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엔지니어링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
상태바
[사당골]엔지니어링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1.04.23 17:03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엔지니어링업계는 대략 4,000개 엔지니어링사, 30만명 엔지니어로 이루어져있다. 이 중 노동조합이 활동 중인 곳은 한국종합기술, 삼안, 동명기술공단, 서영엔지니어링, 건일엔지니어링, 유신, 경호엔지니어링, 선진엔지니어링, 한국항만기술단까지 9개로 타 산업에 비해 결성률이 크게 떨어진다.

실질적인 조합원 숫자도 예전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통상 임원으로 분류되는 이사 직급부터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다. 빠르면 40대 초반에 가능한 직급으로 대기업이라면 과차장급에 불과하지만, 이상하게도 엔지니어링업계는 승진이 빨라 임원들이 많다.

실무진이 대다수가, 똘똘 뭉쳐 권익을 이뤘던 민주화 세대에서 IMF세대로 전환된 것도 노조가입률이 낮아진 주된 원인이다. IMF 터널을 통과하면서 한국사회는 보수적이고 개인주의가 심화됐다. 즉 노동자 연대보다는 자기계발과 스펙을 쌓아 가치를 높이는 방향이 주류가 됐다는 것이다. 신입사원 노조가입률이 역대 최저치인 이유다.

리먼사태 이후 2012년까지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엔지니어링업계는 2013년 이후 꾸준한 성장세 보이다 지난해 최고점을 찍었다. 물론 힘든 곳도 있지만, 수주와 대가가 동시에 상승하면서 그간 동결됐던 임금도 상당량 올랐다. 여기에 PQ중복도까지 한 몫 하면서 최근에는 과차부장급 엔지니어는 서로 모셔가기 바쁘다. 일정부분 실력과 경력이 있는 엔지니어라면 고용불안은 낮고, 오히려 몸값 높이기 좋은 시점이다. 당연히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이직했다면 새롭게 가입할 일도 없다.

삼안 노동조합은 프라임그룹 위기 당시 노조원이 1,100명이었다가 5년 전에는 387명, 현재는 170명에 불과하다. 노조위원장도 강성에서 협상파로 바뀌었다. 인시티로 촉발됐던 서영엔지니어링 노동조합 또한 280명에서 130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노동조합을 주축으로 회사를 인수했던 한국종합기술만이 탄탄하게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위기에 뭉치고 호경기에 풀어지는 형국인 셈이다.

사실 경영자 치고 노동조합을 달가워 할 사람은 없다. 엔지니어링업계도 마찬가지여서 노조의 ‘노’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킨다. 상당수가 채용 시 노동조합에 대한 압박면접을 펼쳐 가입을 원천차단하고, 승진과 근무평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회유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노동조합의 위상과 세력이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엔지니어링업계 일감 대부분은 정부로부터 발생한다. 대가, 품셈, 사업조건 모두를 정부에서 정해준다. 때문에 영업이익률은 낮지만 타 산업에 비해 안정적이다. 즉 엔지니어링사는 민간기업이지만 일의 성격과 구조를 보면 사실상 공공영역에 더 가깝다고 보면 된다. 이 말은 엔지니어링 이익률과 임금수준은 경영진의 성향보다 엔지니어링대가 즉 정부가 바라보는 엔지니어링의 가치에서 결정 난다는 것이다. 정부는 엔지니어링사에 임금뿐만 아니라 전관을 통해 인사권도 행사하고, 로비를 통해 판공비도 받아가고 있지 않는가. 조금만 비약하자면 엔지니어링업계의 진정한 사용자, 경영진은 정부 발주처다.

현시점에 엔지니어링 노동조합의 가치가 더 높아져야 한다. 제대로 된 산업별 노조를 형성해 진정한 사용자인 정부를 상대로 압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낮은 대가, 전관, 로비, 발주처 갑질 등 엔지니어링업계 무수한 불합리를 노동조합 깃발아래 투쟁한다면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개선이 가능하다. 물론 경영자들도 이제까지 협단체를 통해 불합리 개선에 나섰지만 관료주의와 고양이 목에 방울걸기 식의 분명 한계가 있었다.

서로를 적으로 상정해 으르렁 거려봐야 남는 것은 상처밖에 없다. 노사 간 내부의 투쟁도 필요하겠지만, 앞으로는 진정한 주적인 정부를 대상으로 한 투쟁에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확대된 엔지니어링 노동조합의 활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장희 엔지니어링데일리 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낙영 2021-05-15 19:23:04
2001년에 20만 엔지니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우리사에서 엔지니어도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산업별노동조합인 건설엔지니어링노동조합이 결성된 이후 현재는 대산별노조인 공공노조 산하 지부로 활동하고 있는 수석부지부장겸 지회장입니다
이런 기사를 작성해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리며 기사내용중 이사를 임원이라고 하지만 엔지니어링업계에서는 사실상 임원이라고 하긴 어려우며 설사 임원이라고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등기이사가 아닌 이상 노동조합 가입은 가능합니다

엔지녀 2021-04-28 14:50:06
건일기술공사는 대체 어디죠? 건일엔지니어링 아닌가요?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