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밖에서는 첩보원, 안에서는 페이스메이커…사화(社和)만사성, PQ팀에 달렸다”
편집자 주 : 아무리 좋은 기술자들을 보유한 엔지니어링사도 입찰서류가 갖춰지지 않으면 필드에서 활약할 수 없다. 발주되는 사업의 특성을 파악하고 최적의 기술자 배치를 통해 회사의 수주로 연결시키는 것은 PQ팀의 역량에 달려 있다. 본지가 엔지니어링사 PQ팀의 일상을 엿봤다. |
(엔지니어링데일리)조항일 기자=책상마다 빼곡하게 쌓여있는 서류뭉치. 쉴 틈 없이 종이를 뱉어내는 프린터기. 90년대 아날로그 사무실을 연상케 하는 엔지니어링사 PQ팀의 흔한 광경이다.
PQ팀 인력은 평균적으로 10여명 안팎. 대형사 기준으로 연 평균 1,700~1,800여건, 중견사는 1,200~1,300여건에 달하는 PQ서류를 작성한다. 이 중 30%만 입찰에 성공한다. 산술적으로 10명짜리 팀이라고 하면 직원 한명이 처리해야 하는 PQ서류는 연간 100여건 이상을 웃돈다.
365일 고강도 근무가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연초나 연말같이 특정 시기를 중심으로 일이 몰리는 때가 있다. 2~3년전까지만 해도 이런 경우 드물게 회사 인근 모텔을 잡고 2~3주동안 출퇴근 하는 팀도 종종 있었다.
주52시간제 적용도 PQ팀은 사실상 예외다. 코로나때도 마찬가지였다. 재택근무는 커녕 팀원 한명이 코로나에 걸리면 팀 자체의 출근이 금지되니 그 어느팀보다 예민했던게 이들이다.
매일 야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업무 특성상 퇴근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기술자, 회사 실적 등은 물론 온갖 제반서류를 다 합치면 1,000여쪽에 달하는 페이지를 작성해야 하다보니 챙겨야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3억짜리던 30억짜리던 PQ서류는 매한가지니 한건 한건 똑같은 에너지를 소모할 수 밖에 없다. 인쇄비용도 평균 20만~30만원. 물론 대부분의 사업이 컨소시엄이라 비용도 1/N으로 내지만 월 150건에 달하는 PQ를 작성하는만큼 제본비용만 수천만원이 들어간다.
▲입찰 핵심, 컨소시엄 구성
야근을 하거나 밤샘 근무를 해도 다음날 휴가를 쓰거나 오전 반차를 낼 수 없다. 누구보다 빨리 출근해야 하는게 PQ팀이다. 전날 맡겼던 제본의 상태는 양호한지, 오타는 없는지 꼼꼼히 검수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상없이 체크된 제본은 컨소시엄을 맺은 업체로 보내거나, 회사 내 담당부서로 보내야만 ‘전 날’ 업무가 마무리 된다.
짬짬이 시간을 내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도 PQ팀은 끊임없이 돌아간다. 특히 나라장터에 들어가 일정한 시간을 간격으로 업데이트 되는 발주청 공고를 체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평균 30분 주기로 확인하는 데 자칫 정보가 늦어지면 사업 하나를 날리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도로의 경우 주요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조금이라도 확인이 늦어지면 컨소시엄 구성도 물건너 가게 된다. 지자체 사업은 더 심하다. 사실상 모든 사업이 지역사 공동도급으로 돼 있는 요즘에는 지역 1군 업체를 잡는게 핵심 포인트다. 일부 회사들은 기술부서장들이 사전에 컨택을 해두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컨소잡는 건 PQ팀의 몫이다. 대형사에서는 주요 지역업체와 프로젝트 상관없이 연간계약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일이 전화를 돌리며 컨소시엄을 짜야하는게 일반적이다. 컨소시엄이 확정되면 지분율을 어떻게 할지, 기술자 배치는 어떻게 할지 등 다양한 조합으로 최적의 점수를 만들어내는게 PQ팀의 핵심 업무다.
낙찰 확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발주처별 정책도 꿰고 있어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PQ팀은 자체적으로 분야를 나눠서 주력하는 발주청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만큼 모두가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다. 하지만 세법만큼 수시로 바뀌는 정책과 지자체별 상이한 제도 적용은 직원들을 고시생마냥 늘 공부하게끔 한다. 공고문에 파놓은 독소조항 함정(?)이나 쉼표 하나에 입찰이 좌우되는 사례가 태반이다. 이런걸 다 피해서 기술자를 배치하고 조합하는게 PQ팀 직원으로서의 능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연간 수백건을 쓰다보면 실수가 나오는게 드문일은 아니다. 회사의 연간 실적도 이들의 숙련도에 달린만큼 매달 실적보고에서도 관련 부서 못지 않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PQ팀이다.
▲“워드병 아닌 첩보원”
부서에서 아무리 양념을 잘 쳐놓은 사업이라 할지라도 결국 이들이 서류를 완벽하게 꾸려주지 않으면 시작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기술부서와 평소 호흡을 어느정도 맞춰서 가야만 하는 일종의 회사 내 페이스메이커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 큰 갈등없이 한 몸으로 가지만 간혹 이들의 업무에 대해 등한시하는 자들도 있다. 과거에는 이들을 '워드병'이라 부르며 무시하는 일부 기술자들도 간혹 있었다. 잘되면 부서몫, 안돼면 PQ 탓이 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일부의 왜곡된 시선과 달리 이들은 회사의 최전방 첩보원이 돼 정보를 취득한다. 특히 PQ는 정보를 통한 속도 싸움인만큼 타사와의 전략적 제휴 또는 경쟁을 통해서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도 이들의 일이다. 가령 한 사업에 대해 A사가 매우 유력해 보이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 B, C사가 유찰을 만든다던지 하는 것들도 이들의 공로다. 같은 업무를 보면서도 각자 회사를 대표해 보이지 않는 치열한 두뇌전, 눈치싸움을 펼치고 있다.
▲“로망은 있다”
기술부서와 마찬가지로 PQ팀도 인력난에 대한 고민은 같다. 대부분 문과를 졸업한 이들로 구성된 PQ팀은 입사 후 어떠한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PQ팀은 업무부/관리부 가운데서도 업무 강도가 가장 쎈 만큼 이탈자가 상당해 인력관리가 중요하다.
일반 직장인들이 3년-6년-9년마다 겪는다는 이직 또는 퇴사의 고민이 이 바닥에도 있다. 사원→대리 사이에서 상당한 이탈자가 발생하고 있다. 상당수가 다른일을 찾지만 이직도 잦은 편이다. 특히 기술부서 안에 PQ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대형사들이다보니 돈도 더 많이 받으면서 일은 상대적으로 적으니 인기가 좋다. 중견사 PQ팀은 이래저래 외부환경이 불리하다.
제대로 실적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도 인력채용에 애를 먹는 이유다. 기술부서는 한 해 성과에 대해 정량평가가 가능하지만 PQ팀은 드러나는 성과가 없어 측정이 어렵다. 대개 성과급 시즌에는 중간 수준에서 위아래를 오가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 이래저래 튀는걸 좋아하고 내 성과에 대해서 제대로 인정받기 원하는 요즘 세대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모든 PQ팀이 그저 묵묵히 일하는 것은 아니다. 전관을 데려와 큰목소리를 내는 회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전면에 나서지 않고 기술부서를 서포트하면서 밖에서는 회사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한 해 실적을 보고 있자면 내가 어느정도 일조한 것 같다는 생각에 보람이 있다. 내 일을 하면서도 기술부서와 합을 맞춰 잘 갈 수 있도록 컨트롤해 나가는 역할에 자부심을 느낀다” 취재를 하며 만난 PQ팀 한 직원의 말에서 요즘 찾아보기 힘들었던 열정과 로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