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엔지니어 대우가 여기까지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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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엔지니어 대우가 여기까지인 이유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1.03.12 10:04
  • 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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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하는 엔지니어링사의 소개서를 보자. 맨 앞장은 주요 임원 프로필이 장식돼 있는데 국토청, LH공사, 서울시, 부산시, 수자원공사, 도로공사 등 각 발주청별로 50여명이 소개돼 있다.

본부장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 전직관료 출신이다. 대략 청장급이면 회장, 서기관, 처장급이면 사장 직함이고 사무관, 주무관, 부처장, 부장은 부사장, 전무를 부여한다. 이러다 힘 빠지면 부회장 직함을 준다. 이래저래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만 한 회사당 수 십명을 넘어 100여명에 육박한다. 전군의 간부화가 아니라 전군의 장군화 수준인 셈이다.

대우를 보자. 엔지니어링 능력이 전무한 부사장급 연봉은 5,000만~7,000만원 수준이고, 사장급은 그보다 3,000만~5,000만원 더 준다. 급에 비해 생각보다 적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다들 연금을 받으시느라 연봉을 많이 받으면 오히려 손해여서 나름 최적화시켰다고 보면 된다. 대신 월 수백만원을 사용할 수 있는 법인카드, 고급차 그리고 방을 제공받는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전직관료의 주업무는 영업과 담합이다. 현직들 돌아가며 밥 사고 술 사고 필요하면 한 단계 높은 영업도 한다. 주요한 입찰이 있을 때 전관들끼리 모여 짬짜미 컨소시엄을 맺는 것도 일이다. 사실 설계를 할 수 있는 전관은 기술사를 따고 젊었을 때부터 시작한 사람 정도다. 극소수다. 나머지는 엔지니어링 능력이 없다고 보면 된다.

가끔 탁월한 영업력을 갖췄거나 오너의 비위를 잘 맞추면 더 오래가는 경우도 있지만 유통기한은 대략 3년 정도다. 최근에는 2년으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서로에 대한 시기질투도 커 같은 급수인데 새로 영입된 사람이 직급을 위로 받으면 불평불만이 커진다. 이들에게는 받는 돈 보다 등급과 체면이 중요하다. 계급이 우선시되는 공직에 오래있어 그렇다.

수년에 걸쳐 엔지니어링 수주가 늘다가 지난해 정점을 찍었다. 대부분 엔지니어링사가 연봉도 올렸고 성과급도 뿌렸다. 돈을 벌어서 뿌린 측면도 있지만 실제는 장사를 더 잘되게 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 내 회사 엔지니어는 지키고 타사에선 빼앗아와야 이 호경기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질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과, 차, 부장급 엔지니어가 크게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일은 많은데 엔지니어는 없는 셈이다. 실제 전관비중이 높은 엔지니어링사 일수록 따놓은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해 공동도급사 원성을 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당장 기술형입찰 합사도 엔지니어가 모자라 한 달에 2,500만원 주고 프리랜서를 모시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엔지니어링사 숫자가 급증한 이유도 얼마 되지 않는 월급 받는 것 보다 뜻있는 엔지니어 몇 명이 엔지니어링사를 차려 하도급을 받는게 훨씬 이익이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링이 살려면 실질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엔지니어의 대우를 더 높여주고 신입사원의 연봉도 높여 공무원, 공사, 시공사로 갈 인재들을 엔지니어링업계로 끌어들여야 한다. 자본주의는 역시 돈 아닌가. 하지만 이 해결책은 전직관료와 고압적인 발주처로 인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고비용의 전직관료와 그들의 영업대상인 발주처가 끊임없이 엔지니어링업계에 로비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하지만 국토부에서 추진하는 모든 정책이 발주처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엔지니어링사가 감히 거역했다가는 회사문 닫을 생각을 해야한다. 비단 전관뿐일까. 상무 이상만 되도 실제 엔지니어링 업무보다 영업을 우선시 해야 하는 판 아닌가.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엔지니어링사 절반이 고비용을 들여 발주처 영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현시점의 엔지니어링업계는 공무원, 발주처를 배불려 주기 위해 엔지니어가 희생해야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경영진은 현재 엔지니어링 대가가 낮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고비용의 영업비를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실무 엔지니어의 대우를 높여줄 수 없다. 결국 엔지니어링은 만악의 근원인 전직관료와 발주처가 해결돼야 뭐라도 할 수 있다.

이쯤되면 공무원 공사만 준비하고 엔지니어링업계를 기피하는 대학생들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임금이 좀 적으면 어떤가. 공무원이 돼 갑질하며 로비 받고, 퇴직후에는 엔지니어 위에서 나 사장이요, 부사장이요 하면서 군림할텐데 말이다. 최근 LH사태처럼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평생 벌 돈을 바짝 당겨서 벌수도 있다.

비대하고 강력한 관료조직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해진다. 이득만 보려는 보신주의 관료주의가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패악을 가져오는지 엔지니어링업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앞으로 엔지니어링 정책의 핵심이 “어떻게 하면 발주처를 축소하고, 전직관료를 쫓아낼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엔지니어링데일리 정장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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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haha 2021-03-12 10:52:52
엔지니어들의 이러한 문제 인식 기저에는 영업보다 엔지니어링 그 자체가 더 중요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 분야라는 것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스스로 엔지니어링 활동을 너무 저평가 하고 있지 않은가?
마음이야 그렇지 않더라도 각종 기술회의나 업무회의에서 비상식적이고 무리한 의견들(가끔은 무지한)이 채택되고 그걸 같은 (관리분야)엔지니어들이 방조하고 있지 않은가?
수주를 위해, 원활한 사업진행을 위해 대다수 엔지니어들의 희생을 우리스스로 묵과하고 있는 것이다.
관리분야이든 기술분야이든 엔지니어들이 하나로 뭉쳐서 불합리를 거부해야하는 것이다.

장관이다 2021-03-12 14:27:10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사입니다.

2021-03-12 13:08:27
너무 맞는말만 해서 눈물이 난다..
오랜만에 정곡을 찌르는 기사

엔지니어링 2021-03-12 10:24:58
오랜만에 속 시원한 기사네요

나는간다 2021-03-16 23:47:20
수 많은 건설 엔지니어분들 이글에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혼자만 공감하시지 마시고 주변 엔지니어분들에게 공유하면 좋겠습니다.
건설 엔지니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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