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급히 만들었나…"아무도 안 지키는 건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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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급히 만들었나…"아무도 안 지키는 건진법"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5.01.2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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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률 82% 기준점도 없어, 발주처도 나 몰라라
국토부, 하도급지침 일부 부분수정 들어가

(엔지니어링데일리)정장희 기자= 개정된지 8개월이 지난 건설기술진흥법이 사실상 시행되지 않고 있다. 본지가 주요 대형엔지니어링사 20여곳을 대상으로 건진법 내 하도급관리지침 시행현황을 조사한 결과 한곳을 제외한 모든 엔지니어링사가 지침을 지키지 않고 있거나, 하도급 자체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는 공청회를 열어 의견수렴에 나섰지만, 일부 의견만 개정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엔지니어링업계 공청회 왜 외면했나=하도급관리지침에 대한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16일 대전 철도공사 대강당에서 공청회를 개최한다. 당초 200명으로 계획된 이번 공청회는 그러나 건진법 TFT 관계자와 50여명 내외의 중소영세엔지니어링사 그리고 건설기술관리협회 관계자 등 70~80명만 참석한 가운데 이뤄졌다. 법시행전 300명이 넘게 참여한 건진법 설명회와 사뭇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었다.

A사 업무팀 임원은 "서면, 회의, 공청회, 연판장 등 건진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은 따 썼는데 국토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면서 "어차피 국토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법안이 수정될 텐데 멀리 대전까지 가서 기운빼긴 싫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그렇게 생각해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A사 임원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국토부는 하도급 계약대상이 도급계약에 10/100 또는 3,000만원에서 20/100과 5,000만원으로 소폭 완화됐고, 건설기술용역 하도급 계약원칙과 지급확인 등을 삭제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로 준용토록 하는 절충안 정도를 제시했다. 다만 공동사 지분정리에 따른 하도급 계약은 불가, 하도급률 82% 조정도 절대불가,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최대 영업정지 6개월에 6,000만원의 과징금을 받게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또 "공종별 세부기준도 없는 공사비요율 방식상에서 하도급률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국토부측의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도 못했다.

B사 관계자는 "분명한 것은 국토부가 어떠한 절충안을 내놓던 지난해 5월23일 국회를 통과한 건진법은 현재 시행중에 있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선량한 사업자라면 시행당시 건진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지켜야 하고, 국토부는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모든 엔지니어링사가 범법, 개정돼도 범법=본지의 취재에 응한 대부분의 엔지니어링사는 사실상 하도급관리지침을 지키고 있지 않았다.

우선 하도급계획서를 제출받고 적정성을 검토해야 할 발주처에서 하도급관리지침 조항을 꺼리는게 문제. C사 관계자는 "발주처 입장에서도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업무량이 많은 하도급지침을 싫어할뿐더러 적정성을 승인할 경우 모든 책임이 발주처로 귀속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하도급을 원천봉쇄하며 문제소지를 없앤 사례도 감지된다. D사 관계자는 "어차피 일도 많지 않아 하도급을 주지 않고 본사차원에서 해결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협력사의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물량이 쌓이는 올해 상반기에는 하도급과 관련된 문제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했다.

대다수 엔지니어링사는 82%의 하도급률을 보장해줄 경우 프로젝트별 적자를 피해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이면계약, 쪼개기, 검토비용 산정 등 향후 하도급지침에 따른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E사 관계자는 "건진법은 사문화될 수도, 엔지니어링업계의 커다란 규제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면서 "정부정책자들은 김영란법 등 법이 너무 엄중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기보다 실용과 현실을 반영할 대안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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