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제2경부 제안한 한국인프라디벨로퍼 김성원 대표
“PMC-디벨로퍼 미래SOC 이끌어갈 동력될 것”
상태바
<직격인터뷰>-제2경부 제안한 한국인프라디벨로퍼 김성원 대표
“PMC-디벨로퍼 미래SOC 이끌어갈 동력될 것”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4.06.16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한국인프라디벨로퍼 김성원 대표
(엔지니어링데일리)정장희 기자= 추진 주체와 방식을 놓고 10년째 진흙탕 논쟁을 벌이고 있는 제2경부고속도로에 제3세력인 디벨로퍼가 민간제안을 던지면서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그 주인공은 민자사업 춘추전국시대인 2000년대 중반 화도~양평간, 학의~고기리간 등에서 현대산업개발+현대건설, 포스코건설을 격파하며 잠시 우선협상권을 쥐었던 김성원 한국인프라디벨로퍼 대표다.
민자사업 시장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지탄과 카르텔로 점철된 건설판의 대안세력이라는 호응이 공존하는 SOC 돈키호테 김성원 대표를 만났다.

-제2경부 제안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일인가.
민간사업자가 민간제안을 한 게 놀랄 일인가? 창의와 효율이라는 민자사업의 취지를 살려 사업비도 1조나 줄였다. 이게 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 아닌가.
-악연이 많던데, 국토부가 제안은 순순히 받아 줬나.
법대로 했는데, 국토부가 안 받아 줄 명분이 있나. 적법절차에 의해 제안했으니, 적격성검토를 거쳐서 타당한 결과가 나오면 제3자공고를 해야 할 것이다.
-절차대로 간다면 최초제안자인데 3자에서 메이저건설사와 싸워 이길 자신이 있나.
사실 이제껏 메이저건설사는 국민을 상대로 민자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챙겼다. 이번 제2경부는 거품을 쫙 뺀 방식으로 제안했기 때문에 대형건설사는 먹을게 없어서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말한 방식이란 게 무엇인가.
한국 민자사업은 건설사가 주도하는 기형적인 형태다. 선진민자사업은 디벨로퍼가 사업을 개발해 사업자로 선정된 뒤, 건설사를 입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실제 한국인프라디벨로퍼는 화도~양평 민자도로사업에서 우선협상자로 지위를 가지고, 삼부토건을 선정했다. 이런 방식은 아마 한국 최초가 아닐까 한다.
-나 또한 그때가 기억난다. 당시 우선협상권을 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현산컨소시엄이 도공요금 대비 1.7배를 제안했고, 우리는 1.1배였다. 현산의 욕심이 과했기 때문에 인프라디벨로퍼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이는 학의~고기리간도 마찬가지였다. 민자사업이란게 민간의 창의와 효율을 통해 적정한 시설물을 저렴한 가격에 국민에 제공하는 것이다. 경쟁력이 높은자가 우선협상자가 되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래서 제2경부를 기존보다 1조1,000억 줄인 5조6,000억원으로 제안했는데 적정하다고 보는가.
적정하다.
-대형건설사는 인프라디벨로퍼가 말도 되지 않는 가격을 제시하면서 무분별하게 제3자경쟁을 펼쳐 민자시장 질서를 흐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형적인 ‘우덜식 논리’다. 그렇다면 경쟁을 피해 이합집산을 하면서 사업비와 요금만 올리는게 옳단 말인가. 용인경전철, 공항고속도로, 서울~춘천, 북부외곽 등 수많은 민자사업이 그들의 논리로 인해 국민은 높은 사용료를 내고 있고, 파행을 겪었다. 무엇보다 나는 시공, 설계, PM,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갖추어왔다. 디벨로퍼로써 정당한 제안과 경쟁은 민투법에서 장려하는 사항 아닌가.
 
“건설카르텔로 점철된 민자사업 디벨로퍼 방식으로 거품 빼야”
“엔지니어의 호기심과 진취성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원래 그렇게 다이내믹한 성격인가.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지금의 내가 됐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게 되면서 생활전선에 눈이 깨이게 됐다. 고등학교는 서울공고, 대학교는 서울대 토목과를 나왔다. 당시에는 서울대 공대의 10%를 공고생으로 선발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이공계 우대정책의 수혜를 입은 셈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대학원에 시험을 봤지만, 떨어지고 대림산업에 입사했다. 싱가폴에서 1년동안 파견된 뒤, 전쟁중인 이란 가스플랜트 현장에 파견됐다는데 여기서 사단이 났다. 1988년 6월 이라크의 미라지 전투기가 현장을 폭격했고 18명이 사망하고 50명이 중상을 당했다. 아비규환의 화염속을 뒤로 하고 귀국했다.
이후 이천 듀퐁 현장에서 자재관리했다. 당시 FM대로 자재를 반입하려다가 골재업자가 목에 칼을 들이 밀었던 기억도 있다. 결국 오해가 풀려 골재업체 사장이 현장에서 철수했지만, 현장소장은 내가 갑질을 하려다 사단이 났다고 판단했다. 당시 회사에 너무 실망해 이직을 했다.
-퇴직한 이유가 회사에 대한 실망만 있었나.
사실 플랜트 현장을 돌면서 엔지니어링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간단한 하수도 설계를 변경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던 내가 싫었다. 무엇보다 벡텔, 대기업 엔지니어링사의 엔지니어는 어떠한 방식과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었다.
-엔지니어 생활은 어땠나?
쌍용엔지니어링을 거쳐 삼성엔지니어링에 입사했다. 삼엔의 전신은 코리아엔지니어링인데 이곳은 미국 러모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회사였다. 이 때문인지 삼엔은 설계에서 시공까지 프로젝트를 총괄관리하는 프로젝트매니지먼트 방식을 채용했다. 나는 최고의 PM이 되고 싶었고 입사 1년이 넘어 사업관리부서로 옮겼다.
당시 고속철도 차량기지 사업이 한창이었는데 대형건설사가 사이좋게 돌려 맡고 있었다. 비주류였던 삼엔 입장에서는 새로운 방식을 필요했다. 게다가 고양차량기지 턴키설계비가 45억원 필요했지만 회사에서 지원한 것은 15억원이었다. 설계사였던 대우엔지니어링에게 우선 15억원을 지불하고, 성공시 보상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밀어붙였다.
결론적으로 상습침수지역이었던 고양차량기지 부지를 메울 흙을 한강에서 직접 조달하는 아이디어를 통해 대형사를 꺾었다. 당연히 높은 실행률과 공기단축은 보너스였다. 이후 3건의 차량기지를 연달아 수주했다.
-철도에서 갑자기 건축사업인 상암동월드컵구장에 뛰어들었는데.
PM입장에서 볼때 회사가 특정공종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참여했다. 당시 현대건설 등 대형건설사가 컨소시엄을 짠 상황이어서 계란으로 바위친다는 마음이었다. 건축가를 공모했고 부산 아시안게임 경기장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설계한 유춘수씨를 섭외해, 방패연-소반-황포돗대를 형상화한 설계안을 마련해 사업을 수주했다. 당시 언론이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고 보도했던게 기억난다.
-삼엔 이후 KRTC로 이직했고, RTB코리아를 창업하는 과정은 어떻게 이뤄졌나.
삼엔은 내가 낸 성과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퇴사했다. KRTC에서 최연소 이사로 이직해 상당수의 턴키사업을 수주했었다. 죽도록 일만했던 탓인지 루게릭병보보다 치사율이 높은 급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 신경병증 즉 길랑바레 증후군에 걸렸다. 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7개월만에 회복됐다.
  
“발주청 발주권한 내려놓고 민영화 통해 세계시장 진출해야”
“제2경부 최소비용 제안 대형건설사와 정면승부하겠다”
 
-제2영동 고속도로 였던가. RTB코리아는 건설사없이 경쟁자로 참여에 이목을 끌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건설사 없이 컨소시엄을 이룬다는게 생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의 SOC환경은 디벨로퍼가 주도하는 방식이다. 시공사야 우선협상권을 따낸 이후 지명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인프라디벨로퍼와 RTB코리아는 광명, 여의도, 강남, 관악, 일산 모노레일 최초제안자로 참여한 바 있다.
-한국은 관청과 건설사가 주도하다보니 디벨로퍼가 출연하기 힘든 상황아닌가.
전세계 대부분이 디벨로퍼가 활약하는데 한국은 공무원이 꽉 틀어쥐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확히 한국은 동남아시아 나라보다 디벨로퍼 역량이 떨어진다. 어디 디벨로퍼 뿐인가. 엔지니어링사도 용역사 취급이나 받으면서 상세설계나 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은 거대한 엔지니어링그룹이 활약하고 있는데 한국은 공무원에 눌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공, 수공, LH, 한전 등 발주청의 민영화 그리고 현재 엔지니어링사와 융합을 통해 거대 엔지니어링그룹을 만들자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도시화율이 90%가 넘은 한국에서 SOC시장은 이제 한계점에 달했다고 봐야한다. 결론은 무엇인가. 글로벌 트랜드인 PMC-디벨로퍼 등 민간이 주도하는 형태로 체질개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의 건설관련 공기업은 사실상 세계적인 실적을 보유한 PMC사라고 볼 때, 현재의 발주, 사업관리업무는 규모를 대폭축소하고 분할을 통한 민영화를 통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다시 제2경부 이야기로 돌아가서 제안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협력관계를 가진 30개 엔지니어링사의 도움으로 최소비용으로 제안했다. 민간제안 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되면 본전생각 때문에 주무관청에 이끌려 다닐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민간제안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기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절차에 맞춰 제안했으니 국토부가 제대로된 법절차를 밟으란 말인가.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용인경전철을 당신이라면 어떻게 제안했겠나.
사업비가 절반인 모노레일로 제안했을 것이다. 그대로 타당성이 없었다면 제안 자체를 안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