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엔지니어링업계의 클린스만

2024-02-16     조항일 기자
조항일

최근 지방계약법 시행규칙 개정안 반대를 위한 엔지니어링업계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시행규칙 개정안이 통과되면 부실감리로 인한 입찰참가제한이 최대 13개월로 늘어나고 그동안 제재가 없었던 설계분야도 처분근거가 신설된다.

사안이 중대한만큼 업계는 그동안 별다른 효력을 내지 못한 탄원서 방식이 아닌 업계 기술자들을 총동원해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와 국민참여입법센터를 통해 의견개진을 하고 있다.

당초 업계에서는 3,000여개 업체와 7만여명의 임직원들이 나서서 의견제출에 동참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직원들의 참여가 필요한데 그러지 못해 답답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엔지니어링업계는 40만여명의 기술자가 몸담은 거대 단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발주처에 종속된 채로 태동한 산업의 한계와 줄줄이 엮여있는 전관 예우가 그 이유다. 그리고 여기에는 현재 대표이사, 오너가 된 기성 엔지니어들의 책임이 크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번 개정안의 향방에 따라 돈벌이가 달라지는만큼 예민한 사항이다. 하지만 월급쟁이 입장에서야 남 얘기일 뿐이다. 더욱이 성과가 나도 뭐하나 떨어지는 게 없는 입장에서 굳이 시간을 할애해 힘을 보탤 필요가 있을까. 설령 법안이 통과돼도 동참하지 않은 엔지니어들을 탓해서는 안된다.

다만 엔지니어들에게 간접적인 피해가 우려되는건 맞다. 회사가 돈을 못벌면 성과급은커녕 월급이 밀릴지 모를 일이다. 최근 몇년전까지도 월급 밀리는 회사가 더러 있었을 정도니 가능성이 없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대표들은 그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다. 임금체불로 구속 된 대표이사에 대한 선처 탄원서를 돌린 것으로 이미 확인 되지 않았나.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공유된 결과다. 괜히 엔지니어링을 "21세기 산업을 20세기 사람들이 19세기 방식으로 일한다"고 하는게 아니다. 

결국 엔지니어들을 위해서라도 법안 통과는 막아야 한다. 업계의 오너, 대표들이 직접 나서 머리를 깎거나 하는 식의 투쟁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대표들이 직접 집회현장이나 정부부처를 찾아가는 것을 보기도 쉽지 않다. 다만 적응력 하나는 최고다. “이 법이 통과되면 우리 다 죽는다”고 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적응해서 잘 살아남고 있지 않나. 엔지니어링이 끊임없이 발주청의 빨대가 되고 있는 이유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더 많은 로비와 전관영입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할 것이다. 비정상적인 대가를 주는 사업에 엔지니어들을 갈아 넣을 것이다. 엔지니어 처우는 현상유지면 다행이고 더 박해질 것이다. 되레 그들은 중요한건 돈이 아니라 국가를 짊어지고 있다는 사명감이라고 엔지니어들을 다그칠게 뻔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참을성이 없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전략·전술 하나 없이 그저 몇몇의 선수에 의존해 정신력만 강조하고 결과가 나쁘면 선수탓을 하는 클린스만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이유다. 오너는 자를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