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미투 폭로의 자유가 부러운 엔지니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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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미투 폭로의 자유가 부러운 엔지니어들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1.02.25 11: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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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일 기자
조항일 기자

2017년 10월. 미국 헐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중 한사람인 하비 웨인스타인에 대한 여배우들의 성추행 고발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시작된 미투(MeToo) 운동은 단순 성(性)추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나도 당했다'라는 의미로 최근 우리사회에 엄습하고 있는 학교 폭력도 결국에는 미투와 결을 같이 한다.

미투의 특성은 '과거형'이란 것이다. 이로 인해 인터넷, 유튜브, SNS 등 거대한 익명 공간에서 시기와 질투심을 숨기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자료들을 결정적 단서처럼 편집하고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가해자들도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왜 과거의 일을 이제와서 얘기하냐"라고도 하지만 ‘진짜’ 피해자들은 그 당시 공포와 트라우마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과거형일 수 밖에 없다.

미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전히 과거의 삶을 사는 이들이 토목엔지니어들이다. 업계 사람 아니어도 들어봤을 발주처 갑질에 대한 미투는 2021년에도 불가능하다. 떠도는 소문도 아니다. 당한사람이 정말 즐비하다. 하지만 막상 다가가면 뜬구름잡는 소리만 한다. 업계에 발 담그는 순간 평생 발주처를 모셔야하기 때문이다.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엔지니어의 특성상 은퇴를 하거나 타업종을 가거나 하지 않으면 평생 입을 닫고 살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토목분야는 발주처와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공유하기 때문에 미투가 불가능한 것인가 싶다.

턴키합사 취재에서 언급했던 술 사주는 건 로비나, 접대로 쳐주지도 않는게 현실이다. 발주처 공무원이 "가방을 가지고 싶다"거나 "지갑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말을 허투루 들으면 안된다. 여자친구, 와이프의 푸념은 모른척해도 내 발주처 공무원의 말은 지나치면 잠자리가 불편하다. 어렵게 취재해 들은 얘기가 이정도인데 중소기업도 아니고 무려 상위 30개사 중 한 곳의 사례다. 여기에 들지 못한 수천개의 엔지니어링사들의 상황은 진부한 표현으로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대형사들이 좀 나서주면 되지 않느냐라고 푸념한다. 하지만 위로 갈수록 더 많은 일을 따내야 하는만큼 오히려 발주처에 할말 못하는게 현실이다. 발주처 얘기 물어보면 함구하거나 일반적으로 아는 사실에 조미료 좀 쳐서 들려줄 뿐이다. 기자로서 진짜배기를 끌어내지 못한 능력의 부재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적나라한 실체를 얘기해주지 않는다.

답답하지만 이해가 간다. 25만에 달하는 건설엔지니어와 그가족들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엔지니어링업을 해나가려면 발주처의 비위를 맞출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당장의 안전제일주의는 발주처 갑질을 영영 근절시킬 수 없다. 대가개선도 없다. 궁극적으로 엔지니어 유입이 막혀버리고 4차산업혁명의 핵심이라는 엔지니어링이 대한민국에서는 사양산업이 될 수도 있다.

결국에는 정면돌파 뿐이다. 토목관련 인터넷 카페를 보면 여전히 뜨겁게 토목엔지니어를 꿈꾸는 미래의 인재들이 널려있다. 공무원보다 현장 일선에서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으로 일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을 망설이게 하는 건 발주처의 갑질과 열악한 환경이다. 올해는 발주처 횡포에 대한 용기있는 미투를 해줄 수 있는 엔지니어가 나오길 바란다. 취재원 보호는 언론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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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기술인 2021-02-25 17:25:30
웬일로 맞는 소릴 다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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