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준공기념비에 엔지니어가 없는 이유

2025-07-15     정장희 기자

건설산업기본법 42조2항은 “건설사업자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건설공사를 완공하면 그 공사의 발주자, 설계자, 감리자와 시공한 건설사업자의 상호 및 대표자의 성명 등을 적은 표지판을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사람들이 보기 쉬운 곳에 영구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준공기념비에는 엔지니어, 특히 설계엔지니어를 제대로 기념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가장 고압적인 사례는 한국도로공사 서해안고속도로 준공석으로 오직 한국도로공사 직원들만 존재했다. 가장 윗단에는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있고, 그 뒤로 전사장, 본부장, 부장, 과장, 현장감독까지 깨알같이 새겨 넣었다. 엔지니어링사나 시공사의 회사명, 엔지니어 성명은 전혀 없었다. 다만 국내 기술 장견간사장교라는 특성 때문인지 서해대교 준공석에는 엔지니어링사명은 없었지만 감리, 시공, 설계순으로 엔지니어 이름은 명기했다.

국제컨설팅엔지니어링연맹, 즉 FIDIC 리워드에서 각각 설계부문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수상한 천사대교와 보령해저터널 준공기념비에도 엔지어링사와 설계엔지니어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발주처도 아닌 신안군수와 부군수, 건설과장의 이름이 최상단에 명기돼 있었고 이후 익산청, 감리업체, 건설업체의 순이었다. 천사대교는 외려 본구조물이 아닌 기념비를 디자인한 건축사의 성명과 조형물의 의미를 담은 철판이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면 2020년 대한토목학회가 설치한 ‘올해의 구조물’ 동판이 배치돼 있는데 이곳에는 설계사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이 동판은 발주처가 법에 따라 만든 공식기념판이 아닌 대한토목학회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비공식기념판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설계엔지니어의 이름은 쏙 빠져있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준공된지 30년 가까이돼 ‘그럴수도 있겠다’ 싶지만 천사대교와 보령해저터널은 최근의 일로 발주처의 설계사와 설계엔지니어 하대는 여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계엔지니어가 가장 모범적으로 명기된 사례는 농림부 사업인 새만금방조제다. 이 프로젝트 기념석에는 기본조사, 예비타당성검토, 기본및실시설계까지 엔지니어링의 단계를 세분화해 모든 엔지니어의 성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명기했다. 드디어 엔지니어링의 가치를 아는 발주처를 발견했나 싶었지만 사실 이는 함정에 불과했다. 설계를 엔지니어링사에게 발주하는 국토부와 다르게 농림부 사업은 한국농어촌공사가 설계와 감리를 모두 총괄하기 때문에 한국도로공사 직원들을 챙겨 주듯 기념석에 정확히 새겨준 것이다. 

국내최대 경간장 이순신대교를 비롯해 최근 준공된 팔영대교, 노량대교에는 엔지니어링사가 명시됐지만 설계엔지니어는 없었다. 다만 한국수자원공사가 추진했던 4대강사업 달성보는 설계사, 시공사 그리고 설계엔지니어, 시공참여자까지 정확히 명기했다. 보기 드문 우수사례다. 준공기념비가 아닌 교량에 설치된 준공표지석의 경우 엔지니어링사와 설계자가 상당 수 명기돼 있다. 하지만 이는 교량붕괴나 하자시 책임자를 찾기 위한 표시일뿐 시설물 완공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석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의 발주처들은 왜 이렇게 엔지니어링사와 설계엔지니어를 배제할까.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엔지니어링사를 용역 또는 하도업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양반 사대부가 중인, 평민과 겸상하지 않듯이 고귀한 발주처가 하도업체와 같은 위치에서 기념되기 싫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왜 감리 즉 건설사업관리는 회사명은 몰라도 성명은 웬만하면 명기 해줄까. 설계의 경우 어차피 외주사업이라 사실상 모르는 사람에 가깝지만 건설사업관리는 현장을 뒹굴고 합숙하며 같이 밥을 먹은 식구였으니 챙겨주는 것이다.    

해외는 어떨까. 선진국, 개도국을 막론하고 설계자가 발주처, 시공사를 제치고 기념석의 최상단에 위치해 있다. 뿐만 아니라 주요 프로젝트는 설계자가 프로젝트의 컨셉과 상징성, 그리고 기술적 난이도에 대해 설명하고 때에 따라 엔지니어의 동상까지 마련해주고 있다. 개도국은 아무리 발주처 고위직이라도 스스로를 엔지니어로 자처할 정도로 엔지니어의 위상이 높기 때문에 기념석의 위치 따위는 이미 최상단이다.

건설산업법 42조2항 시행규칙은 1.공사명 2.공사기간 3.발주자의 성명 4.설계자의 성명(법인의 경우 상호 및 대표자의 성명) 5.감리자의 성명 6.시공자의 상호 및 대표자의 성명 7.현장에 배치된 건설기술자의 성명 및 기술자격종목을 기념비에 명시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향후 완공될 시설물은 최소한 법대로 기념석에 명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아가 4항은 뒤에 붙는 꼬리표는 떼고 ‘설계자의 성명과 상호’로 변경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사업책임자, 분야별책임자, 참여기술자뿐만 아니라 타당성검토, 기본설계, 실시설계를 분리해 표기해야 한다. 또 시설물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설명문을 설계PM이 작성, 기념비 맨 앞에 배치함으로써 엔지니어링과 엔지니어의 가치를 높여야 할 것이다.

정장희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