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스마트라 쓰고 껍데기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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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스마트라 쓰고 껍데기라 부른다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0.09.22 11:0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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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웰빙. 한시대를 풍미한 단어다. 일단 이 말이 붙으면 시시콜콜한 얘기들도 뭔가 있어보이던 시대가 있었다. 요즘에는 포스트코로나라는 단어가 시대적 관통어다. 너도나도 포스트코로나라고 하면 일단 내용은 차치하고 관심을 끄는데는 성공이다.

미지의 영역, 낯선것들의 조합은 신선함을 가져다준다. 극단의 것에서 공통된 분모를 찾아 기획하는 일은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희열을 느끼게 한다.

과유불급이라고 설득력 없는 조합은 무리수다. 지나친 결합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고 최악의 경우 반발감을 산다. 인터넷에 떠도는 과도하게 엮은 기사들을 향해 대중은 ‘기레기’라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얼마전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과 코로나19 위기라는 포럼을 열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을지 의문이다.

스마트라는 단어가 그렇다. 온갖 것에 스마트를 가져다 쓴다. 실제 스마트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일단 AI라는 개념이 나올꺼고, 세련되고, 깔끔하고 그렇다. 이렇게밖에 설명되지 않는 것은 단어의 성격이 광범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많은 곳에 스마트가 접목되는 요즘, 유난히 얘기가 많이 나오는 분야가 건설엔지니어링분야다. 트렌드에 맞게 산업화시대의 전통적 토목이 아닌 4차산업혁명, 스마트가 대세다. 투박해보이는 건설분야와 심플한 스마트의 접목은 극단에 있는 것들의 이상적 조합이다.

기대를 모았지만 실상은 빈 껍데기인게 많다. 정부의 그린뉴딜 안에도 다양한 스마트형 산업들이 있지만 정작 건설엔지니어링업계는 할 일이 없다. 단순화시켜보면 그냥 기존의 인프라에 ITS, 빅데이터 접목한게 스마트의 실체다. 예방, 관리감독의 ITS와 전통 SOC.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논쟁으로 보이지만 결국에는 탄탄한 토목 SOC가 근간이 되지 않으면 있으나마나다.

해외수출상품에는 국토부의 한국형 스마트시티 K-City가 있다. 한국형 스마트시티 조성을 원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F/S, 마스터플랜을 컨설팅 해주는 사업이다. 한국형, 스마트 두 개의 거창한 단어가 있지만 파급력은 물음표다. 신도시 사업의 설계 포인트가 인프라 커넥션인데 세계 10위 선진국인 대한민국의 기술을 이들 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너무 후진국들이라 대부분 국내 기술 가운데 70~80%가 무용지물이라는 후문이다.

제도 분야에는 ‘비전문가’ 국회의원 14명이 발의한 스마트 건설특별법이 있었다. 요점만 말하면 단순시공만 하는 건설사가 ‘진짜베기’ 전문가인 엔지니어를 고용하면 시공외에도 엔지니어링 시장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규모가 작아도 업면허가 있고, 엔산법이 있는 엄연한 전문시장 생태계를 완전 무시하고 덩치로 밀어붙이는 걸 허가하겠단거다.

발의안은 철회됐지만 국내 건설업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청사진이 결국에는 거대 시공사에 의한 엔지니어링분야 흡수라는 가능성을 보여준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지금이야 스마트라는 단어였지만 이후에 또 어떤 단어가 접목돼 업계를 집어삼키려할지 알 수 없다.

국내 건설업계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십분 이해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어가, 규모가 아니다. 기술자들이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환경을 안정시켜주는게, 겹겹이 규제를 풀어주는게 최고다. 용역업자를 엔지니어링사업자로만 바꿔도 국내 건설엔지니어링 경쟁력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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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2 15:29:36
‘비전문가’ 국개의원 ^^,
스마트 뜻은 고사하고 영어 단어 쓸 줄은 알까요?
기술 우대한다면서 모든 공문서는 아직도 용역(단순노무)이라고 천대합니다.
"기술자"가 천해 보인다고 "기술인"으로 바꿔줬네요. ㅠㅠ

2020-09-23 09:30:44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시대로 넘어가는 정도의 혁신은 되어야 '스마트'란 단어를 쓰기에 적합하죠.
지금은 개나 소나 '스마트'를 남발하니, 오히려 이미지에 역효과입니다.
마치 '한국형'처럼 말이죠. 이젠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단어.

전세계적으로 STEM을 우대하며 기술인들을 확보하려는 전쟁이지만,
현 정부와 현 국회는 무지해서 그런 건지 다른 속셈이 있는 건지
엔지니어링 생태계를 파괴하는 데에 꾸준히 힘과 노력을 집중하고 있네요.

돈을 벌어본 적도, 세금을 내본 적도 없는 인간들이 법을 만들고 정책을 집행하는게 문제의 핵심이죠.

아리송 2020-09-28 09:25:33
단순시공만 하는 건설사가 "진짜베기" 전문가인 엔지니어를 고용하면 엔지니어링 시장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게 뭐가 이상하지?

진짜베기가 회사가 아니라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가능한거 아닌가?

미국, 유럽과 같이 설계, 시공, 감리가 일원화된 국가는 후진국이구나.
JACOBS, AECOM, WOOD, WSP, WORLEY, ARCADIS는 껍데기 회사들이다~!
근데 왜 시공에서 설계 진출 못하는 우리나라는 껍데기만도 못한거지?

아마 설계, 시공 일원화되면 설계전문가들의 연봉은 1.5배 가까이 뛸껄?

제도분야에는 "비전문가"인 국회의원보다 기레기가 "전문가"인가? 혹시 기레기들은 엔지니어링업체에서 일 하나 주관해서 일도해보고 발주처하고 업무 조율도 많이 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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