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엔지니어링사를 가다②] ‘억대 연봉’뉴요커 엔지니어의 워라밸
(엔지니어링데일리) 정원기 기자=미국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의 모습은 어떨까. 자유로운 근무 환경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과 개인의 삶이 균형을 이루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나라답게 개인의 자유는 철저히 보장하면서도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엄격하다. 재택근무로 출퇴근 시간이 줄었지만 도리어 근무시간 이후에 초과근무를 하기도 한다.
뉴욕 한복판에 있는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 STV에 최근 건화는 업무협력차 방문했다. MOU를 계기로 기술 공유, 파견 근무에 나선 것이다. 본보는 건화와 함께 뉴요커 기술자의 연봉과 업무 환경 등 워라밸을 들여다봤다.
▲전문직과 임금 나란히…신입 1억2,000만원
알려진 대로 미국에서 토목 엔지니어는 변호사, 의사 등과 같은 전문직으로 인식된다. 별도의 자격을 취득하지는 않지만 공학 기술, 전문 지식, 경력을 갖춘 엔지니어는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한다.
가장 궁금한 것은 연봉이다. 말로만 전문직으로 대우하고 실질적인 혜택이 없다면 허울 좋은 하눌타리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봉급 시스템은 한국의 월급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직원은 2주치 급여를 정기적으로 수령한다. 시급을 기준으로 연봉을 책정했을 때 학사 학위를 갖춘 신입 엔지니어의 평균 연봉은 약 8,200만원~1억2,000만원이다.
지역·분야별로 20~30% 정도의 급여 차이가 있지만 엔지니어의 임금은 미국 노동자의 평균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25~34세의 중위 소득은 7,000만원 수준으로 많게는 5,000만원 이상 차이 났다.
담당 업무가 많아질수록 연봉은 더욱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경력이 쌓일수록 업무가 많아지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의 연공서열제와 유사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는 평균 1억2,000만원~2억원까지 받는다. 팀 리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보통 5~10년 경력의 엔지니어가 주로 맡는다.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수석 엔지니어의 평균 연봉은 2억3,000만원~3억4,000만원, 전체 부서를 관리하는 관리직 엔지니어는 평균 3억4,000만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변호사, 의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미국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변호사의 평균 연봉은 1억9,000만원, 치과의사는 2억3,000만원, 건강 전문 대학교수는 1억7,000만원으로 나타났다.
물가 등을 생각했을 때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한국 엔지니어와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건설 중급기술자의 지난해 하루 평균 임금은 27만2,915원으로 중급기술인의 임금을 단순 계산했을 때 연봉은 6,700만원 수준이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주요 엔지니어링사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기준 6,000만원~7,000만원대다. 물론 평균 연봉이기 때문에 신입사원의 경우 더 낮다. 최근 엔지니어에 대한 임금인상이 상당히 이뤄졌지만 글로벌 엔지니어링 업계와의 임금 격차는 여전히 크다.
▲디지털 혁신이 바꾼 업무 환경
미국 직장에서는 출퇴근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디지털화와 재택근무가 활성화됐다.
STV는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유연근무를 하는 직원은 주당 40시간을 일했다는 것을 타임시트에 기록하기만 하면 된다. 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출퇴근을 하든 업무량이 많을 때 집중적으로 하든 크게 상관없는 셈이다.
뉴욕은 미국 내에서도 교통체증으로 악명이 높다. 차가 막히면 돈을 더 내는 혼잡통행료 시행을 준비 중이다. 출근길 지옥철과 교통체증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니 직원들의 만족도는 당연하게도 높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은 에너지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 엔지니어는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3D 설계 및 도면 작업을 할 수 있어서 꼭 사무실에 출근할 필요는 없다.
현장 역시 디지털화가 대세다. CM 사업의 경우 미국에서는 원격회의를 통해 현장 상황을 함께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게 일반적이다.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충분히 현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면 굳이 현장에 갈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발주처에서도 비용을 이유로 원격회의를 더 추구한다. 현장에 감리 인원을 부를 경우 그에 따른 청구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발주처의 요청에 따른 출장이나 추가 검토 작업을 지시할 경우 지불해야할 금액이 커지는 셈이다.
반면 국내의 경우에는 AS라는 명목으로 무급으로 이뤄지는 업무가 많다. 추가 검토와 설계 등 엔지니어링사의 출장이 잦은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현장 상주감리와 비상주감리로 나뉘어 있는데 직접 공사 현장에 모여서 함께 보면서 회의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재택근무의 그림자
재택근무나 원격근무에 대한 가장 큰 애로사항은 성과 저하다. 재택근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전산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업무 상황을 체크하고 팀원과의 소통 및 협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당장 STV만 봐도 원격 근무 인프라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 원격 작업을 위해 직원에게 개인용 노트북 지급은 물론 업무용 아이폰과 전용 보안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제공했다. 직원 수가 3,000명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투자다.
재택근무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직원의 출퇴근 시간은 줄지만 집중 근무를 유발하기도 한다. 재택근무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자료 공유-온라인 팀미팅 및 회의-업무 재분배 순으로 이뤄지는데 모든 과정이 전산에 기록된다.
각자의 타임시트에는 담당 프로젝트와 수행 기간, 소요 시간 등이 숫자로 계량화되어 관리된다. 온라인 회의가 끝난 뒤 집중근무를 펼치는 배경이다.
미국에서 전산 기록은 단순한 업무일지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직원의 근무 성과를 평가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각자에게 배분된 업무가 끝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이나 처리한 결과물이 전산에 그대로 남겨진다. 한마디로 허튼짓을 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타임시트는 향후 발주처에 제출하는 청구서 증빙서류로 활용된다. 안전성 평가, 기술지도, 도면 작업 등 업무량을 파악할 수 있어 기업에서는 타임시트를 중요하게 관리하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