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계 사람을 만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제는 저대가다. 과업은 늘었는데 비용은 그대로고 그나마 1%대를 맴도는 영업이익마저 축소될 판국이라는 유장한 항변을 매번 듣는다. 저대가는 업계의 고름이 됐다.
최근 대법원이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면서 업계의 급여체계 개편도 불가피해졌다. 저대가 구조가 정착된 상황에서 비용 유출을 틀어막고 있는 와중에 다른 곳에 구멍이 뚫린 꼴이었다. 고름에 십수년간 딱지가 붙지 않으니 업계의 체념과 냉소는 깊어졌다. 이제는 반드시 대가 인상을 관철해야 한다는 분노도 없었다.
대가가 정체된 이유는 발주청이 수주액을 고정시킨 탓도 있지만 공급량이 증가해서다. 즉 엔지니어링사가 우후죽순 늘어났기 때문이다. 업체 수는 지난해 기준 8,765개사로 2022년부터 6%씩 증가하고 있다. 이는 다른 해석의 여지도 남긴다. 업계 모두가 남는 게 없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없는 파이를 먹겠다고 신생 업체가 달라붙는 현상은 그들은 남는 게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업계의 항변과 통계가 일치하지 않는다.
덤벼볼만 하다고 해석하는 사업자의 증가는 규제에서 기인한다. 지역의무 공동도급 비율, 청년 PQ, 사업 중복도 300% 고정 등 입찰부터 낙찰, 사업 수행에까지 법·행정적 규제가 제동을 건다. 중견·대형사가 이를 모두 고려해 사업을 펼치면 적자가 나지만 신생·중소 업체는 상대적으로 신경 쓸 여지가 적다. 지역의무 공동도급 비율처럼 지역 중소사에게 유리한 제도도 있다. 엔지니어링산업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되면서 업장 설립도 어렵지 않으니 단기간 이익 취득이 목적인 사업자도 많다. 동시에 규제의 면면을 보면 행정적 규제가 대다수다. 프로젝트 단위마다 계약적 규제를 늘어놓고 행정서류 처리와 자격관리를 명시한 조항이 대다수다. 이는 기술적 창의성보다 규정 준수와 리스크 관리를 우선하라는 엄포다.
업계는 발주기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이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을 틀어쥐기 위한 의도라며 앓는 소리를 낸다. 나는 다른 이유가 있는것처럼 보인다. 행정·계약의 규제 틀을 타파하는 기술력을 업계가 보여준 적이 없어서다. 업계는 기술로 승부하지 않았다. 전관을 데려와 영업을 뛰고 로비로 사업을 따려는 관성에 스스로 젖은 것은 건설엔지니어링업계다. 황당한 저가 또한 가져가겠다고 들어왔던 것도 업계다. 발주기관이 업계 자체에 기술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그래서다. 그 판단이 누적된 결과가 지금의 건설엔지니어링 시장이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진단이 잘못됐다는 주장은 무의미하다. 이제라도 보여주면 될 일이다. 그리고 분노해야 한다. 규제 일변도 정책과 저대가 구조를 바꾸고 싶어서 업계가 한 것은 그 규율에 순응하거나 탄원서를 쓰는 게 전부였다. 정치와 고리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행동하거나 앓는 목소리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체념과 냉소는 순응의 다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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