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엔지니어는 장관 되면 안 되나요?

2020-09-10     정장희 기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정읍출신이다. 할아버지 김종문은 제헌 국회의원이었고 작은할아버지는 경찰서장인 금수저 집안 자제였다. 학부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81학번으로 형광등 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도 했다.

이후 평민당에 입당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변인을 거쳐 비례로 국회의원이 됐고 3선에 성공했다. 그러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국토부장관에 기용됐는데 예산결산위원장을 역임한 업무 연관성이 그 이유였다. 결국 정외과 출신 정당인, 예결산위원장이 국토부장관 업무에 적합하다는게 현 정부의 판단이었다.

현 정부 입장에서는 김현미 장관의 기용은 신의 한수였다. 집값 올려 막대한 세수를 확보했고, 적폐였던 4대강은 모두 박살을 냈으니 말이다. 엔지니어링 정책만 해도 건진법을 위시해 엔지니어를 처벌하고, 부실벌점을 부실로 만들어 냈다.

국토부 역대 장관들 이력을 살펴보면 행정고시로 입부해 장관까지 올라갔거나 정치인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 25년간 역대 국토부 장관 가운데 토목과를 나온 권도엽 장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법대, 상경계열이다. 아, 20년 전에 화학과를 나온 오장섭씨가 6개월가량 장관을 하기는 했다. 공학적 지식이 기반이 되는 대표적인 이공계 부처인 국토부 장관의 90%가 문과고, 10%가 이과인 셈이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은 행정관료나 정치인이 아닌 순수 엔지니어 출신 장관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토목, 건축과를 졸업하고 스스로 설계나 시공한 프로젝트가 풍부한 엔지니어 말이다.

물론 문과출신보다 정치력이야 떨어지겠지만, 건설과 안전에 대한 철학을 갖춘 엔지니어도 충분히 장관직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다. 건설에 관련된 모든 사안을 법과 경제논리가 아닌 공학의 논리로 한번쯤은 해봐도 되는 것 아닌가.

다른 부처는 어떨까. 문화관광부는 공예가인 김종덕 장관부터 배우인 유인촌, 김명곤 장관, 문학가인 도종환, 김한길 그리고 영화감독인 이창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기용하고 있다. 관료 출신도 절반 비율로 장관에 임용된 밸런스를 갖추고 있다.

의사 출신 보건복지부 정진엽 장관은 2년간 장관직을 수행하고, 다시 분당서울대병원으로 돌아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간호사 출신 김화중 장관도 노무현 정부 때 기용돼 사스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바 있다. 당장 의사 출신 정은경 본부장만 해도 코로나 방역을 얼마나 잘하고 있나.

법무부와 기획재정부는 엔지니어와 마찬가지로 그 분야 전문가인 판검사와 경제 관료가 수장을 맡는 게 전통이고, 국방부는 말할 것 없이 모두 다 군 출신이 장관직에 오른다. 여성부야 말해 뭐하겠는가. 즉 타 부처는 해당분야를 전공한 인사와 관료를 골고루 배치하는 게 전통이다.

국토부에 문과 장관들이 계속 기용되는 반면 엔지니어출신은커녕 공대출신조차 기용되지 않는 풍토는 사농공상 대한민국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어디 감히 공돌이가 장관을 해”라는, 밖으로 내뱉지는 않지만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장관인사에 적용된 것이다.

십 수 년 엔지니어링, 건설업계에서 몸담으며 튼튼한 공학적 지식과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엔지니어를 많이 봤다. 단순히 배운 것으로 쳐도 웬만한 관료, 정치인에 절대 밀리지 않는다. 물론 엔지니어가 장관을 한다고 지금보다 더 대단한 성과를 낸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엔지니어 출신이 장관이 될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토목, 건축학과를 비롯한 이공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나.

한 때 이공계 살리기 프로젝트가 한참 유행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법대출신 장관이 진정으로 이공계를 살리고 싶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역시나 ‘내 것이 아닌 정책’은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