구조 자체가 양도세(Capital Gain Tax) 감면이 가능하다. 또한 신탁 자체가 상법의 영향을 받지 않아 세금을 내지 않으므로, 소득세(Income Tax)는 신탁을 통해 수익을 받는 각 개인들에게 별도 적용된다. 따라서 소득 구간에 따라서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을 수도 있다. 또한 PPP구조하에서는 세금 납부를 이연시켜 이후에 발생하는 납세 의무와 상계하기도 한다.

호주의 일반적인 상업용 인프라 시설이나 발전 사업에서는 이런 구조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도 ‘주무관청과의 실시협약’이라는 PPP의 본질적 계약과 그럴 통해 얻는 사업시행권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지급할 것인가의 고민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는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나라 조상들의 경험과 주택에 대한 가치가 반영돼 생겨난 제도이다. 호주도 과거의 오래된 경험이 현재까지 이어져서 동일한 사안도 다르게 해석하고 대응하는 것 같다. 즉 한 나라에서 제대로 사업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나라가 경험한 것을 잘 아는 조직을 갖추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런 기본 없이 ‘좋은 기술력’으로만 승부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이야기지만 지금의 부동산정책과 그에 따라 터져 나오는 시장의 반응이 향후 우리 기억 속에 어떻게 새겨져서 미래의 판단 기준에 영향을 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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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2021-04-09 12:42:2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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