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엔지니어링 없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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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엔지니어링 없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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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0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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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발주처나 엔지니어링 건설사로부터 사업을 수주했다는 보도자료를 받는다. 보도자료 쓸 정도면 대부분 수천억, 조단위 사업이고, 엔지니어링은 100억원 이상이거나 해외사업인 경우가 많다. 기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대규모 사업을 관성적으로 취재하게 된다. 꼭 엔지니어링업계뿐이겠냐만은 사회적 트렌드가 "크고 거대한 것은 옳다"라는 대물환상론에 사로잡혀 있는 아닌가 싶다.

엔지니어링 입찰사이트에서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사업 하나하나가 그렇게 중요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계획 선 하나에 따라, 지하철 출구방향에 따라, 도로선형에 따라 땅값에 큰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악취, 소음, 미세먼지를 유발할 수 있는 시설물의 건설여부도 엔지니어링단계에서 모두 결정된다.

각종 영향평가는 어떠한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교통영향평가가 잘못됐을 경우 끊임없는 교통체증으로 시간과 돈을 날려야 한다. 환경영향평가가 발주처나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됐을 경우는 재앙에 가까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전국을 녹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4대강사업이 그렇고, 발전소와 공장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그렇다.

각종 언론매체에 보도되는 건설관련 민원이나 문제점도 알고 보면 타당성검토, 기본계획, 실시설계가 끝나고 공사에 들어간 사업이 대부분이다. 이미 땅 파고 콘크리트를 부었는데, 그때 가서 반대한다고 문제점이 해결되나 싶다. 문제점은 실행단계가 아닌 계획단계에서 해결해야 쉽고 돈도 덜 든다. 사업규모에 매몰되지 말고 초기단계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건설의 사업초기는 비루하기 그지없다. 모든 사업의 가부를 결정하는 기본계획, 타당성검토는 총사업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그나마도 발주처의 입맛에 맞게 편집돼 제출된다. 조단위 사업이라도 예타비용은 1억원이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계획을 세우는 초기단계 엔지니어링은 그러나 실시설계를 따내기 위한 서비스개념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받은 만큼 일한다는 측면에서 1억원 책정할 컨설팅비를 3억원을 들여 꼼꼼히 체크하면 타당성이 없는 수조원짜리 사업을 보류, 취소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엔지니어링사 입장에서는 어찌됐던 사업을 만들어 그나마 규모가 큰 설계감리를 수행해야 먹고 살수 있다고 하지만 이 같은 풍토는 세계적 기준에 정확히 역행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어느덧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다다르고 있고, 치안률은 전세계 1등인데다 부정청탁에 대한 강력한 처벌까지 마련돼가는 등 선진국의 풍모를 제법 보이고 있다. 엔지니어링과 건설도 시대정신에 부응해 저부가 대규모에 매몰되지 말고, 규모가 작더라도 고부가 영역으로 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타당성검토와 기본계획 등 앞단의 영역은 과도해도 좋을 만큼 대가를 올리고, 통과규정을 최대한 까다롭게 하는게 필요하다. 즉 규모를 늘리지 말고 인당대가를 높이는게 포인트다.

좀 느리고 복잡하면 어떠한가. 어렵게 꼼꼼하게 제대로 비싸게 가는게 미래지향적이고 글로벌이다.


엔지니어링데일리 정장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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