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한민국 엔지니어는 이름이 없다

2022-06-30     김성열 기자
김성열

대한민국이 독자 개발한 누리호가 2차 발사 시기에 성공을 거뒀다. 생중계로 진행된 발사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당당하게 보도자료를 냈다. ‘대한민국 우주 시대 개막’이란 제목으로 올라온 보도자료에는 이종호 과기부 장관과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의 이름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엔지니어들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이름을 올린 기사는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고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항우연 노동조합은 “다른 공공연구기관과 비교해도 한참 낮은 임금 수준이고 시간외수당을 법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성명을 냈다. 정치인들이 연구원들을 사천·고흥으로 내몰고 정부 부처와 기관은 연구자 처우를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전 세계 7번째로 위성을 자력 발사한 기술력을 가진 엔지니어들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걸 보면 대한민국에서는 엔지니어라는 명칭이 붙으면 분야에 상관없이 무시당하나 싶다. 이런 홀대는 토목, 건설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는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었다. 조선시대 사농공상 신분제도가 2022년 대한민국에서도 아직 남아있는 건가 보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터키의 차나칼레 대교 기사에서도 시공사인 SK에코플랜트와 DL이앤씨는 언급되지만 설계를 맡은 평화엔지니어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전에도 항상 그래왔다. 무슨 준공식, 완공식이든 엔지니어링사와 엔지니어의 노고가 언급되는 곳은 없었다. 업계 전문지나 관련 단체에서나 몇 번 다룬 게 전부다.

그뿐인가. 고속도로 표지석에서도 발주처나 시공사는 빠지지 않고 적혀있는데 설계사는 없는 것도 많다. 공사 기간은 발주날짜부터 적혀있는데, 정작 가장 먼저 일한 엔지니어링사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사 현장에 적혀있는 상황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면 엔지니어는 이름을 숨겨야만 하는 직업인가 싶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시에 있는 한 고속도로에는 도로를 설계한 사무엘 랭커스터의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앞 현판에는 ‘엔지니어 사무엘 랭커스터의 천재성 덕분에 수 백만명의 사람들이 신이 만든 광경을 즐길 수 있게 됐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관광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엔지니어의 역할과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곳이 된 셈이다.

우리나라였으면 발주처랑 시공사 이름 정도는 박혀있을 것이다. 기념비적인 공사였다면 대통령이나 장관 이름까지 말이다. 엔지니어의 천재성보다 충성심을 요구하는 대한민국에서 발주처와 시공사 옆에 엔지니어 이름 석 자 올리기는 너무 과한 부탁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