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에는 있고 ‘마마도’에는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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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에는 있고 ‘마마도’에는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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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0.2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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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도 당시에 건설될 때 반대가 심했다고 해요. 저는 뭐 그렇게 살아보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요지경에서 끝나지만,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은 지금 이 시대에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새롭고 가치 있는 걸 시도해보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TVN '꽃보다 할배'의 연기자 신구가 방송 중 한 말이다. '꽃보다 할배'는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70세가 넘은 중견배우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새로운 기획으로 분당 최고 시청률 9.66%를 기록했다. 보통 케이블TV 시청률이 1%가 넘으면 지상파 시청률로 환치했을 때 두자릿수에 버금가는 것으로 보는데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검증된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택한 '도전정신'으로 꼽힌다. 내부에서조차 "출연진의 연령이 너무 높아 타깃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아이돌, 인기스타 없이 선입견을 뒤로한 채 과감한 시도를 해 성공했다.

또한 최근 한국영화시장에도 독자노선을 걸으며 성공한 기분 좋은 사례가 있다. 영화투자배급사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는 2008년 설립된 직원 수 단 30명의 작은 투자배급사다. 그러나 놀랍게도 올해 1200여만 명으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7번방의 선물', 468만 관객의 '신세계', 550만 관객의 '감시자들', '숨바꼭질' 모두 이 회사가 배급했다. 올 상반기 전국 영화 매출액 점유율, 관객수 모두 1위다. 이 영화배급사의 성공에 주목하게 되는 진짜 이유는 이 회사가 기존 영화배급사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데 있다. 이들은 거대한 자본과 영화관이 없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흥행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특색 있는 영화나 신인감독들의 영화들도 투자, 배급해 고무적인 성과를 냈다. NEW는 안전성이 담보되는 거대자본, 스타배우에 의존하지 않고 상업영화부터 예술영화까지 좋은 영화라고 판단하면 투자했다. 올해 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몽타주', '숨바꼭질' 모두 감독의 데뷔작이었다. 기존의 영화사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지만 산업의 본질에 집중하는 힘이 빛을 발한 것이다.

또한 이들은 영화배급사로서의 '사회적 역할'에도 충실했다. 다양한 영화를 배급하여 한국 관객들이 더 다양한 영화를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데 도움을 줬다. 아마 작년, NEW에서 '피에타'나 '부러진 화살'을 배급하지 않았다면 관객들은 이 영화들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화무십일홍이라지만 이 말이 통하지 않았던 곳이 충무로다. 2000년 이후 콘텐츠 기업 육성이라는 정책적 배려와 규모의 경제 논리가 맞물리면서 대기업이 영화계 투자, 제작, 배급을 장악하는 수직계열화 경향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NEW가 거둔 성공은 단연 돋보인다. NEW는 내년에는 올해보다 규모가 큰 영화들에 집중하며 사이사이에는 개성 있는 저예산 영화들도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제 다른 작은 회사가 NEW가 맡아왔던 작고 개성 있는 영화를 도맡게 될 것이고, 한국영화시장은 계속 발전하며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이렇게 영화산업은 선순환되며 건전한 시장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KBS는 '꽃보다 할배'의 성공 이후 곧바로 '할배'를 '할매'로만 바꿔 '마마도'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자본과 제작여건 모든 면에서 유리한 지상파 방송사에서 이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이미 검증된 포맷을 그대로 차용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TVN의 'SNL 코리아'는 "다른 놈들 우리 거 다 베끼는데 우리라고 못 베낄 거 있느냐"며 현재 방영 중인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합쳐 '전국 안녕하세요 꽃보다 진짜사나이 할배 무한도전하러 어디가 스플래시'라며 예능계의 베끼기 바람을 풍자했다. 이렇게 한번 성공한 방식을 똑같이 재현한 작품들이 많아지면 시청자들의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같은 포맷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늘어날수록 시청자들은 싫증을 느끼고, 결과적으로 TV프로그램 모두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어느 산업이건 효율성과 안전성만 생각해서는 오래갈 수 없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사회적 역할을 생각할 때 산업전반의 선순환이 가능해지고 지속적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다. NEW와 TVN의 사례는 건전한 산업구조와 가치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최근 몇 년간 엔지니어링을 비롯한 건설업계 전반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주요원인은 주택경기 침체, 공공건설시장 축소, 예산삭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내부로 눈을 돌려 근본적인 문제를 찾을 수도 있다. 더 좋은 설계방식 등을 고민하기 보다는 '제 살 깎기'식의 경쟁, 무분별한 수주 등에 문제가 있음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다리 놓는 방식이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엔지니어링업계도 기본은 충실하되 창의성있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를 하며 현재의 침체상태를 벗어나보는 건 어떨까.

오금주 ㅣ news@eng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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