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없는 게임 ‘기술사법 개정안’
상태바
승자 없는 게임 ‘기술사법 개정안’
  • 이준희 기자
  • 승인 2013.03.14 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컨트롤타워 없는 엔지니어링… ‘기술사 권익보장’, ‘상생발전’ 무의미해
기술사회와 엔협 60~70년대 그랬듯 과학기술과 산업발전 함께 이끌어야

위기 속에서 대안을 찾다. 엔지니어링이 위기에 처하자 역설적으로 ‘기술사법 개정안’ 처리를 주도했던 기술사 진영과 막아섰던 엔지니어링업계 간에 대타협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19대 국회 개원 후 작년 9월5일 교육과학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기술사법’ 일부개정안은 사실 18대 국회에서 이미 논의됐던 사안이다. 당시 기술사회와 한국엔지니어링협회, 대형사와 중소사 간의 찬반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결국 입법처리가 무산된 바 있다.

수자원개발 전북 61개사 중 기술사 ‘전무’, 전남 84개사 중 ‘단 1명’
기술사법 개정안의 핵심 사안은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및 대기업에서 발주하는 사업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종류 및 규모의 설계는 기술사가 최종 서명날인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술사회 측은 학·경력기술자 제도로 인해 비전문 기술자격자가 양산되고 결국 기술사제도의 실효성이 저해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부산광역시 등 지자체들은 기술사 보유가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렵다는 중소사들의 인식을 받아들여 책임기술자 등급평가 항목에서 기술사를 제외하는 세부평가기준을 내놓고 있다.

본지가 ‘지역별․전문분야별 엔지니어링사업자의 기술사 보유여부 현황’에 대해 기술사회와 엔협의 데이터를 취합 분석한 결과, 2월4일 기준으로 정보통신, 도시계획, 조경, 수자원개발, 수질관리 등 11개 분야에서 1,858명의 기술사가 부족하며, 울산, 충남, 전북, 전남 4개 광역시·도에서도 3,892명이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

수자원개발을 예로 들면 총 697개사 중 93개사만 기술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북 지역 61개사 중 기술사는 전무하고, 전남지역 84개사 중 기술사는 단 1명에 그치고 있다. 기술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술사가 없는 설계업체들은 기술사의 서명을 얻기 위한 행정적 절차를 밟던지 기술사를 고용하던지 선택해야만 한다는 지적이다.

2009년 5월 엔지니어링사업자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1.8%가 기술사 고용에 부정적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경제민주화’의 취지를 고려할 때 중소사와 지역사들에 부담을 주는 기술사법을 지금 당장 통과 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수다”고 밝혔다.

60~70년대 과학기술, 산업발전 함께 이끌어… 기술사 권익보장, 상생발전 묘안 찾아야
그러나 이토록 긴 시간동안 양측이 줄다리기하던 와중 최근 건설기술관리법이 국토해양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자, 기술사법 개정안 처리결과를 떠나 ‘융․복합이란 엔지니어링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공감대가 양 진영에서 형성되고 있다.

기술사회 관계자는 “1963년 기술사법이 제정됐고 1964년 전기, 기계, 화공, 건설 등 13개 부문 64개 전문분야에서 67명의 제1회 기술사를 배출했다”며 “기술사회는 엔지니어링 전 분야를 포괄하는 최고의 기술자단체다”라고 전했다.

반면, 엔협 관계자는 “고도성장 및 중화학공업화를 목표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2~1976)’을 수립했던 과거 정부는 기술사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며 “이에 1973년 기술용역육성법이 제정되고 학․경력기술자제도에 근거해 기술사 시험을 거치지 않은 현장인력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60~70년대부터 국내 과학기술 및 엔지니어링산업 발전을 이끌어온 기술사회 출신 원로는 이런 양측의 역사를 두고 “엔지니어링 컨트롤타워라는 측면에서 기술사회와 엔협은 한 지붕 속에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사회 관계자는 “학․경력제도 때문에 기술사들의 권익이 침해됐고 젊은 인재들이 기술사를 기피하게 됐으며 결국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면서도 “각 부처별로 엔지니어링 개별법을 만들고 기술인력을 관리하게 되는 상황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엔지니어링업체의 대표이자 기술사이기도 한 업계 인사는 “지식경제부 산하 중소기업청처럼 흩어져 있는 엔지니어링영역을 통합해야 엔지니어링발전을 위한 시너지가 생길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엔지니어링분야의 전 영역을 망라하고 있는 기술사회와 엔협은 한 배를 타고 있는 공동체의식을 갖아야만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융․복합과학기술이라는 엔지니어링의 본질이 왜곡되고 있다는 점에는 업계뿐만 아니라 기술사회나 엔협 모두 공감하고 있다. ‘기술사의 권익보장’, ‘상생발전’을 모두 만족시키는 묘안을 찾기 위한 대승적인 토론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한다.

한편, 기술사만을 위한, 업체만을 위한 논리싸움에 함몰 된 사이, ‘창조경제’를 표방하는 박근혜 정부 정책에 엔지니어링이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현 상황에서는 기술사법이 통과 되든 무산되든 결국 엔지니어링발전이란 틀에서는 모두 다 패자일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