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30년뒤 한국 엔지니어링
상태바
[기자수첩]30년뒤 한국 엔지니어링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1.08.23 16:40
  • 댓글 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항일 기자
조항일 기자

지난해 건설엔지니어링업계는 코로나19 펜데믹 속에서도 이례적인 수주 행보를 보이면서 가장 찬란한 한때를 보냈다. 업계 사상 최초의 매출 1조원 기업도 나올뻔 했다. 작년만 못하지만 올해도 조용하게 제몫을 하고 있는 엔지니어링업계다.

화려한 겉모양새와 달리 요즘 건설엔지니어링업계는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아니 이미 10여년전부터 ‘사람없다’란 말을 입버릇처럼 해오다가 최근들어 심각해진게 맞다. 중소 엔지니어링사들은 자구책으로 예비합격자를 2~3배수 늘리고 있지만 평균 30명, 많아야 50명인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타사 면접에서 떨어진 지원자를 보내주면 안되냐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다. 신입 없는 현실은 외면하고 10여년간 우상향해 온 업계 상황에 안주한 결과다. 그래서 엔지니어링사들은 공채보다 상시모집을 하는 경향이 크다.

핑계없는 무덤이야 없겠지만 사회경험 안해본 취준생 입장에서는 큰 메리트를 못 느끼니 지원을 안한다. 물론 연봉은 최근들어 순위권 회사들이 초봉 4,000만원대 상당의 돈을 주면서 덩치는 커졌지만 여전히 연봉은 시공사가, 지위는 공무원이 탑이다.

그래서 토목과 나온 인재는 죄다 공무원, 공사, 건설사에 뺏기고 있다. 내 가치가 가장 높고 소중한 MZ세대다. 돈을 많이 받던 갑질을 하던 둘 중 하나는 해야할 게 아닌가. 더욱이 기존 엔지니어들 가운데 일부는 후배들을 위한답시고 “엔지니어 말고 공무원 하라”는, 조언을 가장한 자조적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이러한 선택을 부추기고 있다. 틀린말은 아니다. 연봉은 제일 작아도 현직에선 로비로, 은퇴하면 엔지니어링사에서 억대 연봉 받으면서 평생 부족분을 메울 수 있는게 공무원이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꾸려나간다 쳐도 문제는 30년후다. 매년 공무원은 늘어나는데 일할 수 있는 엔지니어는 없어지고 있다. 너도나도 공무원하겠다고 하다가 일하는 기술자는 없고 뒷짐 진 감독관만 남게 될 판이다. 그렇다고 전관은 없어질까. 퇴직자는 많아지는데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리 없다. 현재의 전관 시스템이 30년뒤에도 계속된다면 말이다.

결국 당연하게도 업계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엔지니어 유입이, 세대교체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취업경쟁률 100대 1이 우스운 요즘 취업시장에서조차 인력난을 겪는다는건 좀 과장해서 한국 엔지니어링산업의 소멸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기성세대가 뒤로 숨지 말고 당당해져야 한다. 돈 많이 주는 회사를 시기하고 따돌릴게 아니고, 주52시간을 지키는 수준을 복지라고 얘기하면 안된다.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적힌 '사물이 실제 보이는 것 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구처럼 매년 수주고를 경신하고 있는 한국 엔지니어링산업이 겪고 있는 인력난은 명백한 위기 시그널이다. 일 특성상 엔지니어가, 엔지니어링사가 사라질리야 있겠냐고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이던 원자력 기술과 엔지니어는 불과 5년만에 죄다 해외로 유출됐다.

명백한 위기상황이지만 시장자본주의 논리로 보자면 가장 권력의 정점의 시기에 있는 엔지니어링업계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없다. 요즘 턴키합사에 사람이 없어 프리랜서 엔지니어를 3개월 쓰면서 1년치 이상 연봉 주는게 그 단면이다. 이 시기를 허송세월 보내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싫어하는 일본의 기술력에 의존해야하고, 세계 선진국의 돈벌이 국가로 전락할지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9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30년후가 아니라 지금이 문제 2021-08-24 10:31:21
한강은 유유히 수천년을 흘러가는데 그주변 회사의 월급쟁이들은 30년이면 거의 바뀌지요. 이직, 퇴직, 은퇴 등. 30년을 걱정할 수 있는 장생의 존재가 아닌게 월급쟁이죠. 해외 기술자들과 친분 있으신 분들 잘 아실꺼에요. 워라벨이 민주주의보다 더 잘 지켜진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거죠. 인생 중 피크타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사회초년생이 30년 고생하면 나이 60훌쩍. 지금 4,50대가 30년후면 병환이거나, 돌아가셨거나 그나마 하우스푸어 늙은이의 모습이죠. 엔지니어 업계의 문제는 30년후가 아니라 지금이 문제인거죠. 지금 인생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3,4,50대 엔지니어들이 컨설턴트가 아니라 용역업자로 규정되어진다는 것이 이바닥이 회복불가 망해가는 기본 베이스입니다. 벌써 반신불수 상태 아닐런지요.

Lgy 2021-08-26 09:05:56
턴키입찰제도를 없애고, 적정설계비를 책정하면 해결됩니다.
합사에서 기술자가 그림만 그리고 기술적 판단에 대한 가치를 훼손당하는 마당에 엔지니어 유입은 요원한 일입니다.
90일동안 2~3천억 프로젝트를 수행하는게 코미디이지~
지금의 한국 턴키제도는 역사상 희대의 코믹 전유물로 봐야합니다.
그 많던 유능한 기술자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기술자는 역학을 바탕으로 한 공학적 판단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제도가 만들어져야 함에도, 오직 행정적 기술업무만이 고귀한 가치있는 업무로 여겨지는 현 제도는 결국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시설물에 대한 안전의 문제와 귀결 되는 것임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합니다.
특히, 발주자와 설계사 경영자분들께서는 더더욱 말입니다.

이이가 2021-08-27 22:30:50
공무원 경력은 엔지니어링기술경력이 아니고 행정기술경력입니다. 동일하게 취급하니 같이 놀고. 있군요. 가소로운 새끼들....

야근머신 2021-08-24 19:50:09
"주52시간을 지키는 수준을 복지라고 얘기하면 안된다."

->뼈를 때리는 말이네요..
이것도 복지라고....(지키지도 않으면서)

맞는말입니다 2021-08-23 17:05:55
맞는말이네요. 소멸하겠어요 이러다가.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