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토, 나무목" 건축학과 인기 상승할 때 토목학과는 시들

토목학과 입학정원 9.1% 감소, 건축학과 1.2% 증가 “시공사 1억원 받을 때 설계사 6천만원 수준”

2024-05-16     정원기 기자

(엔지니어링데일리)정원기 기자=대학가에서는 토목에서 풍기는 투막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토목학과 이름 지우기가 한창이지만 여전히 외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본지가 토목공학 관련 학과에 대한 정시 경쟁률을 집계한 결과 지원율 감소 현상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토목학과 기피 현상은 국내 건설산업이 내리막을 걸으면서 본격화됐다. 진로에 대한 불투명성이 커지면서 입시 지원율이 감소하는 추세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학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대의 경우 지난 1946년 토목공학과를 발족하고 1997년 학부제 전환에 맞춰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로 개편했다. 이어 2007년 건설환경공학부로 이름을 변경했다. 서울대의 2023학년도 정시 경쟁률은 3.00 대 1을 기록해 10년 전 4.44 대 1과 비교해 32.4% 감소했다.

연세대는 지난 1960년 건설공학과 내 토목전공으로 출범한 뒤 분과를 겨처 현재 단일학부 단일전공인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토목·환경공학전공으로 운영 중이다. 같은 기간 정시 경쟁률은 3.63 대 1로 소폭 줄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방거점국립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부산대와 전북대, 충남대의 토목공학과 정시 경쟁률은 평균 3.68 대 1로 5년 전 평균 5.59 대 1과 비교해 2명 가까이 줄었다.

반면 건축학과는 학령인구 감소라는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모습이다. 다른 학과의 입학정원이 줄어들 때 건축학과의 입학정원은 오히려 늘었다. 나아가 입학정원 증가에도 건축학과 경쟁률은 상승했다. 건설산업 유동성 위기설, 하향 분위기의 영향은 찾아볼 수 없는 셈이다.

지난 10년 사이 국내 토목학과 입학정원은 4,797명에서 4,360명으로 9.1% 감소하고 경쟁률은 7.8명으로 내려앉았다. 건축학과의 경우에는 입학정원과 경쟁률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입학정원은 1.2% 증가한 4,445명, 경쟁률은 0.2%p 상승한 9.7 대 1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토목에 대한 인지도ㆍ처우 개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원율 감소는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잦은 주말 근무, 합사 등의 고된 업무에도 임금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히 엔지니어링업계 빅3라고 불리는 기업의 평균연봉은 6,700만원 수준이다. 높아 보이지만 평균연봉인 점을 고려하면 신입사원의 임금은 당연하게도 더 낮다. 시공사의 경우에는 단위가 달라진다. 빅3의 평균연봉은 1억6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A사 관계자는 “학과명 변경 말고 토목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없다면 지원자가 줄고 졸업생도 감소해 우수 신입사원 확보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며 “신입 엔지니어가 줄게 된다면 결국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링사 신입사원 채용현황을 살펴보면 과거 토목학과 일변도에서 경영학과, 영어영문학과 등 문과출신 사원이 늘고 있다. 실제 1,000명 이상 사원을 둔 2개사의 신입사원 공채 결과를 조사한 결과 지난 2020년 전 인원이 토목공학과 등 이공계 출신이었지만 올해는 11.25%가 문과 전공자로 나타났다. 물론 엔지니어링산업이 성장하면서 총무, 업무, 회계팀의 역할이 커졌지만 인재 수급에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다.

토목학과 졸업생 중에서 공무원 시험, 시공사, 타분야 취업 등으로 진로를 바꾸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신입 엔지니어 수급 문제는 점점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B사 관계자는 “설계 분야를 기피하는 토목공학 전공자들이 매년 증가하면서 엔지니어링사들이 인재 수급에 고심이 많다”며 “업계만 노력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만큼 정부차원에서 이미지 개선 작업과 대가 상승을 이끌어 산업을 보호하고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학과명 변경 나비효과로 여성 엔지니어 유입이 증가했다고 평가한다. 최근 엔지니어링업계에 워라밸 바람이 불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C사 관계자는 “건설환경공학부나 사회환경공학부로 개편되면서 여성 신입사원이 증가했고 신입사원의 15~20%를 차지한다”면서도 “토양정밀조사나 도시계획, SOC 조경 분야를 공부해서 엔지니어링사의 전통적인 설계영역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