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의 허(虛)와 실(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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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의 허(虛)와 실(實)
  • 엔지니어링데일리
  • 승인 2012.04.2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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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원표 동부엔지니어링 기술연구소장
도로 양편으로 거대한 장벽처럼 둘러쳐진 방음벽의 숲, 왕복 6차로 대로를 거칠게 질주하는 차량들의 소음과 매연에서 벗어나려는 인간들의 일차적인 바람은 생활공간 주변을 온통 육중한 시설물로 벽을 쌓아 버린채 바깥공간을 향해 불편하게 갇힌 존재로 스스로에게 굴레를 씌운 어리석음에 빠지게 한다.

장벽은 소음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도 다정스런 사람도 싱그러운 자연도 막아버리고 인간을 가까워져야 할 자연스런 요소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확트인 전망, 푸르름이 가득한 나무들, 바쁘게 살아가는 이웃들, 물 흐르듯 움직이는 차량들의 모습은 들어오지 않고 이쪽과 저쪽을 가로막은 닫힌 공간 속 사람들은 과연 인간적인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친환경이라는 거창한 구호에 얽매여 오히려 주변환경, 자연과 조화되지 못하고 삭막하고 인공적인 환경 속에 갇혀 사는 삶 보다는 어느 정도의 번잡함과 소란함, 먼지를 받아들이면서 문화적 풍요로움, 분주한 도시인, 도시의 숲, 도시의 활기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삶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풍성한 삶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인위적인 환경기준이 절대적으로 지켜져야만 법적으로 인정받고 수용하는 사회, 단순하고 압축된 방음벽보다는 주변을 압도하는 시설물이 들어서야 만족하는 사회가 과연 풍요로움과 자연스러움을 보장하는 선진사회인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10~20분간 걸으며 거리풍경도 감상하고 사색에도 잠기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도 느끼면서 일상의 삶을 엮어가던 삶도 이제는 승용차와 마을버스의 활약으로 차창 밖 스쳐가는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

상가의 간판을 가린다고 무자비하게 잘려져 나무기둥만 장승처럼 서있는 불쌍한 가로수, 약간의 공터만 눈에 띄어도 어떻게 해서든 덮어버린 콘크리트 바닥, 도로안전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인공시설물로 점령된 회색공간, 미려한 석재포장의 자태를 뽐내지만 바닥은 온통 콘크리트로 도배되어 비가 와도 물 한 방울 스며들지 않는 사막화 된 보도공간, 독일의 쾰른 대성당 앞 고고하게 주변을 압도하며 서있는 노거수는 아이러니하게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참히 잘려지고 뽑히고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이다.

떨어지는 꽃잎을 안타까워하며 바라보던 방배동 벚꽃 길을 걸으며, 도시의 아파트 주변에도 이렇게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 숲, 꽃길 속에서 인간들이 조화로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러워 하며 생태도시, 야생동물과 함께 사는 도시, 탄소중립형 도로 만들기를 외쳐대는 사람들은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딛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손원표 동부엔지니어링 기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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