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김철수 대리를 엔지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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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김철수 대리를 엔지니어로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1.12.22 15:5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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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일 기자
조항일 기자

언론사에 입사하면 사원이나 대리는 없다. 그냥 기자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10여년정도 경력을 쌓으면 그때가서 차장으로 첫 직급을 단다. 과장은 없다. 여기서 5~10년 정도 더 일하면 부장, 부국장, 국장 등으로 불린다.

이 바닥에 사원, 대리가 없는 이유는 사실상 회사나 직급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차장이든 부장이든, 하물며 국장이든 이 모든건 회사에서의 직급일뿐 외부로 나가면 기자다. 1년차던 3년차던, 20년차가 됐던 기자는 직장이 아닌 직업이라는 공통된 유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에게 있어 회사의 명분은 월급이 전부다.

삼성이 내년부터 인사제도를 개편한다. 핵심 내용은 동료평가제와 직급 간소화, 승진연한 폐지 등이다. 이미 SK는 매니저로 LG는 선임으로, 대형 증권사에서는 프로 등으로 직급을 간소화하거나 수평화한지 오래다. 현대기아차에서도 기술직 직원들을 엔지니어나 연구원 등으로 부른다.

요즘 직급파괴가 대세다.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인지 MZ세대발 개혁의 바람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추세에 반대한다. 회사나 조직은 엄연히 그 연차에 따라 대우받고 대우해주고 하는게 이치에 맞다고 본다. 다만 전문직은 예외다. 의사나 변호사도 조직 내의 직급은 있을지언정 사회에선 모두가 똑같은 김닥터고 김변이다.

건설기술용역이 엔지니어링으로 바뀐지 반년이 넘었다. 하지만 정부 발주사업에서는 여전히 엔지니어링보다 용역을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이 발주처의 고압적 태도 때문이라고 불평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보면 발주처는 원래 그래왔다. 법이나 문화가 바뀌어도 애시당초 원래 그들은 자기생존권이 걸린게 아니면 무심하다. 발주처가 엔지니어링으로 안불러주는건 단지 일관성있게 자기일을 한 것이다.

오히려 용어 문제는 엔지니어링업계의 책임이 더 크다. 전 산업계가 직급파괴나 간소화로 일관할 때 엔지니어링업계는 변화에 무심했다. 명백히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스페셜리스트 집단인데다 엔지니어, 기술자라는 좋은 단어가 있는데도 일반 사무직처럼 사원, 대리, 과장, 차장으로 불러왔다. 임원도 마찬가지다. 기술사를 딴 사람에게도 그 자체로 부르거나 소개하기 보다는 회사 직급이 먼저다.

법이 바뀐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내부적으로 변화를 시도한 회사가 단 한곳도 없었다. 발주처 직원의 비위를 맞추려 급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우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를 엔지니어라는 주체적 존재보다는 심부름이나 하는 하청업체 용역업자로 소개하는게 익숙해진 탓이다.

업계가 겪는 인력난을 위해서도 업계 내부적으로 엔지니어라는 이름의 통일은 필요하다. 스스로 자부심을 높여야만 밖에서도 함부로 보지 못한다. 엔지니어들을 만나보면 돈과 상관 없이 지식과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물론 경력과 실력을 바탕으로 더욱 큰 회사로 옮기기 위한 포장인 경우도 있지만 그 내면에는 엔지니어로서 직업 의식이 높다. 이러한 경향은 젊은 엔지니어일수록 더 강하다.

원래 이름을 바꾸면 나부터가 많이 쓰고 알려야 한다. 그래야 애착도 생기고 일할맛도 나는 것이다. 김철수 대리가 아닌 김철수 엔지니어로 불리는 문화가 확산된다면 용역업자라는 말은 생각보다 빨리 없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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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호 2022-01-14 13:00:39
동의 합니다. 인식개선이 많이 필요하죠

띵언제조기 2021-12-29 17:10:13
항일이형을 국회로~!

개미 2021-12-24 17:24:29
캬 띵언~

사원 2021-12-23 09:10:02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기사입니다. 항상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민현 2021-12-23 08:07:50
항상 좋은 기산 생각하게하는 기사 고맙습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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