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는 지금]폭탄발주에 말라죽는 PQ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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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는 지금]폭탄발주에 말라죽는 PQ팀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9.04.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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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데일리)정장희 기자= "52시간 근무제요? 여긴 그런 거 없습니다. 제도 바뀌기 전에 복잡하다고 폭탄발주를 해대니 별보고 출근했다 별 지고 퇴근합니다."

지난해 말 행정예고된 '건설기술용역업자 사업수행능력 세부평가기준'의 시행이 4월부터 시행됐다. 문제는 변화한 PQ기준을 공부하기 싫었던 전국 발주처가 3월에 모든 발주를 밀어내면서 부터다. 평소 발주량보다 40~100% 늘어난 수치다.

엔지니어링사 PQ팀의 곡소리는 4월부터 본격화됐다. 통상 1,000명 내외의 엔지니어링사는 월평균 100건 가량의 PQ를 작성한다. PQ 한건당 500~1,000페이지 정도니 월 70,000페이지의 책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이달 둘째주에만 한달치인 100건을 써내려갔다. 이달만 20만페이지 채울 거 같다. 새벽까지 끊임없는 야근으로 몸은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다. 심각한 사실은 이런 야근이 앞으로 두달간 계속된다는 것이다." 대형 A사 관계자의 말이다.

PQ팀의 인원은 항상 업무량의 100% 이상을 기준으로 배정된다. 정말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발주가 조금이라도 몰려들면 새벽까지 야근도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PQ팀에 5년 이상 근무하면 디스크, 관절이상, 고혈압, 전립선을 비롯해 대상포진, 백반증 등 면역계 질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엔지니어링입찰을 전담하는 업무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운찰인 입찰은 사실상 뽑기나 홀짝 수준에서 결정된다. 아무리 분석하고 고민해봐야 홀이 나올지 짝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항상 고강도 스트레스에 직면해 있다. 특히 기술부서에서 기술1등을 해  80%의 확률을 확보했는데도 예정가격이 잘못 뽑혀 떨어지기라도 할 때면 해당PM을 볼 낯이 없다. 연달아 떨어지기라도 하면 자칫 '운 나쁜 사람'으로 찍힌다. 최근 개찰한 GTX감리만 해도 5개 공구가운데 기술 1등은 단 한곳도 낙찰을 받지 못했다. 업무팀의 고뇌가 극에 달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업무팀의 스트레스지수는 가끔 정신질환 직전까지 오고 갈 정도로 높다.

"낮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던 사업PM도 밤에 술에 취에 욕지기를 늘어놓는다. 서운하고 화도 나지만 PM 입장에서도 모든 역량을 다해 1등했는데 입찰에서 미끌어지니 짜증나지 않았겠나."  

엔지니어링사는 통상 PQ, 업무, 총무, 기획 등 관리파트와 엔지니어링인 기술파트로 나뉜다. 문제는 기술과 영업중심의 엔지니어링사 특징상 관리파트는 승진과 연봉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엔지니어는 실적과 자격에 따라 이직도 원활한 편이지만, 관리파트는 행정업무의 한계상 사실상 그 회사에 뼈를 묻게 된다.

과중한 업무와 열악한 처우지만 경영진 입장에서 '잘해야 본전'으로 보는 PQ, 업무팀은 그러나 기술부서 이상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소위 감도 좋아야 한다. PQ서류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법령과 제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서류하나 문구하나 잘못하면 사업에 참여도 못하고 입찰에 미끄러지고 만다.

비공식적이지만 엔지니어링사 매출의 10%는 PQ팀의 역량에 따라 결정된다는게 통설이다. 운칠기삼 업무부 또한 긍정적 기운을 북돋아 주지 않는다면 설명할 수 없는 불운으로 그 엔지니어링사의 수주고는 밑바닥을 기어 다닐 것이다.

삼국지에서 관우는 그를 꾀려는 조조에 대해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고 맞받아쳤다. 비단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PQ, 업무팀이 아니더라도 성과에 대한 보상과 업무에 대한 인정이 선행돼야 희망찬 내일을 담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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