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엔지니어링 Paradise 헝가리,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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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엔지니어링 Paradise 헝가리, 현재와 미래
  • 엔지니어링데일리
  • 승인 2012.04.1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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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서유럽을 잇는 가교, 민자도로사업 가능성 충분
한국타이어 진출 뒤 이미지 상승, 엔지니어링사업 타전해볼 만


한낮에 40도를 넘나드는 9월의 부다페스트는 그러나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 때문인지 어둠이 내리자 이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저녁 8시. 부다궁전 아래 Club Donau에서 도나우강의 진주 세치니다리와 함께 황금빛이 도는 필스너를 마셨다.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오고 상당수의 나라를 돌아봤지만, 그때의 풍광과 분위기를 넘어설 완벽의 미(美)는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했다. 분위기에 중독돼 서너잔 맥주를 넘길 무렵 이내 우울해졌다.

음악으로 인한 연속자살 즉 베르테르 효과를 말한 헝가리를 배경으로 베르테르효과를 말한 롤프슈벨 감독의 99년 작 Gloomy Sunday에서 알 수 있듯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비이성적인 아름다움을 가졌다. 비단 세치니, 어부의 요새, 페스트지역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도시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부다페스트는 도시자체가 역사고 자부심이다.

100년 넘은 지하철이 운행중인, 엔지니어링의 나라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움을 이룩하는 밑바탕은 수세기에 걸쳐 추진된 인프라건설에서 비롯된다. 페스트지역을 관통하는 전철 1호선은 헝가리 건국 100주년을 기념해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건설됐다. 1호선의 정식명칭은 당시 황제의 이름을 빌려 ‘페렌츠 요제프((Ferenc József)’로 ‘밀레니엄 언더그라운도 불리기로 한다.

고딕양식의 석조물이 멋스러운 입구를 지나 역내로 들어서면 3량짜리 노란색지하철이 5분 단위로 정차한다. 비록 IT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고, 경전철급이지만, 1896년에 건설됐다는 점을 볼 때 19세기 후반 헝가리의 엔지니어링기술력은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하철 건설 반세기전에 건설된 세체니 다리는 왕궁이 위치한 신도시지역인 부다(Buda)와 국회의사당과 기차역이 있는 구도심 페스트(Pest)를 연결하는 현수교다. 영국의 엔지니어 클라크(William Tierney Clark)와 건축가 애덤 클라크(Adam Clark)가 건설한 세체니는 당시 세계적으로 경이로운 작품으로 인식됐다. 8년 뒤 세체니 다리 북단에 건설된 라크아담 터널은 부다페스트와 비엔나를 일직선으로 연결해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번영의 상징이 됐고, 신도시인 부다 지역의 큰 발전을 가져온다. 건축분야 또한 13세기에 네오바로크 양식의 부다왕궁과 함께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헝가리 국회의사당은 19세기의 건축기법의 절정을 보여준다.

성장동력 잃은 위성국 20세기 헝가리
헝가리가 세계사의 전면에 나선 것은 기원전 1세기 로마제국의 속주 판노니아로 편입되면서부터다. 10세기말 독립한 헝가리왕국은 12세기 칭기스칸의 별동대 바투와 수쿠타이에 의해 수도가 유린당하는 전란을 겪기도 하지만, 15세기까지는 주변왕국과 연합을 맺고 번영을 이룬다.

하지만 곧 중동의 맹주 오스만투르크의 압력을 받게 되고, 모하치전투에서 국왕 러요시2세가 전사하게 된다. 결국 동남부와 중부를 오스만투르크가, 북부를 합스부르크왕가가 분할 점령하게 되면서 헝가리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최전선이되고 국토는 황폐해진다. 이후 오스만세력이 물러났지만 여전히 합스부르크왕가의
점령하에 있다가 후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 거듭나면서 번영을 이룬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으로 나치독일의 침공을 받게 되고, 추축국으로 가담하는 바람에 종전이후에는 소비에트연방의 위성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는 주력산업을 농업에서 중공업으로 전환했다. 1968년에는 경제개혁을 통해 서방과의 무역을 확대하면서 발전을 구가하지만 늘어나는 외채로 80~90년초반까지는 성장동력을 읽고 만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소규모 사기업을 승인, 파산법 시행, 외국인투자규제 완화를 시행해 2004년 EU가입 당시까지 고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EU가입이후 연 1%대의 성장에 머물고 인플레이션도 가중될 뿐만 아니라 빈부격차마저 커지고있다.

2006년만 해도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 한국돈 100만원 내외였다. EU가입 이후 다국적 기업의 투자로 경제규모는 늘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헝가리 국민들의 삶의 질은 크게 높지 못했다. 적어도 소비에트연방의 지배하에 모든 국민들에게 주택-자가용-밭이 무상으로 분배돼 빈부격차로 인한 갈등은 없었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 필요
내륙국인 헝가리는 독일을 제외하고 7,685km의 철도연장을 구축했다. 하지만 노후화된 노선이 많아 헝가리정부는 올해를 기점으로 Debrecen, Miskolc ,Szeged 등 주요도시와 부다페스트를 연결하는 철도망의 현대화작업에 들어간다. 이와함께 남북평야지역 음용수 수질개선과 폐수처리, 도나우강변의 항만개발, 트램 현대화사업 등이다.

유럽의 기본 수송망은 트럭에 의한 도로수송망이다. 하지만 헝가리는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도로조차 왕복 2차로로 건설되어 있을만큼 도로교통망이 열악한 상황이다. 때문에 유럽의 공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터키와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연결하는 대규모 고속도로의 건설이 필요하다.

최근 터키 정부는 수도 앙카라에서 이스탄불, 보스포러스해협을 횡단하는 연장 400km 고속도로와 해저터널 등 건설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물론 막대한 재원이 들어가는 만큼 민자사업의 형태로 진행한다. 이 사업에 우리나라 건설사 및 엔지니어링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를 확대한다면 불가리아, 그리스를 통해 헝가리를 관통하는 민자도로사업의 개발 가능성도 충분하다.

또 하나 대다수의 유럽의 고속도로가 그렇듯 헝가리 또한 휴게시설이 낙후되어 있다. 화장실은 유료로 운영되고, 모텔과 유흥주점이 자리잡고 있어 분위기는 어둡다.

한국의 휴게소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활성화된 모델이다. 특히 최근 한국도로공사가 서울외곽순환에 건설하는 휴게소는 고속도로 위에 자리잡고 있어 토지보상없이 양방향에서 진입이 가능하다.

여기에 명품아울렛, 프랜차이즈음식점이 입점해 있어 BTO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다. 꼭 헝가리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기법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엔지니어링사업자가 민자사업으로 제안이 가능하리라 본다. 유럽의 건설프로젝트는 FI(재무적투자자)가 엔지니어링사에게 사업타당성 및 PM을 발주해 사업에 대한 전반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엔지니어링사는 철저한 사업성 분석과 공정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2007년 한국타이어가 헝가리에 공장을 설치하고 유럽시장 진출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한국타이어의 효과는 헝가리내 고용창출과 세수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당연히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좋다. 일본의 경우 손해보지 않는 투자방식으로 외면되고, 중국은 화교에 의한 도소매업이 활성화되어 있어 헝가리 내수시장을 갉아 먹고 있다. 반면 한국은 공장설립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있어 헝가리 국민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엔지니어링 해외진출은 동남아,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터키 및 북아프리카 등 유럽권역까지 우리 엔지니어링기업이 진출해 있고, 민자사업 능력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헝가리 등 동유럽권 진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기사작성일 2012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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