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만 건설기술인 밥그릇 뺏는 기술사법 개정안 “안전 볼모 新카르텔” 논란

공공설계 기술사 서명 의무화…없으면 징역·벌금형 업계 “절대다수 기술인, 사실상 무용지물”

2020-12-30     조항일 기자

(엔지니어링데일리)조항일 기자=공공부문 설계에 대해 기술사의 최종 서명을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기술사법 개정안이 엔지니어링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안전을 빌미로수십만명의 기술인들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법이라는 지적이다.

30일 건설엔지니어링업계에 따르면 지난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김영식 의원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기술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3억원 이상 공공설계에 대해 기술사가 최종서명을 하도록 해 기술사 자격의 실효성 제고 및 공공안전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기술사 서명이 없는 경우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에 대해 엔지니어링업계는 한국엔지니어링협회 및 건설기술관리협회 등과 연계해 공동대응에 나섰다. 업계가 지적한 내용은 ▲안전확보는 적정대가 및 사업관리 영역 ▲엔지니어 육성 저해 ▲기존 엔지니어들의 권익 침해 등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기술인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한 대형 A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결국 또 안전을 볼모로 규제는 쎄고 기존 기술인들은 바보만드는 법안이 나왔다”며 “안전 문제는 적정대가와 사업관리로 풀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기술사는 엔산법에 의해 사업자 신고시 기술인 2인으로 인정받고 있고 PQ 평가에서도 최고점을 부여하는 등 혜택을 주고 있다”며 “사업 전권에 대한 책임까지 준다는 것은 과도하다”고 덧붙였다.

법안 통과로 기술사 만능주의가 되면 엔지니어를 꿈꾸는 청년층들의 유입과 기존 업계에 몸담고 있는 기술인들에게도 영향이 미칠 수 밖에 없게 될 전망이다.

이 관계자는 “오직 기술사만이 의미가 있다면 누가 업계에 오려고 하겠나”라며 “안그래도 따기 어려운 기술사인데 엔지니어링업계는 더 늙어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B엔지니어링사 관계자도 “이미 엔지니어링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기술사에 밀려 승진이나 임금인상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결국에는 회사를 퇴사하고 기술사 취득에 올인하는 등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사의 경우 이미 300~400명의 기술사가 있지만 중소사들의 경우에는 기술사조차 확보 못한 경우가 태반이어서 업계 전체에도 막대한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기술사법 개정 발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8~20대 국회를 통해 지금까지 다섯 번 개정안이 발의되고 폐기됐지만 꾸준히 상정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기술사 취득이 어려운 국내 실정상 절대 소수인 이들이 업계 내에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려는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현재 한국의 기술사 자격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과 비교해 합격률이 매우 저조하다. 업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건설엔지니어링 기술인는 약 93만여명으로 이중 기술사는 3만6,000여명, 전체의 약 3.8%에 불과하다. 신고된 건설엔지니어링사를 기준으로는 3,509개사 가운데 36%인 1,262개사만 기술사를 보유하고 있다.

C 엔지니어링사 대표이사는 “해외처럼 노멀한 자격증이라면 적격자가 충분해 권한을 강화해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국내 상황에서는 그 많은 프로젝트를 소수의 기술사들이 검토한다는 것이 맞나”라며 “(개정안은) 일은 절대다수인 기술인이하고 서명만 소수 기술사가 하겠다는건데 부실해보이는 쪽이 어딘지는 명확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한편 30일까지 입법예고하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국회입법예고 사이트에는 현재 3,800여건에 달하는 찬반 의견이 등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