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무풍지대 도시철도사업… 지자체, 돈 안주고 합사 강요
단일공구사업까지 합사 강요… “인터넷, KTX시대 합사 불필요”
최소 10% 적자… 철도시설공단, 업계비판 수렴해 사실상 합사 폐지
(엔지니어링데일리) 이준희 기자 = “합동사무소를 설치하라”는 도시철도사업 발주자 지방자치단체의 갑질로 엔지니어링업계가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26일 엔지니어링업계에 따르면 2012년 이후 한국철도시설공단 사업의 합동사무소가 없어진 것과 달리, 서울시 부산교통공사 등 지방자치단체 도시철도사업에는 여전히 합사 관행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엔지니어링업계는 3년 전 “철도 등 인프라사업 수행과정에서 합사 설치․유지비용에 계약금의 10%이상이 지출되고 있다”며, “과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함에도 사무실은 그대로 유지해야하다 보니 적자규모가 눈덩이처럼 늘어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업계는 “IT 발전으로 시공간적 한계 극복이 가능한 근무 환경이 조성됐음에도 본사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을 타지에서 수행해야 한다”며, “서울, 인천, 경기 등은 차량이동이 가능하고,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은 KTX가 있어 언제든지 미팅이 가능한데도 합사를 강요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고 성토한 바 있다.
▼ 지자체, 단일공구사업까지 합사 강요… 업계, 해외진출 의지 꺾여
그 직후 국교부가 지침을 내려 합사를 중단한 철도시설공단과 달리, 국토부 관할이 아닌 지자체는 여전히 과업지시서에 “합동사무소를 운영하라”고 명기하고 있어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 대구시, 광주시, 대전시, 부산교통공사 등은 합사 요구만하지 비용부담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국내와 달리 글로벌 입찰시장에서는 입찰자가 사업제안서에 합사비용을 반영하고 모든 금액을 발주처가 지불한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수익을 내야 이를 토대로 경쟁력을 키워 해외진출의 발판을 만드는 선순환이 이뤄지는데, 지자체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도 뒤를 이었다.
B사 관계자는 “지자체가 업계를 쥐어짜 예산도 아끼고 가까운 곳에서 이것저것 시켜가며 일까지 편하게 하려는 처사”라며, “이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할 의욕을 꺾고 업계 호주머니를 털어 산업 자체를 고사시킬 수 있는 불공정거래다”고 질타했다.
특히, 본사에서는 복수의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어 상황변화에 따라 탄력적인 업무조정이 가능한 반면, 합사에서는 해당과업 외 업무가 사실상 불가능한 근본적 구조가 도마 위에 올랐다.
C사 관계자는 “본사에서는 엔지니어 1명이 프로젝트 1건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동시에 3~4건을 병행한다”라며, “합사를 나가게 되면 실제 다른 업무를 못해 엄청난 적자가 발생하는데 지자체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내 메트로사업의 합사는 보통 1~2년 길게는 3년 운영된다. 긴 기간 동안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지연돼도 업계는 합사를 거부할 수 없으며, 지자체는 단순 공사에도 합사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 발주물량 급감으로 수주 한 건이 아쉬워 거부권이 없는 업계에 휘두르는 갑의 횡포라는 지적이다.
D사 관계자는 “지자체가 과거 과업지시서를 근거로 삼다 보니 아직까지 불합리한 관행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라며, “편의시설 추가공사, 단일공구사업에서 조차도 합사를 요구하는데 하겠다는 업체 많으니 싫으면 애초부터 빠지라는 식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합사 문화는 과거 공구별로 나뉘어 발주되는 도로나 철도사업의 연속성을 살리기 위해 탄생됐다. 그러나 국토부 산하 도로공사, 철도시설공단은 ‘발주처의 갑질논란’, ‘업계 근무환경 개선’ 등 시대 변화에 따라 합사를 사실상 철폐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