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의 나라 독일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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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의 나라 독일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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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1.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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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민형 건설정책연구실장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찬바람이 시작되던 작년 11월초 혼자 떠난 독일 출장은 내게 여러 가지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럽발 경제위기 속에서 EU를 선도하고 서유럽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는 독일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궁금해 하던 차에 독일의 건설 엔지니어 현황과 관리체계를 파악하고자 짧게나마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유럽 출장은 2003년 이후 처음이고, 특히나 독일은 초행길이라 걱정 반 설렘 반으로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올랐다.

소프트 인프라의 경쟁력

다소 의외지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받은 첫 인상은 안내 표식이었다. 자칫 복잡 할만도 한 터미널 간의 이동이 방향을 알려주는 체계적인 안내 표식으로 별 어려움 없이 가능해 초행길에서 오는 걱정을 한순간에 불식시킬 수 있었다. 독일에 있는 열흘 동안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곳곳마다 이러한 인상은 더욱 깊게 다가왔다. 실제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 짓는 '잘 정비된 인프라'란 고속도로가 얼마나 잘 닦였는가, 공항이나 항만이 얼마나 대규모이고 많은가 라는 것도 있지만, 더 나아가 생활 속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이러한 시스템들-소프트웨어(Software)-의 수준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 독일의 지하철
천천히 그러나 철저하게

토요일 늦은 밤에 베를린에 도착한 탓에 본격적인 출장 일정을 소화하기에 앞서 베를린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가져간 여행 책자를 보니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카이저 빌헤름 성당이 있는 것 같아 찾아 나섰다. 독일의 겨울은 한국보다 조금 빨라 기온은 이미 0도 안팎으로 떨어져 있었고, 맑은 날보다는 흐린 날이 많았다. 이미 소박하고 두툼한 겨울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거리 곳곳에 관광객들이 있었지만, 베를린 시내는 서울보다는 한결 한가로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처럼 마침 카이저 빌헤름 성당은 대대적인 복구공사를 하는 중이어서 사진 속에서와 같은 멋진 외관은 볼 수 없었고, 내부 일부만을 공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복구공사가 약 20년의 기간 동안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규모도 규모겠지만, 최대한 기존의 상태를 보존하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 쾰른 대성당
쾰른 역에 잠시 내려 둘러본 쾰른 대성당도 수십 년간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니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의 복원이 단 몇 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과 비교되면서 문화재를 대하는 그들의 접근방식과 독일인들의 철저함이 느껴졌다.

인재 양성에는 시간 필요

스산한 날씨와 달리 베를린 거리 곳곳에는 부산하게 돌아가는 공사 현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방문했던 연방엔지니어회의소(Bundesingenieurkammer)에서 얘기를 들으니 현재 독일은 건축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1990년 10월 통독이후 1996년까지 독일은 낙후된 동독 지역의 인프라 재건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였다. 그러나 이후 심각한 재정 적자에 부딪힌 독일 정부는 SOC에 대한 재정 투자를 급감시켰다. 이에 따라 2005년까지 독일 건설업의 매출은 급감하고 고용도 큰 폭으로 줄어드는 위기의 시기에 당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2006년부터 다시 서서히 건축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매출과 고용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독일로 출발할 당시 유럽 금융위기로 유럽 국가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나쁠 것이라는 예상에서 독일만큼은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

독일엔지니어협회(VDI)와 연방엔지니어회의소에 따르면 약 7년째 이어지는 건축 붐에 따라 독일의 건설관련 엔지니어들은 현재 거의 완전 고용에 가까운 고용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독일 연방통계청(Statistisches Bundesamt)의 집계에 의하면 2011년 현재 독일의 전체 엔지니어는 104만 2,000명이며, 그중 건설 관련 엔지니어의 실업률은 2%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civil engineer 1.99%, 건축가 및 공간계획자 2.92%).

물론, 이와 같이 낮은 실업률은 건설 부문의 투자가 증가한 데에도 그 이유가 있지만, 독일의 건설산업이 위축되었던 지난 9년간(1997~2005년) 건설업에 종사하던 많은 인력이 타 산업분야로 이탈된 반면, 건설업에 새로운 인력의 진입이 저조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건설 투자는 쉽게 늘릴 수 있는 반면, 건설 엔지니어는 단기간에 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1990년 이후 지난 20여 년간 건설 물량의 급감에 따른 엔지니어의 과부족 현상들을 겪으면서 인력 수급의 중요성을 인식한 독일은 지난 2011년 건설 인력 시장의 현황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최초의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베를린에서 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몇 가지 생각들이 스쳐갔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제 하드 인프라 보다는 소프트 인프라가 강조되고, 빨리빨리 보다는 과정의 철저함과 세심함이 요구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재의 양성은 단기간 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건설 엔지니어의 초과 공급을 걱정하는 지금 우수한 건설 엔지니어의 지속적인 양성도 같이 걱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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