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숨겨진 세계, 로마의 지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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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숨겨진 세계, 로마의 지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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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2.1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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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로마의 지반은 처음 도시가 세워졌던 BC.9세기보다 약 15m 위로 올라와 있다. 테베레 강이 범람할 때마다 기존 도로와 건축물 위에 흙을 채우다보니 도시 전체가 이렇게 높아진 것이다. 이는 3천 년간 지어진 건축물이 지표면 아래 고스란히 숨겨져 있음을 뜻한다.

테베레강과 로마의 싸움
로마에는 두 개의 도시가 있다. 지금 사람이 사는 도시 그리고 또 하나는 3천 년간 살아온 고대 도시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도시가 지표면을 경계로 상·하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것은 로마가 테베레 강의 범람에 맞서 싸워온 오랜 세월의 흔적이다.

테베레 강 만곡부에 자리 잡은 로마는 지리적으로 홍수에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었다. 직선부로 빠르게 흐르다 곡부를 만난 물살은 제방을 넘어 도시를 침수시켰고 또 지반이 낮아 안에서 차오르는 물을 처리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대화재가 있었던 AD.64년 도시를 재건할 때는 계획적으로 전체 지반을 2m 정도 높였다. 이러한 과정이 이후에도 반복되면서 결국 도시가 15m 정도 위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 테베레강
도시위에 새 도시가 건설될 때마다 에트루리아인이 처음 정착했던 BC.9세기부터 현재까지 3천 년간의 도시 유적은 그대로 지하에 묻히게 되었다. 물론 지어질 때부터 지하구조물로 만들어진 시설도 적지 않다. 당시 지하공간은 지상 건축만큼이나 자연스러웠으니 말이다. 이렇게 지하공간이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로마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

▲ 미트라신전(지하), 산 클레멘타 성당(지상)
지반을 높여 홍수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묻혀버린 것은 도로와 건물만이 아니다. 환경이 바뀌면서 삶의 방식과 종교 문화가 서서히 바뀌고 시대의 주류적인 사고도 영향을 받게 된다. 산 클레멘타 성당은 고대도시 위에 신도시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건축물의 용도와 형식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처음 건축될 당시 산 클레멘타 성당은 미트라 신전이었다. BC.1세기경 로마에 들어온 미트라교는 3세기까지 로마의 주류 종교였다. 그러나 4세기 로마를 장악한 기독교는 미트라 신전을 묻고 그 위에 성당을 지었다. 12세기에는 다시 새로운 성당이 지어졌다. 이렇게 각기 다른 시간대에 만들어진 성당의 층위를 비교해 보면 건축양식의 변화는 물론 로마의 지반이 서서히 높아지는 과정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도로 터널

▲ Furlo 터널
도로는 로마를 상징하는 시설이다. BC.3세기부터 500년간 건설된 포장도로는 372개 노선에 8만km나 된다. 로마가 113개의 속주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도로 때문이다. 도로의 우선적인 목적은 전투병력의 신속한 이동이었는데 이를 위해 마차가 교차할 수 있는 폭과 잘 다져진 도로면이 필요했다.

BC.220년 건설된 플라미니우스(Flaminius) 가도에는 플루로(Furlo) 터널이 있다. 길이 38m로 짧은 터널이지만 5.47m 높이의 아치와 5.95m 폭을 갖추고 있어 군단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데 어려움이 없다. 당시 도로터널의 가장 큰 문제는 조명이었을 것이다. 수로와 달리 사람이 통행하려면 빛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터널이 길어지면 천정을 뚫어 채광하기도 했지만 교량에 비해 터널은 가급적 피하는 시설이었다.
 
카타콤베(Catacombe)

▲ 카타콤베 입구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오이디프스가 비극적인 삶을 마친 뒤 그의 딸이 겪는 이야기다. 안티고네는 아버지에 이어 왕에 오른 크레온에게 항거하다 ‘죽은 자의 도시(Necropolis)’에 갇히게 된다. 안티고네는 결국 이곳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데 그녀가 갇혔던 ‘죽은 자의 도시’란 어떤 곳이었을까. 단순히 보면 그냥 지하묘지일 뿐이지만 이곳은 역사와 삶의 흔적이 함께 묻혀있는 문화의 보고다.

네크로폴리스는 로마시대에는 카타콤베로 불렸으며 BC.3세기 이후 대규모로 만들어졌다. 이 때는 주기적인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병사하던 시기여서 카타콤베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 층이 채워지면 아래쪽으로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잘 알려진 카타콤베로는 초기에 만들어진 세바스티아노, 지하 5층 규모의 도미틸라, 역대 교황이 묻혀있는 칼리스토스 카타콤베 등이 있다.

콜로세움의 이포제움

▲ 콜로세움의 이포제움
거대한 규모와 시설을 자랑하는 콜로세움은 크게 3개 영역으로 나뉜다. 객석인 카베아(Cavea), 검투사가 경기를 벌이는 아레나(Arena), 그리고 경기장 밑의 지하공간 이포제움(hypogeum)이다. 검투사가 대기하거나 맹수우리가 있던 이포제움은 정교한 공학기술과 설계에 있어 로마 지하공간 축조기술의 전범으로 꼽을 만하다.

지하 2층으로 만들어진 이포제움에는 다양한 크기의 방이 볼트(bolt)로 이어져 있고 각 층은 다시 승강기로 지상층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자나 코끼리가 엘리베이터를 통해 경기장에 등장할 때 관객의 함성은 얼마나 컸을까. 검투사 훈련소인 마그누스(Magnus)는 콜로세움에서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이 시설 역시 긴 터널로 이포제움에 연결되어 있었다.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

▲ 로마의 휴일 한 장면(좌), 클로아카 출구(우)
로마 코스메딘(Cosmedin) 성당에는 ‘진실의 입’이라는 원형석판이 전시되어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이 석판은 사실 BC.4세기경 만들어진 맨홀 뚜껑이다. 표면에 물을 다스리는 신 트리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고 입과 눈은 환기구 역할을 한다. 맨홀 뚜껑이 이 정도라면 그 아래 배수로는 어떠했을까.

로마가 인구 100만의 도시로 성장한 배경에는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 즉 잘 갖추어진 배수로가 있었다. 배수로 덕분에 시 전역에서 사용된 물은 신속하게 테베레강으로 배출될 수 있었다. 로마는 물론 품페이 에페수스 등 당시 지중해 주변의 도시에도 잘 정비된 배수시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배수로가 처음부터 터널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원래는 개천이나 도랑이었지만 로마 지반이 점점 높아지면서 지하에 묻히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배수로의 높낮이는 정밀하게 조정되었으며 측벽과 아치를 갖춘 든든한 터널로 바뀌었다. 사용한 물을 지하로 처리하면서 로마는 한결 위생적이고 밝은 도시가 될 수 있었다.

수로·도로·지하공간, 왜 이렇게 많을까
그리스의 앞선 기하학을 계승한 로마는 정밀한 측량과 설계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유클리드가 편찬한 기하학 원론은 시설물에 보편적으로 응용되었으며 도로 수로 건축을 위한 다양한 기술책자도 발간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프라 시설이 만들어진 계기는 로마인의 가치관 때문이다. 인프라를 몰레스 네케사리에(moles necessarie), 즉 ‘사람다운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본 로마인의 생각은 지금도 현대 도시공학의 근간이 된다.

충분한 노동력과 자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손꼽을 만하다. 로마는 전쟁포로와 노예를 통해 대규모 공사를 위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속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건설자재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었고 이를 운반하기 위한 해운과 육로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로마 주변에는 소석회와 화산재가 널려 있었는데 이를 이용해 시멘트를 만들어 쓴 것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아치·볼트·돔
지하 건축물은 자체 무게는 물론 그 위에 덮인 흙까지 지탱해야하므로 많은 힘을 받는다. 그럼에도 어떻게 석재만으로 지하신전 콜로세움 수로 등 거대한 시설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비밀은 아치(Arch)와 볼트(Vault), 돔(Dome)에 있다. 볼트·돔은 아치의 변형된 형태로 근본 원리는 같지만 모양에 따라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 수로교의 아치
아치(Arch). 사다리꼴로 다듬은 돌을 둥글게 배치한 것. 돌은 누르는 힘에는 강하지만 늘리는 힘에는 약하다. 긴 돌을 걸쳐놓고 누르면 쉽게 부러지는데 이는 돌 아래쪽에 늘리는 힘 때문이다.

그러나 돌을 둥글게 배치하면 거의 누르는 힘만 생겨 든든한 구조가 된다.

볼트(Vault). 아치를 길이 방향으로 늘여 터널로 만든 것. 콜로세움 지하에 만들어진 이포제움은 방과 통로가 모두 볼트 구조로 되어 있다.

돔(Dome). 아치를 원형으로 둥글게 말은 것. 로마 시대 건축의 백미인 판테온 신전은 콘크리트 돔으로 만들어졌다. 이 콘크리트는 소석회와 화산재 그리고 가벼운 돌을 반죽한 것이다.

▲ 동일기술공사 김재성
지반터널본부장(부사장)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저가 갈리아를 정복한 BC.27년부터 아우렐리우스 황제까지 로마에 의해 평화가 지속되던 200년간을 말한다. 콜로세움이나 클로아카 등 대규모 시설은 대부분 이 무렵에 만들어졌다. 로마의 지하시설이 얼마나 되는지 따로 조사한 자료는 없지만 최소한 지상 건축물만큼이 묻혀 있고 터널 연장으로 추정하면 1000km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로마에는 소테라네아라는 단체가 있는데 이들이 하는 일은 지하에 묻혀진 고대 신전 법정 관공서 수로 등을 탐사하는 것이다. 소테라네아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 유적이 극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대로 3천년의 삶을 간직한 채 지표면 아래 잠들어있는 로마의 지하도시는 앞으로도 오래 놀라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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