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 용역(用役)과 엔지니어링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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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 용역(用役)과 엔지니어링 사이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3.04.2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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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부에 의해 용역(用役)이란 말이 엔지니어링으로 개선된지도 22년이 지났다. 개정의 이유는 단순히 몸을 써 발주자를 대행한다는 뜻의 용역보다, 융복합화와 고부가가치를 상징하고 세계적 추세에도 부합될 수 있는 엔지니어링이란 말이 적합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2013년 현재도 용역은 여전히 전부처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사업명만 봐도 ○○시 개발사업 실시설계용역, ××권역 환경평가용역 등으로 발주되고 있고, 엔지니어와 엔지니어링사는 '용역업자'로 통칭되고 있다. 게다가 설계CM감리를 통합한다는 국토부 산하 협회명에도 용역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오죽하면 발주처에 엔지니어링사에 수여하는 상 이름이 '우수용역업자'일까. 비하할 마음은 없지만, 용역업자라는 말은 청소용역, 심부름센터에 더 잘 어울리는 뜻이다. 업무 그대로 단순히 몸을 움직여 발주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업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엔지니어링은 용역업자란 말로 비하되고 있을까. 주요 요인은 엔지니어링산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 때문이다. 정부가 바라보는 엔지니어링은 토목형 건설산업에서 발주자의 명령에 따라 설계도서를 생산하는 업자에 불과하다. 원래 공무원들이 다 잘할 수 있는데, 번거로워 업자에게 하청을 준다는 개념이 머리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건설사가 주도하는 턴키제도가 십수년전부터 시행되면서 공무원>건설사>엔지니어링사 순의 카스트제도까지 생기게 됐다. 고부가가치를 창조해야 할 엔지니어링이 가장 밑바닥에서 천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용역업자 취급을 받고 있지만, 서류상 엔지니어링은 대단한 고부가가치산업, 지식기반산업으로 추앙받고 있다. 산업부, 국토부 등 엔지니어링산업을 주관하는 부처들은 경쟁적으로 FEED, PMC 등 선진영역을 꺼내들며 엔지니어링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부르짖고 있다.

"생뚱맞은 영단어보다 엔지니어를 용역업자로 바라보는 시각이나 고쳐졌으면 좋겠다." 의식있는 엔지니어들은 FEED 즉 기본계획, 기본설계의 가치를 장당으로 계산하는 현실태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발주권한을 대행해 사업을 총괄하는 PMC라는 것도 현재 공기업이 모든 시장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민간기업이 어떻게 역량을 쌓을 수 있겠냐라고 한탄한다.

정부가 내놓은 엔지니어링산업 발전방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꾸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독본능과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어떠한 부처의 보고서든 벤치마킹하고 싶은 모델로 꼽히는 벡텔, 스칸스카, 베올리나 등 FEED와 PMC가 주 영역인 선진엔지니어링사가 그들의 정부에서 과연 용역업자 취급을 받았는지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엔지니어링이란 말은 로마시대 문명공학-Civil Engineering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즉 문명을 창조하는 지식을 갖춘 개척자란 뜻이다. 선진영역에서는 엔지니어를 Consultant 즉 조언가, 자문위원급으로 대접받고 있는 반면 우리는 용역-Service 정도로 낮추고 있다. 엔지니어링산업 발전방안과 해외진출의 첫 단추는 용역업자라는 말을 엔지니어, 조언자로 전환하는 것부터 일 것이다.

규모의 경제와 관료주의를 벗어나, 엔지니어를 대접해 주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우리의 엔지니어링이 세계에서 뚜렷한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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