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에 밥그릇 뺏긴 엔지니어링사…손해만 부르는 해외 타당성 조사

줄어든 사업비에 부실 사업 우려도 기술·재무 분야 모두 보장할 수 있는 구조 필요해

2021-10-05     김성열 기자

(엔지니어링데일리)김성열 기자=정부가 발주하는 해외 건설사업 타당성조사 사업에 참여하는 엔지니어링사의 이익이 줄어들면서 참여도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엔지니어링사의 빈자리를 회계사가 채우고 있는 가운데 엔지니어링업계는 타당성조사 사업의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5일 엔지니어링업계에 따르면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와 한국수출입은행(EDCF)이 지원하는 타당성조사 사업에 엔지니어링사들은 사실상 손해를 보면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지니어링사들이 사업성이 떨어지는 타당성조사 사업을 기피하면서 사업총괄책임자(PM)나 주계약업체를 회계법인이 맡는 경우가 늘어났다.

타당성조사는 해당 시설의 수요와 사업에 필요한 각종 비용을 예측하는 사업이다. 해당 사업에는 사업지 주변 인프라 시설과 지질 특성, 기후 등 기술적인 조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엔지니어링사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현지 투자법이나 규제, 사업비 운용 등 재무적인 분야의 조사는 그 다음이다. 일반적으로 기술 분야 타당성조사가 2/3정도 진행된 다음에 재무 분야 타당성조사가 치러진다. 

이때 회계법인이 타당성조사를 주관하게 된 배경에는 민관협력사업(PPP)의 확대가 있다. 기존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서는 엔지니어링사가 타당성조사 사업을 주관하고 자체적으로 회계 업무를 처리하거나 회계사에 하도급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최근 PPP 사업이 늘어나면서 재무 분야 타당성조사의 중요도가 높아졌다. 민간 투자자들이 안정적인 투자를 위해 글로벌 회계법인을 선호하면서 이들이 PM을 맡거나 주관사가 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EDCF는 지난 3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LRT 2단계 PPP사업 타당성조사 사업제안서에서 PM은 공동수급 대표사 소속으로 반드시 회계법인 소속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사업주가 해외철도 PPP사업 타당성검토 경험이 풍부한 회계법인 전문인력의 용역 참여와 글로벌 회계·법무법인의 과업 참여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해당 사업은 A 회계법인이 낙찰받았다. 

KIND에서 발주한 사업의 경우 지난 2월 26일 개찰 된 방글라데시 메그나 교량사업 타당성 조사 사업에서는 A 회계법인이 주계약업체로 선정됐다. 같은 날 개찰 된 카타르 학교 PPP Package 3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사업에서도 A 회계법인이 단독응찰해 수의계약을 맺었다. 지난 7월 2일에 개찰 된 라오스 부아라파 400㎽ 풍력발전 사업 타당성 조사에서는 B 회계법인이 지분율 50%로 주계약업체가 됐다. 

KIND는 “KIND에서 하는 모든 사업이 반드시 회계사가 메인이어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며 “회계법인의 경우 현지 지사가 있어 유리하고 엔지니어링사가 입찰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엔지니어링사가 손해를 감수하고 타당성조사 사업에 참여하는 이유는 본 사업 수주를 위해서다. 해당 사업을 진행하면서 현지에 대한 이해도와 발주처와 친밀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본 사업을 따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타당성조사 결과에 따라 본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고 수주 입찰에 실패할 수도 있어서 엔지니어링사 입장에서는 도전에 가깝다는 것이다. 

또 타당성조사 사업에서 회계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엔지니어링사의 이익도 줄어들었다. 회계법인은 타당성조사 사업에서 컨설팅 비로 평균 2억원~2억5,000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최근 점점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법인과 엔지니어링사가 타당성조사 사업비를 제로썸(zero-sum) 방식으로 나누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다. 

일각에서는 줄어든 사업비로 인해 부실 사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엔지니어링사가 타당성조사 사업에서 기존보다 사업비가 줄어들면서 기술 분야 조사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이는 투자자 리스크로 이어지는 데다가 해외에서 국내 기업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회계사가 부족해지면서 타당성조사 사업에 참여하는 회계사는 연차가 낮고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엔지니어링 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재무 분야에서도 전문성 부족으로 해외 시장에서 부실 사업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에 업계는 해외 타당성조사 사업의 예산을 키워 엔지니어링사의 사업 참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KIND는 평균적으로 5~7억원 규모, EDCF는 평균적으로 10억원 규모로 타당성조사 사업을 발주하는데 외국 정부가 평균적으로 100만~150만달러, 원화로는 약 12억~17억원으로 발주하는 것에 비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PPP 사업의 특성상 회계법인이 타당성조사 사업을 주관하더라도 엔지니어링사의 이익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업계는 기술 분야와 재무 분야를 나눠서 발주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회계사와 엔지니어링사가 서로 분리된 분야의 조사를 하는 만큼 별개의 사업으로 타당성조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엔지니어링사들이 해외 건설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FS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며 “엔지니어링사와 회계사가 공생하는 관계가 아닌 밥그릇 빼앗기 싸움을 하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