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점 권력에 취한 발주처, 곳곳서 ‘으름장’…법정소송 증가 우려도
벌점 부여기관, 해마다 증가추세 서울시 감사위원회, 삭제한 벌점 재부과 결정
(엔지니어링데일리)조항일 기자=합산벌점 시행이 본격화되면서 발주처들의 벌점 통보 사례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안전을 구실로 발주처들이 벌점 권력 횡포를 부리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13일 엔지니어링업계에 따르면 중대형사를 중심으로 벌점을 피하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들어가면서 대형사들의 경우 여유 감리원 등을 동원해 품질관리, 안전전담팀을 신설했다. 합산벌점 시행에 따른 불이익 적용은 오는 2023년 1월 1일부터로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일찌감치 내부단속에 들어간 것이다.
일부 대형사들은 이미 끝난 사업에 대해 대표이사가 직접 재검토를 주관하는 등 연말에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한 대형 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입찰제한을 받았던 사업들을 중심으로 사업들을 되짚어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형사들의 노력과 별개로 벌점을 부과하는 발주처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 7월 감사원이 공개한 건설산업 불이익 제도운영 실태 반기별 벌점 부과 현황에 따르면 ▲2018년 하반기 233곳 ▲2019년 상반기 260곳 ▲2019년 하반기 297곳 ▲2020년 상반기 288곳 등으로 지난해를 제외하고 매년 벌점부과 발주처가 증가하고 있다.
평균벌점 건수도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자료에 따르면 건설기술인 기준 최근 2년 누계 평균벌점 건수는 ▲2018년 하반기 927건 ▲2019년 상반기 1,035건 ▲2019년 하반기 1,157건 ▲2020년 상반기 1,300건 등으로 조사됐다.
A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대부분 주의를 주는 선에서 평가를 끝냈던 발주처들마저 합산벌점 시행을 앞두고 점검 형태가 공격적으로 변했다”라며 “합산벌점 이전 방식에서도 큰 사고 없이 잘 이끌어왔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안전은 둘째치고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가 명확하다”고 비난했다.
벌점 부과기관이 늘어나면서 발주처와 업계간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대표적이다. 교통공사는 지난 2010년 수주한 지하철 1~4호선 내진보강 설계와 관련해 사업에 참여한 엔지니어링사에게 벌점을 부과했다가 재검토위원회를 통해 이를 철회한 바 있다. 그러나 작년 11월 서울시 감사위원회 지적으로 당시 처분이 잘못됐다며 교통공사에 벌점을 재부과하도록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관련 업체들은 이의제기를 한 상황으로 결과에 따라 법정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사업에 참여했던 B업체는 “범죄인에게도 일사부재리 원칙이 적용되는 마당에 이미 끝난 사업에 대해서 다시 벌점을 부과하는 경우가 어딨나”라며 “관련 소송을 준비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냐”고 하소연했다.
불이익 적용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사실상 자체 불이익을 적용하겠다는 발주처들도 나오고 있다. LH는 지난해 12월 건설기술 설계용역 평가지침 개정에 따른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면서 종심제 평가시 설계 부실이 발견되면 경고장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세부적으로는 계약심사 서면경고는 1회당 1점, 경고장 1회당 2점의 감점을 받게 된다. 경고장이 3회 이상인 경우에는 하위업체를 선정하도록 정했다.
C사 관계자는 “아직까지 입찰공고에 해당 내용을 명시한 적은 없지만 사실상 시간문제로 보인다”라며 “불이익 적용에 대해 확정 논의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LH의 조치는 타 발주처 확대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합산벌점 부과가 공무원, 공사 직원들의 실적으로 직결되는만큼 이러한 현상은 예상가능 했던 것” 이라면서도 “교통공사의 사례처럼 끝난 사업에 대해 재검토를 하는 경우가 재발하지 말란 법은 없기 때문에 관련 소송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