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설명해주는 남자들-19]국제금융기구의 Neo-Colonialism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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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 설명해주는 남자들-19]국제금융기구의 Neo-Colonialism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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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1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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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대항해시대와 국제금융기구]

언젠가 학창시절에 수업에서든 게임에서든 한번쯤 들어봤을 그 가슴 넘치는 단어, 대항해시대. 필자도 ‘대항해시대 4’를 통해서 전 세계의 주요 항구가 어디 있는지 왜 희망봉이 희망봉인지 등을 알았던 것 같다.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이 시기는 유럽 국가들이 배로 전 세계를 돌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을 하며 국제 무역을 활성화 시켰던 시기이다.

▲ 18세기 면제품 수출 분포 (출처: 교수신문)

포르투갈인 콜롬버스는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 1세의 후원을 받아 아시아를 향해 서쪽으로 떠나고, 그는 끝까지 인도라 믿었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카카오, 옥수수 같은 새로운 과일과 채소를 들여왔을 뿐만 아니라 금이나 은 등의 귀금속도 가져왔다. 특히 스페인을 통해 유럽으로 대량 유입된 금,은 등의 귀금속은 물가를 20배 30배 폭등시키면서 자본주의적 대규모 경영이 확산되었다.

또한, 노예무역이 시작되면서 포르투갈 상선들이 노예무역을 통한 막대한 자본을 벌었다. 서아프리카, 현재의 베냉(Benin)은 다호메이 왕국이 있던 곳으로 노예무역의 주요 공급원 이었는데, 이 왕국의 국왕까지 직접적으로 개입했다고 한다. 주변의 부족들을 점령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노예로 만들어 팔았으며 그 대가로 총기나, 철, 옷감 등을 구입해 노예사냥을 위한 더 강한 군대를 키우고 중앙집권적 권력을 유지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유럽에서는 노예 해안으로 불렀는데,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건넜던 전체 노예수의 20% (약 100만명) 를 공급한 최대 노예 수출국이었다.

초기 대항해시대는 노예를 포함한 무역과 탐험이 주를 이뤘으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기존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바로 증기기관 발명에 따른 산업혁명의 영향이다. 그 시기 이후로 유럽은 식민지 무역을 위한 공급 시장이 아닌, 자신이 만든 제품의 소비 시장으로 바라보게 된다. 단적인 예로 영국은 인도에서 면직물 수입을 하다가, 1800년대부터 반대로 면직물을 팔기 시작하는데, 이로 인해 인도의 면직물 시장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발달로 점점 식민지는 공급의 시장이 아닌 소비의 시장이 되어버렸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자본주의는 공급과잉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의 산업 정책도 공급 위주로 돌아가는 것이 기본적이다. 생각해보자. 지난 주말 여러분이 다녀온 대형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이 유통기한 내에 모두 소비가 될 것 같은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옆 상권이나 옆 도시에 있는 대형마트는 다를 것인가?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판매되어보지도 못한, 오래 쓸 수 있으나 쉽게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즉, 한 나라가 크게 성장하려면, 그 나라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팔릴 곳이 많아야 하는데, 우리도 한국전쟁이나 우리 초기 복구 시, 일본 상품의 시장이 됐고(그렇기 때문에 일본 가전제품이 최고인 시대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수출도 역시 중국 및 동남아라는 시장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론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 세계은행의 구조 (출처: 세계은행)

미국 중심의 세계은행(World bank)와 국제통화기금 (IMF)도 이런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는 비판적 시선이 존재한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1944년 같이 설립 되었다. 세계은행은 전후 세계를 복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 및 현재는 NGO나 환경관련 사업에 지원도 하고 있고 국제통화기금은 국제 수지 및 환율, 경제 성장 등을 감시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두 기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은 단연 순수한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세계은행의 총재는 미국에서, IMF 총재는 유럽에서 맡아오고 있다.

세계은행의 총재였던 한국계 미국인 김용 총재는 2012년도 오바마 행정부일 때 선출되었는데, 항상 서방 인물만 뽑히는 것에 반발한 다른 가입국들의 압박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는 최근 임기 3년을 남겨두고 돌연 2/1일부로 사임을 발표하였다. 공식적이진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와의 마찰 때문에 선출권이 있는 미국 행정부의 압박이 있었다고한다. 다음 총재는 트럼프와 같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성향을 가진 인물이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세계은행은 2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 End extreme poverty by decreasing the percentage of people living on less than $1.90 a day to no more than 3%
● Promote shared prosperity by fostering the income growth of the bottom 40% for every country

즉, 모든 사람이 잘사는 지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원조 수원국이 원조 공여국으로 바뀐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할까?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아프리카 많은 국가들의 부채 비율은 점점 올라가고 있다. 특히 한 때 잘나갔던, 그리고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인 나라로 불리는 베냉도 1인당 GDP 2,000$ 이하의 가난한 농업국가로 남아있으며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게 아프리카가 지속적인 원조를 받으면서도 계속 가난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제학적 접근해서 2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점차 글로벌해지는 세상속에서, 이미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시장에 후발주자로 들어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종속이론, 나머지 하나는 나라간의 교역 경계가 무너지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에 침식되어간다는 자유주의 경제이론이 그것이다. 후자의 경우 해외 자본이 개발도상국의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서 투입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나라의 자생력을 망쳐놓고 악화시켜 결국에는 그 격차를 더 넓힌다는 것을 설명한다.

우리나라도 97년도 IMF 때 동일한 경험을 한 바 있다. IMF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입장에서, 원조의 대가로 우리나라 산업과 정책을 바꾸고 글로벌 자본에게 유리한 시장으로 바꿔놓았다. 당시 코스피가 379까지 떨어지고 외국자본이 유입되면서 이제 주식시장에서 외인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현재 중국 주식시장이 개미들로 이루어진 것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있다.

PPP 시장에서 MDB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리스크가 큰 사업에 상업자금이 들어갈 수 있는 우산이 되어주고, 프로젝트가 정부의 정책에 의해 어려워지는 경우 정부를 압박할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돈이 없는 나라에서는 IDA나 IBRD와 같은 원조성 자금을 정부에게 빌려주고, 그 돈으로 프로젝트 사업자에게 대금을 지급하게 하는 형태도 가능하다.

겉으로는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제를 성장시켜 가난을 극복하는 천사와 같지만, 그 뒷면에는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PPP에서 절대 권력과 다름없는 힘을 즐기는 악마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사업이 망가져도 원리금을 받아가려는 정부 보증을 강요하거나, 보험계약자에게 SPV와 자신을 별개로 취급해달라는 조항,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실현 시킨 후에야 힘들게 사업을 일군 SPV에게 배당을 지급할 수 있는 여러 Covenant들.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해서 수원국 국가 경제가 성장하면, 그땐 본국의 상품을 팔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이라고 기대하는 마음 등이 그것이 아닐까.

대림산업 김재연 대리ㅣ글에 대한 의견은 이메일(laestrella02@naver.com)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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