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붕괴사고 이전으로 돌아가나”…서울시 감리 정책에 분노한 엔업계
업계 "공무원은 전문성, 업무 환경 등으로 현실적으로 감리 업무 불가능해" 서울시는 공공의 책임과 역할을 늘리겠다는 입장 내놔
(엔지니어링데일리)김성열 기자=서울시가 발주한 사업을 직접 감리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엔지니어링업계는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13일 서울시는 직접 발주하는 건설공사에 대한 현장관리를 민간업체가 대행하는 책임감리에서 공무원이 상주해 현장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공무원 직접감리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권한과 책임을 지는 감독 업무는 상주 공무원이 수행하고 기능적 검측이나 기술적인 지원 업무는 전문 엔지니어링사에서 지원받는 협업 구조로 시행될 전망이다.
현행 건설기술진흥법에서는 총공사비 200억원 이상 공사는 발주처에서 직접 감독이 불가해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가 책임감리를 의무 시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국토교통부 등 중앙정부에 법 개정도 건의할 계획이다
해당 정책이 공개되면서 엔지니어링업계는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거냐”며 절대 반대라는 입장을 내놨다. 업계는 안전과 직결되는 감리 업무에 대한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과 공무원 업무량을 감안하면 현장 상주가 어렵다는 점, 감리 사업의 대가가 줄어드는 점 등을 반대 이유로 제시했다.
30년이 넘는 감리 경력을 지닌 A엔지니어는 “현재 규정상 품질, 안전, 환경 등 다양한 부분에서 감리원들의 전문성이 필요한데 공무원들이 이 수준을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책임감리가 도입된 이후 관련 법이나 규제도 많이 늘어났는데, 이 부분을 출퇴근 확실한 공무원들이 현장에 상주하면서 모두 충족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을의 입장에서 어찌할 방도는 없지만 업계 질서에 맞지 않는다”면서 “과거에 똑같은 절차로 국가적인 사고를 겪었는데도 더 나아지긴커녕 그때로 돌아가자는 것 같아서 어이가 없다”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민간이 공공공사의 발주청 권한까지 대행하는 책임감리가 도입된 바 있다. 당시 부실시공과 함께 감독 공무원의 부실감리 등이 문제로 언급되며 건설감리제도가 강화되기도 했다. 이번 서울시의 정책은 사고 이전에 시행되던 시공감리와 같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또 한도가 정해져 있는 공무원의 업무환경으로는 감리업무를 모두 수행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총공사비 500억원 규모 현장에는 상주 감리원이 5명, 비상주 기술지원 감리원이 7~8명 정도 필요하고, 공사 기간 3년 기준으로 필요한 서류가 10캐비넷 정도 된다. 업무 시간과 강도 등이 모두 정해진 공무원이 해당 기준을 맞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B엔지니어는 “감리가 담당하는 민원이나 유관기관 협의 등 업무에서 민간끼리의 합의가 아닌 관이 개입하면 그림도 이상하고 일도 더 복잡해질 것”이라며 “가스‧전력‧송유관 등 지자체가 아닌 곳과 협의할 때, 공무원이 지장물 조사까지 하겠다는 건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공사 현장에서 책임을 지는 공무원 역할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정책”이라며 “최근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들처럼 민간에 이양했을 때 책임감 없는 사례도 있어 공공의 역할과 책임을 더 늘리겠다는 취지다”라고 전했다.
또 공무원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현행 감리제도와 마찬가지로 기술적인 지원 업무는 엔지니어링사에 외주를 맡겨 진행하되, 현장에 상주하는 감독 공무원이 생기는 것”이라며 “관련 전문가들도 영입하면서 전문성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공무원 업무환경 상 상주가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아울러 과거 사고와 관련해서는 “요새 공무원들은 당시와 다르다”며 “업계가 우려하는 비리나 유착, 부실 업무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감리 사업비는 기존의 70~80% 정도로 책정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차차 인상할 예정이다”라며 “당장 1~2년 안에 정책을 도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1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업계 의견도 반영하면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는 최근 발생한 성산대교 바닥판 균열이 시공단계별 감리 소홀에 따른 중요 품질 문제로 판단해 공무원 직접감리 도입을 결정했다. 우선 성산대교 바닥판 보수공사부터 시범 적용하고 법령 개정을 거쳐 서울시 신규 발주 공사를 대상으로 점진적 확대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