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아이언맨도 질려버릴 한국의 안전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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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아이언맨도 질려버릴 한국의 안전규제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0.12.0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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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일 기자
조항일 기자

2016년 개봉한 캡틴아메리카:시빌워는 시리즈 중 유일하게 히어로, 일명 어벤저스팀원들끼리 전투를 한다. 지구를 구한 어벤저스들이 되려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대중의 비난에 미 정부와 UN이 ‘슈퍼히어로 등록제’를 통해 이들을 관리하겠다고 하면서 팀내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다.

찬성파는 아이언맨, 반대파는 캡틴아메리카를 주축으로 영웅들이 서로 편을 갈라 2시간 넘게 싸워댄다. 물에 빠진놈 건져놓으니 봇짐 내놓으라는 속담을 알리 없는 영화 속 사람들이지만 설정이라도 심보가 참 고약하다.

슈퍼히어로 등록제와 관련한 세부내용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조목조목 규제가 없어서 그랬는지 자유분방한 캐릭터인 아이언맨이 찬성파라는게 의아하다. 어찌됐던 슈퍼히어로 등록제가 한국의 건설안전 규제처럼 겹겹이 둘러쌓여 있었다면 아이언맨도 이건 아니다 싶어하지 않았을까.

올 초 건설업계를 떠들썩하게한 합산벌점은 내년 1월 1일부터 개정된 벌점누적을 시행하고 불이익 적용은 오는 2023년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시공사야 경감인센티브로 일찌감치 방파제를 세웠지만 엔지니어링사들은 끝끝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법이 우선인데 당장 한달뒤면 새로운 벌점계산이 적용되니 업체들은 부랴부랴 인력을 쪼개 리스크관리팀을 만들며 대비하고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건설안전특별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제·개정 법안들이 즐비하다. 특히 건설안전특별법의 경우 건산법, 건진법, 건축법 등 개별법령들에서 규정하고 있는 안전관련 규정들만 따로 모은 끝판왕이다.

벌칙도 어마무시하다.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해 사망자가 나오면 최대 7년이하의 징역,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건설현장의 위반행위는 대부분 과실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고의적 강력범죄 못지 않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재해시 현장관리자만 처벌받는 현행법에서 사업주와 법인까지 벌을 준다. 사고나면 1억~20억원의 벌금에 영업정지까지 더해지는 양벌규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제개정안은 업계의 의견수렴 진행중으로 향후 어떻게 풀어질지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결국에는 건설관련업체들의 분위기는 소극적이고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국가 경제를 먹여살린다는 자부심보다 사고한번 나면 그들의 가족까지 하루아침에 죄인으로 낙인찍혀버릴 위기에 놓여있다.

단지 국가가 계획한 일들에 을-乙질을 마다하지 않으며 일했던 그들은 정권의 심판대에 올려지며 토건적폐라는 손가락질에도 묵묵히 일해왔다. 그렇게 욕하던 자들이 이제와서는 코로나로 경제살려야한다며 언제그랬냐는 듯 건설엔지니어링업계에 SOS를 치고 있는데 영화도 이따위 개연성이면 욕먹는다.

안전사고는 일어나서는 안된다. 하지만 완벽하게 모두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공사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안타깝지만 그 많은 전국 현장을 생각하면 교통사고 같은 것이다. 정확히 교통사고 사망자보다도 그 수가 적다. 인간의 목숨이 숫자놀음이냐는 철학적 비난을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건 현실문제다.

가만히 앉아 법령에 따라 벌 주는 것은 글만 읽어도 할 수 있다. 진짜 어려운 것은 안전문제를 최소화하면서도 업계의 분위기를 위축시키지 않는 밸런싱을 잡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일 하는게 원래 정부고 국회의원이다. 안전이라는 이름의 목줄로 갑질하라고 앉혀준 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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