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엔지니어링1>“로마제국의 동맥 Civil Engine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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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엔지니어링1>“로마제국의 동맥 Civil Engineering”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2.04.16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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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 85,000km 로마가도…제국의 번영과 함께
아치공법, 2천년 지나도 수십톤 차량통행 가능

▲ 로마는 선제적 인프라투자를 통해 제국 운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혹독한 갈리아 전쟁 그리고 카이사르 폼페이간 내전을 겪은 로마는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를 격퇴하면서 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1인 독제체제를 확립한 아우구스투스는 수로, 가도(街道), 대형건축물, 하수관거 등 대형 SOC사업을 펼치며 시민의 지지를 이끌어 냈고, 이는 수백년간 지탱될 팍스로마나(라틴어:PAX ROMANA)의 기틀이 됐다.
아우구스투스는 평화 시기에 필요 없어진 전쟁영웅 아그리파를 토사구팽(兎死狗烹)하지 않고, 건설부 장관으로 중용한다. 즉 제국의 밑그림은 자신이 그리지만 이를 구체화시키는 일은 아그리파에게 맡긴 것이다. 아그리파는 곧 240명의 엔지니어를 조직했다. 이들은 각 식민지에서 차출된 노예를 데리고 아그리파는 군단공병을 이용하지 않고 공공건설을 시작한다.

이들이 건설한 로마식 가도와 수로는 설계, 구조 등 엔지니어링 능력뿐만 아니라 제국의 거점을 그물망처럼 연결하는 총 85,000km에 달하는 연장도 대단했다. 로마가도는 동으로는 마케도니아를 거쳐 이스라엘에 다다랐고, 북으로는 라인강, 서쪽으로는 스페인을 지나 대서양을 마주보았다. 북아프리카와 잉글랜드까지 가도를 건설함으로써 제국의 영향력을 유지했다. 즉 로마의 국경선은 그들의 가도와 수도까지인 것이다.

로마가도 핵심공법은 배수였다. 처음 이 사업을 제안한 로마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1년 365일 언제나 질퍽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또한 5km전방까지 시야가 확보될만큼 완벽한 직선구조일 것도 주문했다. 이러한 과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4단계 배수시스템과 현대와 동일한 수준의 측량기법이 동원됐다. 직선화를 위해 수천개의 교량과 터널까지 뚫었다. 지금으로 2천년전에 건설된 인프라는 구조적으로 완벽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로마는 막대한 공사비를 조달하기 위해 식민지의 약탈 및 조공이 필요했고, 강력한 군사력을 통해 이를 관철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로마인들은 재정이 빈약할 때도 선제적 인프라 투자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아피아가도(연장 50km, 폭 8m)를 건설한 BC 312년만 해도 로마는 은화조차 주조하지 못할 만큼 재정상태가 열악했다. 그런데도 막대한 인력과 재정이 투입되는 SOC사업을 시작한 것은 “인프라는 경제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구축하는 것이 아닌 경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구축한다”는 로마인들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로마는 가도를 건설함으로써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로마가 무턱대고 SOC사업에 투자를 한 것은 아니다. 모든 인프라건설에는 철저한 수요예측을 통한 타당성검토가 선행됐고, 웅장한 건축물보다는 도로나 수로 같은 기간망 건설에 충실했기 때문에 한정된 재정으로 수많은 식민지를 관리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도 20년에 걸친 무리한 건설사업으로 국가의 분열을 야기했고, 조선말 대원군 또한 경복궁을 중건하다 경제를 파탄 냈다. 최근의 예만 봐도 공항철도 및 경인운하 등 수요예측에 실패한 사업이 즐비하다. 그만큼 인프라건설은 엔지니어링 기술력과 함께 재정의 투입과 확보, 무엇보다 수요예측이 중요하다는 것을 로마인들은 증명했다.

수로건설의 첨병 아치(Arch)공법
로마의 건설사업을 Civil Engineering 즉 시민공학, 문명공학으로 불렀다. 우리가 사용하는 토목은 일본식 표기법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인들은 인프라건설의 주된 자재가 土(흙)+木(나무)의 적절한 배분이라고 생각해 토목공학(土木工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고, 우리가 이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


로마 Civil Engineering의 핵심 기술은 아치(Arch)공법이다. 아치는 BC 600년경 로마를 지배했던 에트루리아의 기술로 그리스의 오더(Order)와 함께 서양고전주의 건설기법의 양대산맥 중 하나다.
아치공법은 쐐기 반원형 돌인 홍예돌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각 홍예돌은 사선방향으로 공중에 떠 있기 때문에 오더구조에서 발생하는 인장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홍예돌이 마찰할수록 안정성이 높아지는 구조로 이탈리아 지역에서 다량으로 생산되는 시멘트로 접착해줄 경우 완벽한 구조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BC 1세기 아우구스투스 시절 건설된 아치형 교량은 2011년 현재까지도 수십톤의 차량이 지날 수 있을만큼 튼튼하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부터 소규모지만 아치형 구조의 교량을 건설한 바 있다.
인장력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인 아치는 반원형만 완벽히 구현하면 지름은 어렵지 않게 늘릴 수 있어 대형 구조물 축조가 가능했다. 지금 남아있는 로마시대 수로의 아치의 직경은 30~40m가 주류로 최장 60m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아치방식을 통한 장대교량은 로마인들의 식수를 공급하는 수로에 가장 많이 사용됐다. 로마인들은 식수 및 목욕 등에 사용될 깨끗한 물이 풍부하게 공급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지금과 같이 식수를 소독할 수 없었던 당시 로마인들은 물을 끊임없이 흐르게 해서 깨끗함을 유지했고, 적군이 독극물을 탈 것에 대비해야 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높이 15m 높이의 수로가 필요했고, 아치공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안이었다.

유럽의 강은 폭이 좁아 단 한개의 아치구조로 교량을 건설할 수 있었다. 교량의 건설은 도로의 직선화를 가져왔고, 각 식민지에 군사, 물자를 효율적으로 투입시킬 수 있었다.

한편, 교량과 터널로 시원하게 뚫린 한국의 영동고속도로 횡계~강릉구간은 2001년전에는 구불구불한 산길이었다. 이 구간의 확장개통으로 강릉까지 1시간 이상 단축됐다. 90년대 이후 신규 개통되는 고속도로는 대부분 장대교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직선화를 이루는 추세다.

고속도로의 직선화 개념이 2000년전 로마시대 가교를 통해 확립됐고, 그 중심 기술에 아치공법이 있었던 것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호에 계속>
-기사입력일 2011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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