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유신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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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유신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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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2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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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은 유신이 50주년을 맞이한 날이다. 1966년 1월 17일 창립한 유신은 전긍렬 회장이 철도청을 떠나며 받은 한강 A,B선 트러스교량 설계 대금 97만원을 종자돈으로 시작된 국내 20번째 엔지니어링사이다.

산업화의 시동을 걸기 시작한 1966년은 유신특수설계에게는 대단한 기회의 시간이었다. 평창선, 장생포인입철도, 제주공항 기본계획을 수주하며 입지를 다지고, 박정희 정권의 2차경제개발계획을 기점으로 경부고속도로 사업에 참여하면서 비약적 성장을 시작했다. 이후 경부고속철도, 인천공항 등 굵직한 국책사업의 주인공 역할을 하며 업계 1,2위의 선도적 엔지니어링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영종대교, 이순신대교, 광안대고, 한강대교, 창산대교 등 국내 랜드마크 교량은 죄다 유신이 수행하는 등 특수구조와 철도분야에서는 독보적 존재였다.

1970년에 35명이었던 유신은 삼우기술단 인력을 흡수하는 1995년에 1,000명의 엔지니어를 보유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팽창하는 사세에 걸맞게 역삼동에 대형사옥 두 개동도, 자회사 일신도 설립했다.

말이 좋아 50년이지 지금도 수많은 신설법인이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패업하는 현실에서 반백년동안 기업 성장시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일을 가능케한 것은 '산업화'라는 성장기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을 유신이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이다. 혁신의 리더였고, 고성장의 아이콘었다. 당시에는 그랬단 말이다.

산업화와 함께 성장했던 유신은 그러나 대형국책사업의 실종과 SOC예산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다. 수년에 걸쳐 임금삭감이 이뤄졌고, 한때 1,400명에 달했던 임직원 수는 1,000명 언저리까지 줄었다. 경쟁사들이 수자원, 플랜트, 상하수도로 영역을 넓힐 때도 뒤따라가는 모습만 보였다. 누구든 마찬가지겠지만 호황기 때 선도적으로 해외사업 및 신사업을 시도하지 않고 어려움이 닥쳐서야 움직였다.

경영진과 엔지니어간 소통도 문제였다. 유신시대에나 통할 법한 호통형 절대군주 시스템을 21세기에도 사용하니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또 상층부에 먹구름처럼 떠있는 노쇠한 경영진도 유신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새로운 것을 말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혁신은커녕 현상유지도 어려웠다. 여기에 시대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할 노사관계도 강대강의 자세로만 일관하니 갈등이 극대화됐다. "어차피 엔지니어링이 사람장사인데 꽉 막힌 조직문화 때문에 능력있는 엔지니어들이 많이들 떠났다." 어쩌면 적절한 시점에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더라면 보다 유연하게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15일 유신 50주년 기념식이 조촐하게 열렸다.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혁신안이나 아젠다는 제시되지 못했다. 하지만 50년간 대한민국 SOC역사와 함께 해온 유신의 엔지니어링 정신만큼은 반드시 다가올 100주년을 향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세대교체를 통한 경직성 탈피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무엇보다 한국 1등 엔지니어링사라는 자부심고취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에 앞서 사무환경의 현대화가 절실하다. 2016년에 철제케비넷은 좀 그렇지 않나.

정장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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