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사엔지니어 불안한 주 52시간, 노사합의 전제 필요
업체는 효율적 인원 운영에 적극 환영 근무시간 늘고 수당 덜 받을까 우려도
(엔지니어링데일리)김성열 기자=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주 52시간 유연화 도입에 대해 업계 내에서도 회사와 엔지니어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21일 엔지니어링업계에 따르면 주 52시간 유연화 공약을 업체들은 전반적으로 반기는 반면, 소속 엔지니어들은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업체는 턴키 합사나 발주가 몰리는 때와 같이 업무 집중도가 높은 시기에 효율적인 인원 운영이 가능해졌지만 엔지니어들은 야근, 초과근무 등으로 지급되는 수당이 이전보다 적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해 현행 주 52시간 제도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약에 따르면 현재 연구직 최대 3개월, 사무직 최대 1개월로 제한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기한을 1년으로 늘려서 주 평균 52시간을 지키는 선에서 유동적인 시간 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와 함께 1년간 근로시간을 지정한 뒤, 이를 초과하면 휴가로 사용할 수 있는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도 언급됐다. 두 방안 모두 1년 단위로 근무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공통점으로 하고 있다.
이에 엔지니어링사들은 해당 공약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설계 부서는 연말, 관리 부서는 발주가 몰리는 3~6월 등 특정 시기에 업무가 집중되는 만큼 전략적인 대응이 가능해진 것이다. 턴키 합사 등 몇 개월간 밀도 있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이전보다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주 52시간제 도입 당시에도 엔지니어업계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정책연구실의 보고서에 따르면 엔지니어링산업 노동시간의 월별 표준편차는 11.7로 전체 산업 9.7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또 엔지니어링사 평균 노동시간이 10월에는 132시간이지만 3월에는 178시간으로 최대 46시간의 편차가 나타나는 등 산업 전체 평균인 39.2시간보다 더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이런 산업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선 1년 단위의 근무제도가 더 효율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지난해 기준 엔지니어링업체 92%가 중소기업이고 인력난에 시달리는 업계 특성상 1년 단위 유연한 근무제도는 업계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4일 300개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차기 정부에서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주52시간제 등 노동규제 개선이 49%로 가장 많은 응답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인력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노동시간마저 제한되면서 회사 운영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A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같은 유연근무제가 엔지니어링 산업에는 더 어울리는 형태”라며 “이전보다 시간·비용적인 측면에서 효율적인 회사 운영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반면 소속 엔지니어들은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기업친화적 정책으로 인해 그간 업계 고질적인 문제로 손꼽혔던 합사의 과도한 업무 시스템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가 도입될 경우 직접적으로 소득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다.
지난 2018년 협회 정책연구실 보고서는 엔지니어링업계 월평균 근무시간은 164.6시간, 월평균 초과근무시간은 5시간으로 분석했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전에는 근무시간이 더 길었던 것인데 이때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윤 당선인의 “주 120시간 근무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인해 불안은 더해지고 있다.
또 근무시간은 늘어나지만 선택적 근로시간제나 근로시간 저축계좌제가 도입되면 추가 근무 수당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월별 근로시간 편차가 큰 산업 특성상 특정 시기에 초과근무가 필요한데,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도입되면 근무시간으로 포함돼 수당이 적어질 것으로 예측하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의 경우에는 아예 휴가로 받게 돼 추가 수당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B엔지니어는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그나마 합사도 조금 할만해졌다고 할 수 있었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거기에 일은 더 늘어나고 수당은 못 받는다면 대체 누가 일하겠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업계 관계자는 “이번 노동제도 개선은 노사 합의가 전제되기 때문에 서로 만족할만한 조건을 맞추는 게 최우선일 것”이라며 “앞으로 정책 추진의 방향성에 따라 업체들도 발맞춰 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