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위기의 SOC, '불평' 보다는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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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위기의 SOC, '불평' 보다는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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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1.1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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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일기술공사 김재성
지반터널본부장(부사장)

 엔지니어링을 비롯한 건설업계 전반이 위기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인 경기둔화와 인프라에 대한 인식변화 또는 복지우선정책으로 인한 예산삭감 등 많은 근거를 제시하면서 비관적 전망을 확산시킨다. 정말 엔지니어링 업계는 이들의 말대로 위기에 빠져 있으며 사양사업이 되어가는 중일까.

천만에,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위기설을 잘 들여다보면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 경기는 사인(sin)곡선을 그리며 순환하니 "불경기 다음에 호경기가 오지 않겠는가"하는 일반적인 말을 하자는 게 아니다. 위기는 기회라거나 환경은 변화와 적응을 요구한다는 구호성 멘트를 날리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우선 위기라는 말부터 생각해보자. 모든 사업은 항상 위기를 내포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이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 항상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면 현재를 특정해 위기라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위기의 근원으로 꼽는 환경 변화 역시 그렇다. 사업환경은 늘 변화해 국제적인 여건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 현재를 특정하는 근거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본다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은 전후부터 지속되어 온 국토개발의 수혜로 건설업계가 누려온 호황이 아닐까. 대도시와 주변 위성도시 개발로 끊임없이 지속되던 도시기반시설의 확충, 저임금으로 우수한 인력을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던 유리한 사업구조가 호황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건설산업 환경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나 또한 심정적으로는 그들의 생각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분석이나 이성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와 업계 동향에 눈을 감고 얘기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지금이 위기인지 아닌지를 두고 벌이는 설전은 그 자체만 가지고 보면 별 소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관점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성을 잡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수메르, 이집트인 자연환경에 맞서 문명재창조

▲ 1947년 타임지에 게재된 토인비 사진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 문명이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다고 말한다. 이집트와 수메르 문명을 살펴보면 그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랜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는 동안 아프리카와 메소포타미아 유역은 생명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초원지대였다. 나무에서는 가지가 휠 정도로 열매가 열렸으며 사냥거리도 충분해서 수렵과 채취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우호적인 자연환경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가던 1만 년 전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얼어붙었던 유럽은 초원지대로 바뀐 반면에 메소포타미아는 건조지대로 들어선 것이다. 숲이 사라지고 땅의 지력이 고갈되자 이곳에서 살던 인간에게는 세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 새로운 정주환경을 찾아 이주하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 남아 버텨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환경변화에 맞추어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첫 번째, 유럽의 초원지대로 이주한 인간들은 기존의 삶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문명을 꽃피울 여력은 가지지 못했다. 두 번째, 환경 변화라는 도전에 응하지 않고 그냥 버티기로 한 인간들은 가장 혹독한 시련을 받았다. 지력이 부족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먹는 양과 인구를 줄이자 외부침략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세 번째, 건조화라는 환경재앙에 맞서 둑과 관개수로로 부족한 물을 확보하면서 농경기술을 개발해 나갔다. 자연환경의 변화에 두뇌와 기술을 무기로 응전한 것, 바로 이들이 수메르와 이집트 문명을 창조해 낸 인간들이다.

▲ 수메르 문명의 유적지<사진출처:Rolfcosar (en.wikipedia.org)>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건설환경 변화와 이에 맞서 발버둥치는 엔지니어링업계의 대응전략을 토인비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정주공간의 이동은 새로운 사업물량을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리는 업체가 택한 방법이다. 지력이 떨어진 땅에 남아 버티는 것은 구조조정을 택한 업체에 해당한다. 농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한 수메르와 이집트인은 사업다각화 구조개선을 통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하고 패러다임을 개선하는 것에 해당할 것이다.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까. 아마도 토인비라면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하라고 조언할 듯싶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우리는 셋 중의 하나가 아니라 세 가지 방법, 다시 말해 구조 조정을 통한 효율적인 업무환경 개선, 해외진출을 통한 새로운 사업물량 확보,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성장동력 창출을 동시에 수행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SOC불황 新패러다임으로 극복
 세계대전 이후 기반시설 재건으로 급성장을 계속하다가 점차 사업물량 감소로 우리나라 엔지니어링 업계와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던 유럽을 살펴보자. 형식이나 규모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전후의 유럽 엔지니어링 역시 지속적인 성장가도를 달려 왔고 이러한 추세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 독일 아우토반(프랑크푸르트)<사진출처:Vladislav Bezrukov (en.wikipedia.org)>
그러나 전후 복구가 마무리되고 어느 정도 사회기반시설이 갖추어진 1970년대 후반부터 건설산업 전반에 걸친 저성장 기조는 엔지니어링업계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특히 1976년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폭락과 석유파동은 유럽 건설경기를 끝이 안 보이는 불황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그 여파로 잔뜩 몸집을 불려놓았던 설계회사들은 하나 둘 파산의 위기에 내몰렸고 많은 회사들이 기업합병의 형식으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일부 회사는 오히려 불황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가장 뚜렷한 변화는 설계(Design)에서 관리(Management)로의 전환이었다. 이들은 무형의 설계경험을 특허로 만들어 가치평가가 가능한 유형의 자산으로 전환시키고 이를 상품화했다. 그리고 자사의 기술을 적용한 현장을 지원하는 CM(Construction Management) 또는 PM(Project Management)을 통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할 수 있었다.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을 도입해 기능 위주의 부서 단위를 프로세스별로 재편한 것도 새로운 사업 환경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줬다.

▲ 프랑스 엔지니어링 기술이 집약된 라데팡스 신도시
<사진출처:http://www.ladefense.co.kr>
 이러한 변신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설계회사로는 프랑스의 VINCI, 영국의 AMEC, 독일의 Hochtef, 스웨덴의 SKANSKA, 네덜란드의 FUGRO 등을 들 수 있다. 나름대로 주력분야가 다르고 관리시스템도 현저한 차이가 있지만 모두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내부 혁신을 통해 현재에 이렀다는 점에서는 이론이 없다.

 일례로 최근 유럽 설계회사의 프로젝트 수행방식을 보면 핵심설계는 자사의 원천기술을 활용하고 인건비가 많이 드는 일반설계는 후발 사업국가에 맡기는 콘소시엄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렇게 확보한 가격경쟁력이 해외사업 수주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2006년 한국 유럽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설계업계가 유럽장벽을 뚫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부분이다.

어렵다고 불평말고 세계시장에 도전해야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국가재건사업과 산업화의 물결로 오랫동안 건설경기의 호황을 누려왔고 그 과정에서 고도의 설계기술과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렇게 얻은 기술과 경험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할 때가 아닐까. 석유플랜트 사업을 보자. 2011년 우리나라가 수입한 원유는 9억 27백만 배럴로 물경 110조 원이 넘는다. 이 중 대부분은 국내에서 소비했지만 20% 남짓한 2억 배럴의 가공 수출로 60조원을 다시 벌어 들였다. 이를테면 꽤 수지가 맞는 장사를 한 셈인데 그 배경에 오랫동안 축적된 플랜트 엔지니어링의 경험과 기술이 자리 잡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석유화학뿐 아니라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조선 정보통신 자동차 산업 역시 고도로 축적된 엔지니어링의 힘이 아닌가. 이에 못지않은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건설 분야도 이렇게 웅크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건설엔지니어링이 건국 이래 최악의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불평은 이제 그만 하자. 그 말이 옳든 그르든 운다고 젖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지금은 우리가 축적한 경험과 기술력 그리고 뼈를 깎는 변화와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다. 남아메리카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중국이든 유럽이든 박차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업계 전반을 움직이는 시스템을 되돌아보고 과연 이대로 좋은지 되물어야 한다.

 잘 나가는 사람의 결점은 눈에 띄지 않듯이 호황이 지속될 때는 업계 내부의 문제 역시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는 문제점에 직면하고 있다. 잘 바라보고 똑바로 바라보고 눈 부릅뜨고 바라보자. 시급한 개선을 요하는 제도나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기술인력 교육과 경력관리, 기술평가와 입찰제도에 문제는 없는지, 제 살을 깎는 저가경쟁과 불필요한 경비를 유발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개별 회사의 문제는 회사에서, 거시적인 환경의 문제는 엔지니어링업계가 논의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덩치가 크거나 강한 종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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