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토목과 입결이 건축과 보다 낮은 이유

2021-10-06     정장희 기자

“분명한 것은 건축과가 토목과보다 입결이 높다. 사실 공대계열에서는 토목과가 가장 아래라고 보면 된다. 애들이 토목과라면 고개를 다들 돌린다” 추석에 고향에서 만난 입시상담을 업으로 하는 친구의 말이다.
 
의치는 저 세상 끝의 어느 지점이고, 전화기 즉 전자, 화학, 기계공학 같이 대기업 취업이 용인한 곳이 다음 순번이다. 또 최근 잘나가는 기업을 묶은 신조어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에 해당하는 IT기업에 취직하기 위한 컴퓨터공학과는 전화기보다 더 높다. 토목과나 건축과는 하위권에 위치해 있는데, 그 가운데 토목학과가 한단계 아래다. 과를 토목과로 바꾼다면 대학교 등급을 한단계 올릴 수 있다.

토목과 입결이 전화기, 컴공을 넘어 건축보다 낮은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건축은 2000년대 초 인테리어를 주제로 한 주말 예능프로 러브하우스를 시작으로 드라마, 예능에서 끊임없이 다뤄주고 있다. 초기 래미안 광고에서 배우 장서희가 스케치북을 들고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을 스케치를 하는 모습에 끌려 건축학과를 들어간 학생들이 지금도 부지기수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또 얼마나 멋진가. 요즘엔 유현준 교수를 필두로 수 많은 건축가들이 방송과 유튜브를 넘나들며 건축과 인문학을 버무려 설명하니 ‘건축은 멋있다’라는 인식이 커졌다.

반면 토목은 일단 이름부터 느낌이 살지 않는다. 토목-土木 흙과 나무라니. 20세기 건설사업의 주재료가 흙과 나무일 때 일본에서 쓰던 말 아닌가. 게다가 아이들 입장에서 건설현장을 보면 덥거나 춥고, 먼지가 나거나 위험해 보인다. TV를 보아도 토목엔지니어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나 예능은 없고, 기껏해야 뉴스에나 나오는 ‘뇌물을 수뢰했다’, ‘뭐가 무너졌다. 부실이다’ 정도니 말이다. 유튜브에 ‘토목엔지니어링’을 검색하면 ‘토목의 현실’, ‘내가 설계사를 퇴사한 이유’, ‘가시설 공사 엄지 말뚝 시공’ 같은 것들만 나온다. 어디에도 멋진 엔지니어가 나와 토목이 Civil Engineering으로 역사적 인문학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말은 없다.

토목과 입결이 건축과보다 낮은 것은 결국 Civil Engineering을 제대로 재미있게 설명해 줄 오피니언 리더도 인플루언서도 예술가도 역사가도 없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 설계직군을 기준으로 건축과가 토목과보다 나을게 하나도 없다. 일단 공공보다 민간의 일이 주가되다보니 예전부터 건축사사무소는 상식을 뛰어넘는 노동강도와 저임금으로 유명했다. 소형 건축사사무소는 말할 것도 없고, 대형건축사 임금도 최근 임금이 올라간 토목엔지니어링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토목은 경력을 국가가 관리해 나이가 들어도 경력이 방어되지만 건축은 그야말로 무한경쟁의 벌판에 내몰리게 된다. 직급 올라 영업하고 로비하는 문제는 토목이나 건축이나 마찬가지니 더 설명할 필요는 없다.

토목엔지니어링은 요즘 잘나가는 전화기, 컴공에 비하면 일정부분 모자라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월급쟁이 입장에서 어떤 분야든 불리한점과 애로점이 없을 수 있겠나. 모두 다 장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들어 다들 공무원, 전문직, 대기업이 최고라지만 막상 그 속을 파고 들어가면 거대한 기계의 부속일 뿐이다. 엔지니어링산업 현실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개선하는 작업은 계속 이뤄져야 한다. 더 나은 여건과 복지 그리고 직업적 긍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대안을 내놔야 한다. 엔지니어링 환경은 10년전과 비교할 때 분명 좋아졌다. 쓸데없는 패배주의만 없어진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Civil Engineering이 인류의 문명을 만들어낸 최고의 학문이라는 사실을, 엔지니어들이 먼저 능동적으로 알고 알려야 하지 않을까.


엔지니어링데일리 정장희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