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볼티모어가 한국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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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볼티모어가 한국이었다면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4.04.0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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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일 기자
조항일 기자

얼마전 미국 볼티모어에서 무너졌던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릿지는 1972년 착공돼 5년뒤인 77년에 개통된 다리로 착공연도 기준으로는 반세기가 지났지만 구조적 문제는 전혀 없던 교량이다. 다만 이번 붕괴는 기술적 결함으로 제어가 불가능해진 선박이 교량의 충돌방지공을 비껴 부딪치면서 발생한 운이 없던 사고다. 충돌방지공은 선박의 고장이나 표류, 안개로 인한 항로이탈 등 다양한 상황을 대비해 교량의 주탑기초와 주변부에 설치한다.

이번 사고의 공식적인 사망자는 교량 보수 기술자 6명으로 이들은 모두 중남미 출신 사람들이었다. 미국인 사망자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고 발생지인 볼티모어 메릴랜드 주는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에 빠지기 보다는 즉각적인 손해배상 청구 절차를 밟고 있다. 볼티모어 항구는 자동차와 철광석, 석탄, 전자제품 등 다양한 물건들을 수출입하는 미국 내 초대형 거대 항구 중 하나로 보험금이 천문학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볼티모어를 한국의 지자체였다고 가정해보자. 일단 단독, 속보에 목말라 있는 언론들에 의해 “볼티모어 교량, 설치된지 50년 …노후화 우려 심각”, “볼티모어 교량, 부실설계 의혹”과 같은 선동적인 제목들의 기사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를 모니터링하는 정부는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리고 교량의 시공, 설계감리사를 찾아낸 뒤 80~90% 확률로 적폐, 토건 카르텔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할 것이다.

때마침 총선, 대선이라도 껴있다면 명확한 사실관계보다는 한표를 얻기 위한 절대악으로 건설엔지니어링사를 몰아가기 시작한다. 기술적 결함이 없는데도 죄인처럼 손가락질 받을 엔지니어들은 이를 소명하기 위한 검찰조사와 변호에 시간과 비용을 쏟아야 한다. 어찌저찌 무죄로 빠져나와도 기다리고 있는 건 볼티모어교량붕괴특별법과 같은 안전과 관련된 무수한 규제와 처벌이 엔지니어링사를 압박하고 감시할 게 뻔하다.

사고에 대한 조사와 결과를 통해 사각지대를 예방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동시에 산업을 육성하고 활성화하는 것 역시 그들의 사명이다. 당사자인 미국에서도 이번 사고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겠지만 교량 붕괴로 시공사나 설계감리자가 구속수사중이라는 얘기는 없다. 더욱이 우리처럼 특별법이 만들어질리도 만무하다. 냉정하게 교량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저 사고로 무너진게 당연한 사실이라서다.

정부가 만든 국내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의 환경은 글로벌고부가가치로 나아가기보다는 퇴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엔지니어링산업에 대한 진정성있는 이해보다는 규제와 처벌이라는 값싼 정책으로 일관할 뿐이다. 시스템은 그대론데 처벌강도만 높아지니 산업은 발주청에 종속되고 그저 공무원들의 용돈벌이 도구로 전락했다. 과연 한국에서 미국처럼 비슷한 사고가 났다면 엔지니어링사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태를 바라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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