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자격과 학경력 사이

2024-04-16     정장희 기자

학경력자의 등급을 특급까지 허용하는 엔산법 개정안이 뜨겁다. 기술사와 기사 자격이 있는 엔지니어는 "무자격자가 특급이 되는 것은 조무사가 의사가 되는 것과 뭐가 다르냐"며 반발하고 있다. 또 "학경력자 양산은 결국 엔지니어의 처우를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경영자들의 이득만 가져올 것이다", "종국에는 공대생의 신규유입을 막아 업계의 미래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술사 팀장님 얼마 받으세요? -0000만원 받는다.- 아 그러세요? 이놈의 업계는 미래가 없군요.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30대 기술사의 연봉은 1억원 가량이었다. 지금은 이에 미치지 못하거나, 잘해야 비슷한 수준이다. 물가가 적어도 3배 올랐다고 본다면 결과적으로 손해인 셈이다. 90년대 일본 직장인 연봉이 438만엔인데, 34년이 지난 현재 445만엔인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셈이다.

물론 이번 개정안은 엔산법상 그렇다는 것이고 대다수 건설엔지니어들은 건설기술진흥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자격자들이 큰 타격을 입을 일은 없다. 다만 정부의 기조 즉 “엔지니어링산업에서 자격을 어떻게 볼 것이냐”라는 관점에서 이번 조치가 건진법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런데 정부는 왜 이런 조치를 시행했을까. 경영자들이 엔지니어를 싼값에 쓰고 싶어서 대정부 로비라도 한 것일까. 사실 자격에 대한 평가절하는 자격자체보다 PQ 기준의 전반적인 완화가 가장 큰 몫을 했다. 모두들 기준이 낮아 졌기 때문에 굳이 기술사가 아니더라도 경력과 실적이 있다면 예전보다 빠르게 책임급으로 올라 설 수 있게 됐다. 사실상 퇴직이 없는 상태에서 비상근이라는 이름으로 자격을 대여하다보니 자격증이 켜켜이 쌓이면서 가치가 떨어진 측면도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건설분야만큼 자격증으로 직업적 안정성을 지켜주고 국가가 나서서 경력을 관리해 주는 업종이 있나 싶다. 당장 의사가 개원을 한다 해도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숫자와 경력을 강제하지 않는다. 사실 없어도 되고 경력도 개인 혹은 회사가 자체적으로 관리한다. 대부분의 기업과 업종에서 통용되는 개념으로 IT만 봐도 경력이고 자격이고 필요 없고 오직 개발자의 능력을 개발자가 증명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해외에서는 자격 자체가 없고 설령 있다 해도 경력과 실적에 비하면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통상의 업종과 마찬가지로 대학교 나와 경력과 실적을 쌓아 프로젝트를 수행할 뿐이다. 실적도 국가에서 관리해주는 곳은 없을뿐더러 특정분야에 몇 명의 엔지니어를 배치할 것을 강제하는 곳도 없다. 엔지니어가 잘하냐, 못하냐는 오로지 발주처와 인터뷰로만 결정된다. 

자격증은 국가가 개인을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한 동북아 지방의 문화로 보통교육의 확장판 같은 개념이다. 즉 자격증을 통해 업무 수행의 최소기준을 맞추고 보수교육과 실적을 등록해 관리를 해왔다. 고도화된 산업화가 지나고 개발정체가 오다보니 자연스럽게 자격증의 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선진엔지니어링에서는 자격증의 개념도 없지만 엔지니어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대한민국보다 크게 높다. 즉 엔지니어링 업무를 수행하거나 엔지니어 대한 사회적인 지위를 인정하는데 자격증은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추상적인 이야기지만 전 세계가 자격여부와 상관없이 경력과 실적으로 엔지니어를 대우하는 만큼 그 추세선을 따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격증 있으면 뭐하나. 그 높고 높다는 기술사를 따도 선진국 엔지니어 연봉의 절반도 안되고 사회는 낮은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말이다. 중요한 것은 자격이나 학경력 논쟁보다 왜 엔지니어링과 엔지니어의 대우가 여기까지 인지. 또 어떻게 하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정장희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