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주년 기념 특별인터뷰] 영원한 土木人 전긍렬 유신 회장
세상을 창조하는 엔지니어링은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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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주년 기념 특별인터뷰] 영원한 土木人 전긍렬 유신 회장
세상을 창조하는 엔지니어링은 ‘나의 힘’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4.06.19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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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데일리)정장희 기자=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고, 바람이 세지 않으면 큰 날개를 띄우지 못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 중.
강을 나와 넓고 깊은 바다, 대양(大洋)으로 향하니 순풍이 불어왔다. 격동의 산업화시기 SOC물량은 넘쳐났고, 머릿속에 구상한 생각들을 현실로 구현했다. 어느덧 89세, 경부고속도로, 고속철도, 신공항까지 그가 그려낸 시설물들과 함께 어느덧 한국은 선진국이 돼있었다.

영원한 토목인을 자부하는 큰 배, 최고령 엔지니어 전긍렬 회장이다.

▲ 유신 전긍렬회장

구조공학에 예술혼을 불어넣어라
인터뷰 내내 강건한 직설화법을 구사하며 엔지니어링의 가치와 현시점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꼬집던 그였다. 하지만 교량 이야기가 나오자 화색이 돌면서 청년으로 돌아간 듯 열정화법으로 각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교량이 갖춰야 할 덕목은 단연 안전과 경관이다. 전후복구 당시 수많은 강교량을 단시일내 설계, 제작, 가설했지만 단 하나의 교량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구조가 리벳트에서 용접으로 전환되면서 교량의 수명이 20년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교량은 그 나라와 도시의 역사를 대표하는 구조물이다. 지나치게 경제성의 논리에만 빠져 경관을 도외시 한다면 진정한 경제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신양수대교는 그의 생각이 잘 반영된 작품이다. 구양수대교는 종방향 하중에 약한 PC빔 구조로 개량이 시급했고, 경관미도 없었다. 그는 경간장 100m 6연속 아치교를 제안했다. 유려한 Arch는 안전은 물론 북한강 주변의 산들과 잘 어우러졌다. 이 교량은 그가 구상해 시행으로 옮긴 마지막 교량이다.
자연과 어울림을 생각한다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힌 창선‧삼천포대교가 꼽힌다. 사장교, 아치교, 거더교 등 4개의 장경간 교량이 절묘하게 혼합된 이 길로 인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이 배가 됐다.
주경간 300m에 도로 10차선, 철도복선을 수용하는 자정식 현수교 영종대교는 그 기능성에 더해 한국의 처마를 형상화하며 미적 감각을 극대화했다. 또한 세계 4위 경간장-1,545m으로 디자인된 이순신대교의 날카로운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은 흡사 미적분그래프와 같다. S자로 휘어진 주도로와 상반되게 주탑을 기점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강선은 이순신대교와 다른 인천대교만의 곡선과 직선의 만남이다. 1955년 강구조만으로 가설된 영암선 춘양곡 가설교량은 무리없이 50년간 현역으로 뛰었다. 다경간다층 콘크리트라멘이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조동육교는 주변의 경관과 절묘하게 매치된다.
그는 지인을 통해 얻은 교량 컨셉디자인을 기자에게 보였다. 신대륙을 발견했던 콜럼버스의 산타마리호 돛대를 닮아있는 사장교와 바다의 신 넵툰을 주탑으로 형상화한 상상화까지 다채로웠다.
“구조엔지니어는 예술가다. 교량이 구조학, 수리학을 넘어 예술로 승화되려면 엔지니어의 노력과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교량이 넘쳐나는 한국은 차제하더라도 지역과 지역, 나라와 나라를 잇는 특수교량의 수요는 계속될 것이다. 한국구조엔지니어의 팔뚝 힘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엔지니어링적 가치’를 신봉하는 독재자
“꼿꼿한 자세로 지팡이만 쥐면 어디나 걸을 수 있고, 큰 목소리로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전 회장의 출근 시간은 아침 8시30분이다. 토요일도 마찬가지고, 일요일은 가족들과 식사후 오후에 출근한다. 건강도 문제없어 새벽5시면 어김없이 한시간반 테니스를 친다. 회사 경영과 관련된 주요 보고와 의사결정은 물론 주요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실무담당자에게 직접 조언을 하고 있다. 전 회장의 여전한 카리스마에 유신 직원은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주말출근을 하는 전 회장을 보좌하기 위해 주요 임직원은 당직을 서고 있다.
전 회장의 미수(米壽) 회고록 중 “나는 매사에 현실적 가치를 존중한다. 이상보다는 현실에 충실하고,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자는 것이 나의 일관된 신조다....내가 유신을 경영하는 룰의 중심엔 ‘엔지니어링 기술’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놓여있다....간부의 애기를 경청하고, 의견을 수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가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독재자처럼 말이다.”는 부분에서 그의 성품이 들어난다.

강직한 전 회장의 성격에 임직원과 부딪침도 많지만, 사람을 인정함에는 진심이 있다.
“회장님께서 퇴직 때 저에게 준 감사패는 훈장 이상의 명예라고 생각한다. 분명 강한 성격이시지만, 그것이 엔지니어링에 대한 집착 때문이지, 사적인 감정은 절대 없었다. 구조공학에 대한 철학과 일에 대한 집념을 회장님에게 배울 수 있었다.” 평화엔지니어링 조충영 사장의 말이다. 
평안북도 곽산(郭山) 부농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명문 평양고보와 서울대학교 토목과의 전신인 경성공업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해방정국에는 운수부 기술서에 취직해 전후복구에 참여했고, 1960년 당시로는 파격인 미국연수도 다녀왔다. 1966년에는 유신의 전신인 유신특수설계공단을 창업해 승승장구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엔지니어로써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셈이다.
이후 경부고속도로, 인천공항, 경부고속철도 등 굵직한 사업을 수행하며 국내 1위 엔지니어링사인 유신을 일궈냈다. 전긍렬식 카리스마가 급진적인 산업화와 만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유신의 정점은 한국의 SOC시장 축소로 꺾여나갔다. 2000년대 중반 1위 자리를 내줬고, 2011년에는 창립이래 처음으로 당기순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 결과 200명 구조조정, 연봉 10% 삭감이라는 사태까지 겪었다. 문제는 아직까지 위기는 유효하다는 점이다.
“국내 발주물량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해외진출이 필수다. 고도성장기 해외사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펼쳤어야 했지만, 지금 와서 아쉬운 측면이 많다. 하지만 수십년간 축적한 유신의 기술력과 젊은 엔지니어를 꾸준히 키운다면 승산은 있다고 본다.”

▲ 전 회장이 아끼는 교량 컨셉디자인圖

엔지니어가 중심이 되는 시장환경 마련돼야
인터뷰 초기 전긍렬 회장은 엔지니어링 교육과 안전에 대해 강한 어투로 현실태를 꼬집었다. 즉 실효성이 떨어지는 관 위주의 교육으로는 현장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데다, 부대비용만 발생시킨다는 것.
“현재 실시하는 감리교육은 다 아는 것의 되풀이 일뿐, 제대로된 엔지니어링사라면 관에서 일주일 교육하는 것을 반나절이면 다 소화시킬 수 있다. 기술자 교육을 굳이 국가가 통제하고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기술자를 홀대 말고 대우하는 풍토부터 마련되는 것이 우선이다.”
유신의 엔지니어교육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엔지니어링은 잘 몰랐다. 인복이 있었던 건지 당대 최고의 구조엔지니어인 전긍렬 회장님 직속에서 강구조를 배우며 지하철 2호선을 설계했다. 프로젝트에 대해 제대로 파악 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뻔해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스파르타 교육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본다.” 동일기술공사 김수보 사장의 말이다.
F/S-Feasibility Study. 지금은 일반화된 용어지만 엔지니어링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1960년대 당시는 생소한 단어였다. 전긍렬 회장은 미국연수당시 이 용어를 처음 들으며 글로벌 엔지니어링 트렌드에 대한 감을 잡았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성장의 시대 관주도로 엔지니어링산업이 성장하다보니 기본구상 등 앞단의 영역이 부실해졌고, 상세설계가 시장을 주도했다. 세계흐름과는 배치되는 형태였다.
“기본구상-기본설계가 제대로 됐다면 상세설계는 현장에 맞춰 샵드로잉을 하는게 맞다. 엔지니어링의 가치는 앞단의 영역에서 위력을 가져오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향후 글로벌 엔지니어링 시장에 발을 딛기 위해서는 기술적 능력과 함께 그들의 발주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엔지니어링사가 발주를 대행하는 PMC를 비롯해 Management사업이 해외엔지니어링 진출의 키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엔지니어링은 용역이라는 틀 안에 갇혀 발주자가 시키는 일만 한다는 것. 때문에 우리 건설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엔지니어가 주도하는’ 건설사업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엔지니어링산업 경쟁력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엔지니어를 우대할 것인가’이다. 엔지니어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풍토를 만들어 내고 대우를 해줘야 안전한 사회, 튼튼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기반은 엔지니어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글 정장희 팀장, 사진 최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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