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 로비 퇴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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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 로비 퇴치론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2.09.0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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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 의해 발주된 영천~상주간 민간투자사업 책임감리용역을 놓고 엔지니어링업계의 긴장감이 팽배해 있었다. 379억원의 발주금액도 메머드급이지만, 발주 씨가 마른 도로분야였기 때문에 총 6개 컨소시엄이 치열하게 경쟁을 펼쳤다. 통상 그래왔듯 각 컨소시엄은 온갖 채널을 통해 발주청과 심의위원과 줄을 대기 위해 노력했다. 그 중 절반가량 컨소시엄이 가시권 안에 들어 왔다는 풍문이 업계에 돌았다.

파열음은 ‘사실상 영천~상주는 우리 것이다’라며 한 개 컨소시엄에서 치고 나오면서 본격화 됐다. 과열된 로비전은 갖가지 민원을 낳으면서 문제가 붉어지고, 국토부 윗선에게까지 보고됐다. 결국 상부에서 대노하면서 당초 부산청 및 경남지역 교수로 구성하려던 평가위원이 중앙설계심의위원과 타지역 교수로 변경했다. 발주청은 입찰에 다다라서야 선정된 심의위원에 대한 비밀을 유지하며, 철저하게 업체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결론적으로 상주~영천간의 최종 승리자는 서영컨소시엄이었다. 탈락자들은 “졌지만, 공정한 승부였기 때문에 억울하지 않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로비가 배제되고 순수하게 기술력만으로 공정하게 경쟁했기 때문에 379억원이라는 대어를 놓쳐도 홀가분하다는 것이다. 올림픽의 스포츠맨십까지 떠올려지는 훈훈한 광경으로, 발주청의 공정한 심사가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상주~영천간의 사례는 손꼽힐 만큼 드물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어차피 로비전이기 때문에 내가 로비를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할 것”이라는 자세다. 발주청도 그들 자신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고리가 눈덩이처럼 엔지니어링업계에 쌓여 있는 것이다.

최근 국토부가 발표한 제5차건설기술진흥기본계획은 이전과 다르게 건설이 아닌 엔지니어링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이와 맞물려 건기법내 PQ평가 세부기준과 TP/SOQ 개선안을 발표하며 엔지니어링판을 세로 짜는 작업에 착수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발주자 권한 확대를 통해 기술력확보와 사업책임성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국토부의 개선안이 글로벌스탠다드에 근접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외진출지원 방안도 업계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해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문제는 엔지니어링업계에서 국토부의 정책을 믿지 않는 것이다. 발주권한 강화라는 글로벌스탠다드를 ‘발주청의 힘을 강해지니 로비가 더 치열해 진다’라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실제 PQ개정안 초안이 마련됐을 때 영업비용을 늘리고, 전관을 더 채용하려는 움직임이 일부 엔지니어링사를 중심으로 있었다. 아무리 정책이 좋아도 이를 받아들이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제도의 효율적 시행은 요원한 것이다. 결국 발주청권한 확대는 최종안에서 대거 삭제됐다.

엔지니어링업계의 불신은 누가 만들었나? 단언컨대 발주청과 엔지니어링업계의 합작품이라고 봐야 한다. 로비를 한 사람이 있다면 로비를 받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링업계 그중에서도 실력있는 엔지니어는 ‘공정한 평가가 전제된다면’을 강조한다. 즉 영천~상주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발주청이 로비나 전관이 끼어들 여지를 배제시켜 깨끗한 승부의 장을 마련해준다면 떨어져도 억울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공정한 평가가 상식이 된다면 전관영입과 로비보다 실력있는 엔지니어를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현 단계에서 로비를 퇴치하기 위한 키는 발주청과 상위단체인 국토부가 가지고 있다. 제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공정성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절대 실효성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링 기술력과 해외경쟁력 확보 또한 공정경쟁의 기틀아래 마련될 수 있다.

모든 제도는 완벽하다. 다만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이 문제일 뿐이다. 엔지니어링산업이 선순환 구조를 가질 수 있도록 발주청과 엔지니어링업계가 함께 노력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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