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30년뒤 한국 엔지니어링

2021-08-23     조항일 기자
조항일

지난해 건설엔지니어링업계는 코로나19 펜데믹 속에서도 이례적인 수주 행보를 보이면서 가장 찬란한 한때를 보냈다. 업계 사상 최초의 매출 1조원 기업도 나올뻔 했다. 작년만 못하지만 올해도 조용하게 제몫을 하고 있는 엔지니어링업계다.

화려한 겉모양새와 달리 요즘 건설엔지니어링업계는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아니 이미 10여년전부터 ‘사람없다’란 말을 입버릇처럼 해오다가 최근들어 심각해진게 맞다. 중소 엔지니어링사들은 자구책으로 예비합격자를 2~3배수 늘리고 있지만 평균 30명, 많아야 50명인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타사 면접에서 떨어진 지원자를 보내주면 안되냐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다. 신입 없는 현실은 외면하고 10여년간 우상향해 온 업계 상황에 안주한 결과다. 그래서 엔지니어링사들은 공채보다 상시모집을 하는 경향이 크다.

핑계없는 무덤이야 없겠지만 사회경험 안해본 취준생 입장에서는 큰 메리트를 못 느끼니 지원을 안한다. 물론 연봉은 최근들어 순위권 회사들이 초봉 4,000만원대 상당의 돈을 주면서 덩치는 커졌지만 여전히 연봉은 시공사가, 지위는 공무원이 탑이다.

그래서 토목과 나온 인재는 죄다 공무원, 공사, 건설사에 뺏기고 있다. 내 가치가 가장 높고 소중한 MZ세대다. 돈을 많이 받던 갑질을 하던 둘 중 하나는 해야할 게 아닌가. 더욱이 기존 엔지니어들 가운데 일부는 후배들을 위한답시고 “엔지니어 말고 공무원 하라”는, 조언을 가장한 자조적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이러한 선택을 부추기고 있다. 틀린말은 아니다. 연봉은 제일 작아도 현직에선 로비로, 은퇴하면 엔지니어링사에서 억대 연봉 받으면서 평생 부족분을 메울 수 있는게 공무원이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꾸려나간다 쳐도 문제는 30년후다. 매년 공무원은 늘어나는데 일할 수 있는 엔지니어는 없어지고 있다. 너도나도 공무원하겠다고 하다가 일하는 기술자는 없고 뒷짐 진 감독관만 남게 될 판이다. 그렇다고 전관은 없어질까. 퇴직자는 많아지는데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리 없다. 현재의 전관 시스템이 30년뒤에도 계속된다면 말이다.

결국 당연하게도 업계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엔지니어 유입이, 세대교체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취업경쟁률 100대 1이 우스운 요즘 취업시장에서조차 인력난을 겪는다는건 좀 과장해서 한국 엔지니어링산업의 소멸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기성세대가 뒤로 숨지 말고 당당해져야 한다. 돈 많이 주는 회사를 시기하고 따돌릴게 아니고, 주52시간을 지키는 수준을 복지라고 얘기하면 안된다.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적힌 '사물이 실제 보이는 것 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구처럼 매년 수주고를 경신하고 있는 한국 엔지니어링산업이 겪고 있는 인력난은 명백한 위기 시그널이다. 일 특성상 엔지니어가, 엔지니어링사가 사라질리야 있겠냐고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이던 원자력 기술과 엔지니어는 불과 5년만에 죄다 해외로 유출됐다.

명백한 위기상황이지만 시장자본주의 논리로 보자면 가장 권력의 정점의 시기에 있는 엔지니어링업계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없다. 요즘 턴키합사에 사람이 없어 프리랜서 엔지니어를 3개월 쓰면서 1년치 이상 연봉 주는게 그 단면이다. 이 시기를 허송세월 보내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싫어하는 일본의 기술력에 의존해야하고, 세계 선진국의 돈벌이 국가로 전락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